헤로도토스(Herodotus)를 서양 역사의 아버지라 한다면 사마천(司馬遷)은 동양 역사의 아버지이다. 사실 두 사람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사마천이 헤로도토스보다 한 차원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마천의『사기史記』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헤로도토스의 『역사』보다 그 학문이 몇 수나 위요 훌륭한 수난을 당하여 역사가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관점에 공통점이 있는데 두 사람 다 “권력을 좋아하지 마라.”고 경고한 것이다. 현 대통령의 임기가 5년 중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심한 여야 간 권력다툼을 하는 우리나라 정계를 보고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권력을 좋아하지 말라고 한 두 역사가의 충고를 듣고 근심하여야 하지 않는가.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된다는 것과 그 밑에서 장·차관이 되어 각종 이권을 챙기겠다는 욕망을 죄악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바보가 임금이 되었다가 맞아 죽은 사실을 예로 들어 충고하였고 사마천은 백이숙제 형제의 예를 들어 권력을 멀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권력을 좋아하지 말아라! 차라리 수양산에 가서 고사리를 먹고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불후의 명저로 꼽힌다. 『사기』가운데서도 특히 「열전」이 유명한데 그 서두에 백이숙제를 들었다. 왜 백이숙제를 가장 존경받을 인물이라 하였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무순으로 인물을 골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제일 훌륭한 사람을 맨 앞에 기록하고 있다.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를 사마천이 가장 훌륭한 인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인가. 백이숙제의 아버지는 고죽국의 임금님이었다. 그러니 백이숙제는 다음에 임금이 될 왕자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고죽국이 동이족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백이숙제는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백이숙제를 본받아 권력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백이숙제의 아버지가 위독하여 돌아가시게 되는 날, 아버지는 형인 백이를 부르지 않고 동생 숙제를 불러서 유언하기를

“내가 죽게 되었다. 이제 네가 아버지 대신 임금이 되어야 한다.”

고 하셨다. 그러나 숙제는 대번 형님 백이에게 달려가서

“아버지는 날 더러 임금이 되라 하시지만 저보다 형님이 임금 자리를 이어받으셔야지 어찌 동생인 제가 그 자리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임금 자리를 형에게 양보하였다. 그러자 형 백이는 말하기를

“아버님의 명령이니 거역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임금이 되는 것은 아버지의 소원이며 명령이시다.”

하면서 이튿날 몰래 집을 나가버렸다. 그러나 동생 숙제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형을 찾아 집을 나섰다. 그 뒤 두 형제는 서로 만나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죽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사리가 유명한 이유는 백이숙제 때문이다. 먹어 보면 아주 맛이 있는 나물이어서 필자는 어떤 다른 나물보다 더 좋아한다.

이것이 백이숙제 이야기의 전부인데 어찌 사마천이 이런 무기력한 형제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꼽았을까. 아무도 사마천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그 수수께끼를 풀어 보기로 하겠다.

사마천의 『사기』를 잘 읽어보면 사마천 자신이 이미 권력을 탐하는 자는 가장 불행한 자라는 사실을 누차 지적하고 있다.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읽을 때 독자는 정독(精讀)하여 저자의 깊은 마음을 간파하여야 한다. 그냥 속독(速讀)과 난독(亂讀)을 거듭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요순(堯舜)의 예를 들어 임금 자리를 함부로 물려받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요임금이 순에게 권좌를 물려 준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아들 단주(丹朱)를 두고 엉뚱한 촌놈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요임금이 처음 고른 인물은 재상 허유(許由)였다. 요임금이 “이 자리를 너에게 물려준다. 받아라.” 고 했더니 허유는 매우 불쾌하게 여겨 집에 돌아가서는 자기 귀를 물로 씻었다. 그는 그 다음날부터 조정에 나가지 않고 임금 몰래 기산(箕山)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러나 허유보다 더한 이야기는 강물에 투신 자살한 변수(卞隨)와 무광(務光)이었다. 변수와 무광의 이야기  배경은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로 교체되던 때로서 구정권인 은(殷)이 신정권인 주(周)로 바뀔 때 즉 매우 험악한 때였다. 동이족의 나라가 한족의 나라로 바뀌는 정권교체이니 아주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다. 그런 때 두 사람이 임금 자리를 마다하면서 강물에 뛰어 들어가 자살하였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여섯 사람이나 국무총리 후보가 되었다가 물러나더니 마침내 이제 막 국무총리가 된 사람을 걸고 자살한 재벌이 나타났다. 하나는 총리직을 걸고 목숨을 걸었으나 권력이 무섭고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을 누구보다도 탐하여 그러는 것이니 사마천에게 물어 보면 아마 비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을 것(笑而不答)이다. 돈과 권력은 무서운 애물이다. 사마천은 함부로 만지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사람들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은 권력을 탐하고 있다. 요즘의 한국 정계를 보면 정말 국민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다음 대선에 이겨 대통령이 되고자 막춤(?)을 추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제발 사마천 『사기』를 읽고 정치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 보면 사마천의 『사기』와는 각도를 달리 하여 권력을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무도 임금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없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임금이 되면 자기 일을 제쳐두고 남의 일에만 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정치의 요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일도 바쁜데 남의 일까지 돌보아주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임금 자리요 대통령 자리이다. 그러니 누가 그런 자리를 좋아했겠는가. 잠깐 헤로도토스의 바보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옛날 아무도 임금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열었다.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바보가 하나 있는데 그 바보를 임금으로 삼으면 어떻겠나.“

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럽시다!” 하고 마을 사람들이 바보에게 가서 임금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바보는 완강히 거절했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일을 하느냐. 나도 바쁜 몸이야!”

할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은 좋은 집을 지어 그 바보를 억지로 끌어다가 임금 자리에 앉혔다. 하기 싫다는 것을 강제로 데려다 앉혔으니 본인이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한 그만두라 할 수 없게 되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모두가 생각하기를 필시 바보가 임금 자리에 싫증이 나서 금방 물러나라면 곧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바보는 10년이 넘어도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에는 여러 해 가뭄이 들어 마을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 바보 임금을 가지고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회의를 열어 바보 임금을 갈아치우기로 결의하였다. 마을 대표가 바보 임금에게 가서 조용히 “그만하시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바보 임금의 태도는 완강하였다. 10년을 왕좌에 앉아 있다 보니 이렇게 좋은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권력의 마약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바보 임금은 깜짝 놀라면서 손을 옆으로 저었다. 이렇게 편한 자리를 누구한테 준단 말인가. 바보 임금은 단연코 못 나가겠다고 버티었다. 그때서야 마을 사람들은 임금 자리에 한 번 앉으면 절대 제 발로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바보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여러분이 해달라고 애원해서 할 수 없이 이 자리에 올랐는데 지금 여러분 마음대로 나를 쫓아내려 하니 나는 절대 못 내려가겠다.”

바보가 이러니 할 수 없이 사람들은 다시 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왕을 죽이기로 합시다. 그리고 새 임금을 뽑읍시다.”

이렇게 해서 바보 임금은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평화적인 정권교체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정권 교체는 붉은 피로 물들게 되어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권력이란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다. 피를 보고서야 비로소 교체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권좌에서 물러날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 피가 정신적일 수도 있고 육체적일 수도 있다. 감옥일 수도 있고 단두대의 이슬일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많은 사람이 피를 보고 죽었다. 단두대라면 마리 앙뜨와 네뜨가 죽을 때 목에 황금목걸이를 감은 채 죽여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저승에 가서도 황금목걸이를 목에 감을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조 환웅(桓雄)은 환인(桓因)에게서 천부인(天符印)을 받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3천 명의 무리(의병)에게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천명을 받은 사람만이 제왕이 된다는 것이다. 천명은 바로 천부인을 말한다. 요즘처럼 아무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정쟁(政爭)이라 한다. 정쟁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걸 모르니 하늘에서 크게 웃고 있을 것이다. 하늘은 이미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속담에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제왕의 경우에는 분수정도를 가지고 논할 일이 아니다. 천명을 가지고 논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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