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만리장성 북쪽 요서 지방 일대에서 신석기 유적들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요서지역에서 발전, 변천해온 이 문명을 ‘요하문명’이라고 한다. 요하문명의 발견은 지금껏 황하문명이 가장 오래된 세계 4대 문명이라고 주장해온 중국 고고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황하문명보다 시기가 더 앞서고 문화 수준도 더 높은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141회 국학원 국민강좌에서 홍산학술문화원 박문원 원장은 ‘요하문명 유적·유물과 그 변천’을 주제로 강연했다. 박 원장은 20년 간 요하문명의 유적과 유물을 수집해 온 유물 연구가이다. 지난해 12월 유엔(UN)과 중국정부가 주관하는 2013 UN 중국문화산업엑스포에서 중국 민간 10대 국보(전문가 학자 부문)로 지정되기도 했다. 
 
▲ 홍산학술문화원 박문원 원장
 
이날 박 원장은 직접 수집한 요하문명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그 변천 과정을 설명했다. 요하문명은 소하서문화, 흥륭와문화, 사해문화, 부하문화, 조보구문화, 홍산문화, 소하연문화, 하가점하층문화까지를 총 망라한다. 이 중 홍산문화는 가장 문명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이다. 
 
“요하문명은 초기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적으로 가장 큰 변혁기를 이루어냈던 거대한 문명이었다. 유적이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본다면 B.C. 7000년 전 소하서문화를 필두로 한다. 그렇다면 소하서문화 이전에는 요하지역에 사람이 사고 있지 않았을까? 그 전에 특별한 유적과 유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 요하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 타제석기들이 발견된다. 사람이 살던 정확한 시점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있다.” 
 
요하문명의 중기문화인 홍산문화 시기는 제사장이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던 제정일치 시대였다. 여신상 등의 유적과 유물은 당시 모계사회였음을 입증한다. 이 시기는 묘에 옥기를 부장(副葬, 망자의 묘에 생전에 쓰던 패물을 함께 묻는 일)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옥기는 최고의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도구류, 상징류, 장식류, 의식류, 제기류로도 쓰였다.  
 
홍산문화 이후에는 옥기를 부장하지 않았으며, 사용 목적도 주로 부족의 상징이나 의식용품, 장식품 등의 용도로만 사용했다. 이는 문명이 청동기 시대로 진입하였다는 증거이다. 
 
▲ 박문원 원장이 수집한 홍산문화 옥기 유물

박 원장은 홍산문화 시기 옥기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홍산인들의 옥기에서 인간의 예술적 본능을 엿볼 수 있다. 풍부한 감성과 창조적 능력, 예술적 욕구를 옥기로 표현했다. 옥기는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옥기에는 구멍이 뚫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치장하고 과시하는 패용(佩用, 몸에 달거나 참)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기 유물은 묘가 아닌 농지, 야산 등지의 일반 땅에서도 비부장품으로 상당수 발견되었다. 보관상태가 좋은 부장품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많이 되었지만, 비부장품에 관한 연구는 탄소 측정(방사성 탄소-14의 붕괴를 이용하여 물질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의 어려움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옥기유물을 통해 요하지역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문명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유물로만 보아도 한민족의 역사는 절대 5천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하문명과 우리 한민족과의 밀접한 관계성 역시 앞으로 연구적 과제이다.” 라고 말했다. 
 
142회 국민강좌는 5월 12일 화요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김병기 교수가 ‘천자의 나라 고구려’를 주제로 강연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국민강좌는 '얼-라인 국학원 문화센터'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도 볼 수 있다. 국학원 후원회원 대상 ‘얼-라인 국학원 문화센터’는 국학원 홈페이지(www.kookhakwon.org)내 <얼-라인 국학아카데미>를 통해 로그인 한 후 <얼-라인 국학 아카데미>방으로 입장하면 된다. 문의 및 강좌 접수는 041-620-6951 로 하면 된다. 
 
▲ 제141회 국민강좌에서 홍산학술문화원 박문원 원장은 ‘요하문명 유적·유물과 그 변천’을 주제로 강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