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스피릿은 4월 13일부터 매주 월요일 노중평 작가의 장편소설 <안중근安重根 콤플렉스 힐링>을 연재합니다. 다음은 노 작가의 서문입니다.

"역사가 걸어온 뒷골목을 수색해 보면, “쥐꼬리를 잡아당기니까 쥐를 문 고양이가 딸려 나오고, 고양이를 잡아당기니까 고양이를 문 개가 딸려 나오고, 개를 잡아당기니까 개를 문 호랑이가 딸려 나온다.”는 개그 같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숨어 있다.

이 역사의 뒷골목에서 온갖 배역에 동원되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다가 사라져버린 인간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 있는가 하면,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싫든 좋든 열심히 해내고 훈장에 묻혀 사라진 사람들의 피 묻은 그림자가 얼룩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남긴 역겨운 냄새도 맡아진다. 그럴듯하게 지사며 애국자의 역할을 잘해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히 천재적인 연기력으로 나라를 망친 사람도 있다. 
 
내가 늘 서성거리는 곳이 이러한 역사의 후미진 뒷골목이다. 이곳엔 누군가 왜곡해버려 원형이 훼손된 신화들이 망가진 시계처럼 버려져 있다. 
 
낡은 깃발과 함성, 빛바랜 초상화와 녹이 슨 철제 동상, 금이 가거나 쪽이 떨어져 나간 기념물 따위에 정신이 팔려 약간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처럼 멍청하게 서 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느라고 눈과 귀라는 두 기관이 건강을 지탱하는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시인해야 하였다. 밤에 지령을 받는 간첩처럼 너무 많은 시력과 청력을 일찍 소모해 버렸다. 
 
눈은 늘 괴상하고 이상한 장면에 머물러 있어야 하였고, 귀는 비명이나 함성, 신음, 그리고 총 소리나 대포 소리 따위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있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타고난 팔자가 그런걸. 
 
오래전에 써둔 원고를 정리하여 발표할 것은 발표하고 버릴 것은 버리려고 수십 개의 원고 뭉치를 뒤지다가 안중근이라는 원고를 발견하였다. 내가 문단에 데뷔했을 때 쓴 원고였다, 몇 장을 읽어보고 발표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엉뚱한 이야기로 손질하여 발표해 보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손질하면서 칼 구스타브 융의 집단무의식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 잡동사니의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이 쓰레기통은 신화 원형이 보관된 박물관 같은 창고이다. 100년 전의 1900년대 연대 표찰이 붙은 박물관, 나는 그 박물관에 들어가서 70년의 세월을 허비하였다.
 
나는 왜 이 박물관에서 안중근 의사를 영토상실領土喪失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힐링을 시도했던 것일까? 그것은 온갖 상실에 희생당한 내 자신을 힐링하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붕괴당한 신화원형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퍼즐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본주本主로 모시는 우주이자 질서인 마고대신(麻姑大神)의 힐링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