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이탈리아의 북부도시 베르가모 출신의 제261대 교황이다. 1963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타임지 표지에 실린 바 있으며, 2000년 시복되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착한 교황(Papa Buono)'이라는 애칭과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진한 미소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어린이들을 유독 사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백 만 명의 피난을 도와, 이스라엘에서는 2014년 교황 서거 5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였다. 요한 23세는 거리로 직접 나가 핍박받는 약자들을 만나 사랑이 가득한 소박한 할아버지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현재의 프란체스코 교황과도 비견된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고, 1963년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발표하여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교황 요한 23세는 또 유품으로 거대한 지구본을 남겼다. 교황은 19858년 취임 이후,지구본을 구해달라고 바티칸 사무처에 2년간 졸랐다고 한다. 하지만 바티칸 사무처는 번번히 거절했다. 지구본은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구이기 때문에 교황의 접견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 바티칸 접견실에서 지구본을 바라보는 교황 요한 23세. <사진=외교부>

 1960년 6월 25일 선교 단체인 신언회가 지구본을 교황에 선물했다. 둘레만 4미터가 넘는 거대한 것이었다. 드디어 지구본을 얻게 된 교황은 연신 "정말 아름답지 않냐?"며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교황은 바티칸에 외국의 사절단이 올 때마다 "어디에서 오셨느냐?"며 지구본으로 사절단의 출신 국가를 확인했다.  이렇게 교황의 지구본은 대화를 시작하는 수단이자 외빈 접견용으로 사용되었다.

교황 요한 23세의 지구본은 생전에 늘 입버릇처럼 하던 "전 세계는 나의 가족이다(Tutto il mondo è la mia famiglia)"라는 말을 그대로 반영하는 유품이 되었다. 이 지구본은 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있는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구본의 제작연도는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몇 가지 근거로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분단 이전의 모습으로 표시된 점으로 보아 195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전 세계 교구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어 그 무렵 가톨릭 역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가톨릭사에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에 소장된 모든 유품 중에서 교황이 특히 아꼈던 애장품으로 기억되는 지구본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세월의 흔적으로 상당히 손상됐다. 

▲ 교황 23세의 유품인 '지구본'이 우리나라 한지로 복원된다. <사진=외교부>

이를 우리나라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금번 복원작업은 우리나라 주밀라노총영사관 한지 워크숍에서 위원회로 참여했던 키아라 포르나챠리(Chiara Fornaciari) 바티칸 박물관 수석 복원가가 지구본 복원 필요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받아들여 교황 요한 23세 재단에서 지구본 복원을 발주하였고, 다수의 복원가가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그중  한지를 활용해 복원하겠다는 넬라 포지(Nella Poggi)의 제안서로 최종 결정되었다.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은 4월 말 동 복원작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준비 중에 있다.

키아라 포르나챠리 복원가는 어떻게 한지 워크숍에 참여했을까? 우리나라 외교부는 견고하고 오랜기간 보존되며, 번짐현상이 적은 우리 한지가 고문서 및 고회화 복원에 우수한 재료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밀라노, 로마 등에서 일련의 한지 알리기 행사를 개최하여 왔다.

 주밀라노총영사관이 지난 2014년 6월 이탈리아와 유럽의 중견 복원가를 대상으로 개최한 '한지 워크숍'에 참가했던 복원가들은 자발적으로 'Group 130°’이라는 한지동호회를 결성, 한지를 이용한 복원 작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이탈리아 등 유럽 내에서 한지 알리기를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주밀라노총영사관은 2014년 6월 '한지를 활용한 고문서 복원 방안에 관한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여 복원전문가들에게 한지의 복원능력을 시연하였다. 그해 11월 29일부터 12월8일까지 유럽 최대규모 장인제품 박람회인 밀라노 '장인박람회(L’artigiano in Fiera)'에서 전주시와 한지산업지원센터와 함께 '한지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에서 한지 수출 계약이 처음으로 성사됐다. 

▲ 교황 23세가 애용한 지구본. <사진=외교부>


주이탈리아대사관은 지난해 10월 '한지와 문화재복원에 관한 한-이탈리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주밀라노총영사관은 지난해 12월 말 이탈리아 굴지의 산업연구센터인 인노브허브(InnovHub)와 공동으로 한지의 문화재 복원용도에 관한 적합성 테스트를 했다. 인노브허브는 한지와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에 실제 사용되는 화지(한지 수록지 5장 및 개량용 롤지 1장, 일본 화지 수록지 2장)를 비교하여  산화도, 내구성, 굵기, 밝기, 지속성 등의 측면에서 물리, 화학, 수학 테스트를 시행하여 얻은 자료(Raw Data)를 Group 130에서 분석했다.  
이 테스트에서 한지가 8천년이나 지속될 수 있어 문화재 복원에 탁월한 조건을 갖추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노브허브는 시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지는 매우 다채로운 용도로 활용가능하고 안정적이며 견고한 성격 (very versatile, stable, strong and resistant)을 보유했다.  산화도(ph) 정도에 따라 최대 8천년까지 지속 가능하다. 이에 반해 일본 화지는 1,750년을 지속하여 한지가 4배이상 오래 지속된다. 고문서, 고서화 등의 전통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양피지, 가죽,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며 개량한지의 경우 벽화 등에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요한 23세 지구본 복원을 맡은 넬라 포지 복원가는 "적합성 테스트 결과, 한지는  내구성이 8천년에 달해 현재 이탈리아 시장에서 취급되는 일본 화지의 내구성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언급했다.

상기 테스트 결과는 4월 8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되는 런던 "아답트 앤 이볼브(Adaptive&Evolve) 국제회의에서 "한지를 이용한 복원과 신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최초로 공개된 예정이다. 아답트 앤 이볼브 국제회의는 최근 10년간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재 복원용 종이에 관한 중요한 국제회의이다. 그간 문서복원가들은 화지(和紙)에 관한 논의를 주로 해왔으나 이번에는 Group 130° 소속 일부 이탈리아 복원가들이 이 테스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파올로 칼비니(Paolo Calvini) 베네치아대 화학과 교수, Chiara Fornaciari 바티칸 박물관 문서복원팀장, 이탈리아 문서복원가인 Laura Barzaghi 3인이 ‘Group 130’을 대표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교황청 내 바티칸 박물관도 한지에 관심을 보여 5월8일(금) 바티칸 박물관에서 주이탈리아대사관, 주교황청 대사관, 주밀라노총영사관 3개 공관이 지원하여 한지를 이용한 복원에 관한 국제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주이탈리아대사관은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고 영향력 있는 기관인 '국립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와 문화재 복원 관련 한지의 적합성에 관한 정밀분석 및 실제 적용 테스트 실시 계획을 협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