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현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다. 30분간의 짧은 만남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나온 한·중·일 3국 정상회담과 한반도 핵무기 개발 반대 등의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과거사에 관한 일본 정부의 분명한 반성이다.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 때문에 동북아 3국의 각종 사안이 브레이크가 걸려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아베 정권의 과거사 반성 없이 관계개선은 없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중·일 3국은 세계 총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위상이 커졌지만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정상회담 한 번 한 적이 없다. 북핵 문제 역시 마주앉아 논의한 적이 없다.

일본이 과거사에 관한 발언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30일 공개된 1984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히로히토 일왕이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93년에는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의 존재와 강압성에 대해 공식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2년 뒤인 1995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패전 50주년을 맞아 침략을 인정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망언을 일삼는 아베 총리도 최근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표현하며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말부터 '21세기 구상 간담회'를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담화문 작성에 돌입했다. [사진=아베신조 페이스북]

그러나 일본의 반성에는 '주어'가 생략되어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과 아베 총리의 발언에서는 책임을 회피한 채, 등 떠밀려 한 말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전향적으로 반성의 뜻을 밝힌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역시 '말'로 끝났다는 아쉬움이 있다. 일본 내 우익과 다수당(자민당)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담화'로 마무리되었다.

아베 총리는 오는 4월 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한다. 미 의회에 수차례 요청해왔지만 성사되지 못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미국과 일본의 동맹, 아시아와 태평양의 평화 번영 등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사에 관한 언급이다.

일본은 이번 기회에 과거사 언급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말을 넘어 행동으로도 반성에 관한 의지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과거는 물론 동북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일본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