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러자 페이스북에도 거탑이 올라와 있었다. 

“여기에도 있습니다.”
“거탑의 스텔스 기능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대통령의 행차 장면을 촬영한 사진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이것은 거탑에서 대통령의 행차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취한 조치로 보였다. 거탑에 대한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유언비어성의 댓글이었다. 그러자 주문이 하나 떠올랐다. 
 
홍익주문
 
멸망으로 가는 / 시간을 멈추려면 / 주문을 외워라
주문은 홍익주문 / 일시무시 012 / 일석삼극 234 
무진본 345 / 무종일 678 / 홍익인간 901 / 이화세계 234 
 
이 주문은 오늘 있었던 일을 아는 사람이 올린 것으로 생각되었다. 
 
“관음사에 들렀다 가시지요. 뒤따라오는 차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보안이 지켜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대통령에게 권했다. 대통령이 승낙하였다. 차는 경호차가 앞뒤로 서고 관음사를 향하여 달렸다. 관음사 입구에서 불을 껐다. 속도를 낮추었다. 관음사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감응신령을 볼 수 있었다.
 
“감응신령께서 먼저 와 계십니다.”
“단군왕검이요?”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차를 세우게 하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감응신령을 향하여 다가갔다. 인사하였다. 
 
“임산부가 왔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감응신령의 얼굴을 보니 굳어진 표정이었다.
 
“영계인 대통령께서 알고 계십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안심이었다.
 
“그가 어떻게 세상에 오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알고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응신령이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둔 후계자가 있소?”
“없습니다.”
 
감응신령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 고르게.”
 
감응신령은 인명부를 1권 보여주었다.
 
“이 책엔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사람들이 등재되어 있소. 이들 중에서 후계자가 될 사람을 하나 뽑으시오. 그러면 후계자로 주겠소.” 
“알겠습니다. 한 사람 고르겠습니다.”
 
대통령이 한 사람을 지목하였다. 신상명세서를 보니, 그는 미국의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군대에 갔다 왔고, 직장생활도 했고, 학원 강사도 하였다. 
 
“이 사람으로 하겠습니다.”
“좋아. 내가 이 사람을 약간 훈련을 시켜서 보내 주지.”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궁으로 돌아오자 다음 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①. 국도를 세종시로 옮기고 대통령궁은 국가사당으로 용도를 변경한다. 
②. 역사문화를 진흥한다.
③. 소래에 신도시를 건설한다.
④. 현재의 국가체제를 해체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든다.
 
그 후로 감응신령은 아무런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1년 반이나 되었다. 정확히 1년 반이 되던 날 대통령에게서 내게 전화가 왔다. 
 
“세종시에서 전화 겁니다.”
 
대통령이 말하였다. 
 
“제게 직접 전화를 주시고…….영광입니다.”
“감응신령께서 아무 말씀이 없습니까?”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번 말씀 드려 보시지요.”
 
대통령은 통화를 끝냈다. 나는 밤이 늦었지만 집사람에게 라노스를 운전시켜 산신각으로 갔다. 산신각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문에 육중하게 걸려 있는 자물통을 잡아당겨 뽑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촛대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자 실내가 밝아졌다. 나는 감응신령을 바라보았다. 감응신령과 눈이 맞았다. 
 
“대통령이 언제 인재를 보내 줄 것이냐고 물어왔습니다.”
“급하대?”
“그렇습니다.”
“당장은 힘들어. 지금 길을 들이고 있으니까 기다려보라고 해.”
 
감응신령은 곧 인재를 보내줄 것처럼 말하였다. 다음 날 포승에서 혁거세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식이 있습니다. 몇 번 신당에 찾아온 젊은이가 있습니다. 이 젊은이가 재목이 될 것 같습니다. 내려와서 한 번 만나보세요.”
“그래요?
 
요즈음 그는 포승에 가 있었다. 나는 마누라와 함께 포승으로 떠났다. 산신각에서 가자면 2시간은 달려가야 하였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포승으로 달렸다. 2시간 후에 포승에 도착하였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포승의 바다 가까운 곳에 그의 집이 있었다. 신당을 차린 집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우리를 맞아들였다. 그는 빈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나는 집사람과 한잠 자기로 하였다. 잠을 자고 나니 2014년 10월 11일 9시 경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감응신령이 보내주겠다고 한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손님이 도착하였다. 거둥이 잘되지 않는 젊은이가 어머니와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마루 위로 올라섰다. 혁거세 선생은 웬 할머니로부터 젊은이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혁거세 선생은 환자를 신단 앞에 뉘이고 내려다보았다. 환자는 겨우 목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고통이 심하지?”
 
혁거세 선생이 물었다. 후에 그가 진술한 말이지만 혁거세 선생에게 웬 할머니가 나타나서 이 아이는 자기의 후손인데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쿼크로 변하여 환자의 입술 위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환자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도부신인이라 합니다.”
“도부신인!”
“할머니가 네게 하시는 말씀을 옮겨 봐.”
“2013년 1월 15일입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없었지?”
“그렇습니다.”
 
도부신인은 할머니가 일러주는 대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