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김선자(73) 할머니가 암투병 끝에 18일 세상을 떠났다. 그 식당에 가보려고 했는데……. 김 할머니의 식당에서는 백반을 1,000원에 판다. 밥 한 그릇에 세 가지 반찬, 그 위에 된장국. 천원으로는 마련하기 어려운 식단이었다.
김 할머니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시장 상인들은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평소 할머니 식당을 이용한 손님들은 상중에도 대인시장상인회가 문을 연 할머니 식당에 와서 추모의 글을 벽에 붙였다. 이낙연 전라남도지사는 김선자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신문과 방송도 다투어 김 할머니의 부고를 보도하고 애도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한 할머니의 별세가 이렇게 세상의 주목을 받은 건 드문 일이다.
 
김선자 할머니는 사업을  몇 차례 실패하여 보험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했다. 그 후 찜질방에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했다. 이렇게 빈털터리가 되자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고마운 사람들. 더 늦기 전에 보답하자. 김 할머니는 이렇게 하여 2010년 8월 광주 동구 대인시장에 ‘천원 백반 집’ ‘해 뜨는 식당’을 열었다.
김 씨는 그때부터 1식 3찬과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을 1,000원에 팔았다. 백반 식대 천원에는 할머니의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면 식사하러 오는 사람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적더라도 내 돈 내고 사먹는다면 떳떳할 수 있다. 할머니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천 원은 부끄럽지 않으라고 내는 거야.” 얻어먹는 밥과 사먹는 밥ㅡ같은 밥이라도 같은 밥이 아니다. 할머니 밥상은 떳떳함과 자존심을 손님에게 선물했다. 할머니는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을 도와주면서 도와주는 척 하지 않고 또 부끄럽지 않게 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런 식당이니 곧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어 하루 100여 명이 북적거렸다. 하지만 손님이 많을수록 손해를 보았다. 김 할머니는 한 달 평균 200만 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천원 식당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 할머니의 마음을 안 이들이 쌀을 보내거나 밥값을 더 내는 등 식당 운영을 도왔다.
그러나 천원 식당은 2012년 문을 닫게 되었다. 김 할머니가 대장암으로 쓰러진 것이다. 김 할머니의 암 투병 소식에 광주지역 기업과 시장상인, 시민이 나섰다. 이들의 노력으로 천원 식당은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광주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광주점, LG이노텍 등은 할머니의 수술비와 식당운영비를 후원하고 환경개선 등 자원봉사를 했다.
 
암수술을 받은 김선자 씨는 건강이 좋아지자 2014년부터 다시 식당을 꾸려왔다. 하지만 병이 악화돼 지난 18일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천원 식당을 걱정했다. 그가 남긴 유언은 “식당은 계속 이어가 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대인시장 상인회가 할머니의 뜻을 이어 천원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김 할머니가 성공한 것ㅡ세상 기준으로 본다면ㅡ은 아니었다. 세상없는 것을 발명한 것도 아니고, 기업을 일으켜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도 아니었다. 큰돈 벌어 자선사업에 거액을 기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권력의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김 할머니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천원 식당이 문을 연 후 식사할 곳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 먹는 밥보다 따뜻했다. 그 훈기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이런 것이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아닐까. 김선자 할머니는 고래로 전해온 홍익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였다. 그렇게 다 베풀고 하늘나라에 간 김선자 할머니는 가장 성공한 삶을 살았다.
올 봄에는 광주 대인시장 천원 식당에 가보려 한다. 식당에 깃든 김선자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볼 것이다. 1,000원 백반이 입 안에서 살살 녹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