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적인 칠은 검은빛의 옻칠이 대부분이었지만, 황칠나무에서 추출한 황금색의 황칠(黃漆)이 있었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황칠나무는 ‘노란옻 나무’라고도 하고, ‘상철나무’, ‘황철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황칠나무는 특산품으로 다른 도료에 비하여 매우 뛰어나고 귀하여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다. 황칠은 광택이 우수하고 투명하여 장기간 사용해도 변색되지 않아 목공예품이나 금속재료의 도료로도 매우 훌륭하다.

▲ 황칠공예품(보석함, 황칠연구소 정병석 제공)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던 황칠은 중국 황실에서 자주 이용되었다. 일반적으로 1년에 나무 한 그루에 소주잔 한잔 정도의 황칠액이 나와 그 가치는 더욱 귀한 대접을 받았다.

황칠은 10년 이상 된 황칠나무에서 1~2년 채취 후 상처를 아물게 하여 다시 채취해야 한다. 무리하게 5년 이상 채취하며 나무가 죽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 《여유당전서》에서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얻어진다"라 밝히기도 했다.

▲ 황칠나무

역사적으로 백제의 황칠 갑옷은 햇빛에 반사되면 적들의 눈을 부시게 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고, 당태종인 이세민은 의자왕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갑옷에 황칠을 해서 올리라고 명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나라 황제들은 우리나라의 황칠이 칠해진 갑옷을 입고, 황칠이 칠해진 도기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황칠나무는 조선 후기에 와서 멸종되다시피 했다.

뿌리 쪽에 사포닌 성분을 함유한 황칠나무의 국제학명은 덴드로 파낙스(Dendro Panax, 나무 인삼)로 이는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의미한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는 황칠나무의 안식향(安息香)은 심장기능 강화, 피로회복, 머리를 맑게 하고 온몸의 혈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 또한,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관절통에 효과가 있다.

황칠 도료를 바르면 좀과 녹이 슬지 않고 안식향이라는 좋은 향이 오랫동안 나온다. 원적외선을 뿜어내고 전자파를 차단하고, 임상시험에서도 콜레스테롤과 멜라닌 생성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2007년 경주 황남동에서 발견된 황칠이 담겨진 토기(좌)와 토기 안에 남겨진 황칠덩어리(우)[사진=문화재청 제공]

최근에는 황칠로 칠한 백제의 갑옷이 출토되기도 했고, 통일신라 시대의 선박에서 황칠로 칠한 도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경주 황남동 통일신라시대 유적지에 발견된 항아리 밑바닥의 유기물 덩어리를 분석한 결과 황칠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 천 년이 지나도 황칠의 황금빛과 독특한 향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