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 기행 6일째인 7월20일 오후 하얼빈시 중심부에 있는 조린공원(兆麟公園)으로 향했다. 이 공원은 1906년에 조성한 것으로 처음에는 동사회공원(董事会公園)이라 불렀고 나중에 ‘특별시공원’으로 개명했다. 중국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도리공원’(道里公園)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46년 3월9일 이조린(李兆麟)장군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면서 흑룡강성정부는 이 공원의 이름을 ‘조린공원’으로 바꾸었다. 이조린은 항일투쟁 영웅이라고 한다.

 이곳을 찾은 건 안중근(安重根) 의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덕순(禹德淳), 유동하(柳東夏)  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 의사는 다음날  1909년 10월 23일 아침,  이발소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의거 계획을 꼼꼼히 점검한다.  바로 이 조린공원에서였다.  이들은 전날 입수한 중문판 ‘원동보(遠東報)'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오는 날짜를 자세히 탐지하였다. 계획을 점검하고, 공원 남문 밖 중국인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의거의 성공을 기약하는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장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거사 성공을 다짐한 곳. 조린공원에서 안중근 의사 등의 비장한 마음을 느껴보고자 하였다.

▲ 하얼빈 시에 있는 조린공원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의거계획을 꼼꼼히 점검한 곳이다.

임찬경 박사가 "공원 안에 안중근 의사 관련 표지석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가족들이 많이 와서 놀고 있었다. 정원을 잘 가꾸었고 숲이 울창하여 경치가 볼 만했다. 이 공원에는 중앙에 인공 호수가 있고 그 동쪽으로 작은 산이 있어 이를 화과산(花果山)이라 한다. 서쪽에는 장미고개, 남쪽에는 소남도(小南島)가 있다.  북쪽에는 유리온실이 있고 이런 곳을 다리로 연결해놓았다. 놀이기구에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있고 그 옆에서는 부모가 지켜보고 있다. 일요일 오후 한가한 공원 풍경.

안중근 의사 표지석을 찾지 못해 공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작은 무대에서 노래자랑을 하는지 확성기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 꽃과 나무를 잘 가꾼 조린공원은 중국의 항일영웅 이조린 장군을 안장한 곳이기도 하다.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조린 장군 동상이 나왔다. 그 뒤로 '민족영웅이조린장군지묘'라는 비석을 크게 세웠다. 이조린장군 묘는 성급보호문물로 흑룡강성과 하얼빈시의 국방교육기지, 애국주의교육기지, 덕육(德育)교육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  표지석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동상을 지나 운주교(雲舟橋), 동산조양정(東山朝陽亭), 팔각루전람관 등을 거쳐 공원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왔다. 이 공원은 중국 빙등(氷燈)예술의 발상지라고 안내한다. 1963년 제1회 하얼빈 빙등예술제를 개최하였고, 매년 열리는데 20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 관련 표지석은 입구에 있었다. 작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이 작은 표지석이라도 있으니 이곳의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듯 싶다.  공원을 나와 하얼빈역사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가기 전에 할얼빈시조선민족예술관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하얼빈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하기 전에 조선민족예술관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이곳에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말을 한중우의공원에서 들었다. 

▲ 하얼빈조선민족예술관이 운영하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하얼빈기차역으로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어렵게 길을 찾아 예술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에 붙인  안내문 하나가 우리를 맞이했다. 

"하얼빈안중근의사기념관은 1월 19일 하얼빈 기차역으로 이전하여 재개관하였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참관하실 분은 하얼빈기차역 귀빈대합실 옆에 위치한 신관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개관시간 : 오전 9시-11시30분, 오후 13시30분-16시

불편 끼쳐드린 점 양해 바랍니다.
하얼빈시조선민족예술관
2014년 1월20일"

안으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하얼빈역사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출발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현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