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와일드(Wild)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스크린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영화 ‘와일드(Wild)’의 실제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실화의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의 서부를 종단하는 극한의 도보여행. 26살 여자 혼자서 4,286km를 걸은 것이다.
 
주인공은 셰릴이 아니라 배낭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녀의 몸무게보다 무겁다. 셰릴이 바동거린다. 배낭과의 한판 대결이 벌어지는 첫 장면. 그녀가 뒤로 벌러덩 거리면서 안간힘을 쓰고 일어나니 그제야 배낭은 등에 붙었다. 휴,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차를 얻어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그녀는 연간 125명만이 평균 152일에 걸쳐 완주한다는 PCT(Pacific Crest Trail)를 단 94일 만에 해낸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히말라야 등정과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 청년모험가 이동진 씨(벤자민인성영재학교 멘토)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셰릴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만 도전하지 않았다. 그녀는 2개의 코스를 동시에 지나갔다. 눈에 보이는 PCT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가 그것이다. 후자는 주먹을 휘두르는 아빠. 엄마의 피멍이 든 얼굴을 눈물로 닦아주는 어린 셰릴이다. 이후 엄마 바비(로라 던)는 암으로 죽는다. 그녀는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셰릴에게 조언하는 엄마의 명대사를 놓치지 말자.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엄마가 네게 가르칠 게 딱 하나 있다면, 네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그 모습을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전자는 매일 눈을 뜨면서 펼쳐진다. 이제 ‘리얼다큐’가 셰릴을 기다리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갈증의 고통을 겪는다. 텐트를 친다. 이것도 설명서를 보면서 한다. 어느 것 하나 ‘준비된 프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사막의 한복판. 야생동물이 울부짖는다. 걸을 때는 몰랐던 두려움 또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자다가도 깜짝 놀라서 후레쉬를 켜고 주위를 경계해야하는 나날이 반복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셰릴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한다. 옆에서 손을 잡거나 등을 밀어주는 동반자는 없다. 젊은 남자 셋이서 PCT에 도전하는 경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중도에 포기한 남자도 있었다. 그녀의 고통은 피로 물든 양말을 벗고 발톱 뿌리를 뽑고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이겨냈을까 싶다. 그것은 기록이었다. 외롭고 두려운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특히 셰릴을 온몸으로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이 빛난다. 위기 앞에서 수도 없이 바뀌는 감정과 맞닥뜨리는 표정이나 어린 소년의 노랫소리를 듣고 무릎 끓고 오열하는 모습은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배낭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는가? 그것은 배낭이 마치 그녀의 인생과 같기 때문이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일지희망편지 ‘여행’에서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이 인생이란 봇짐을 내려놓은 후라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라며 “과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생이라는 봇짐을 짊어지고 이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또 얼마만큼 많이 인생이란 봇짐을 내려놓았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셰릴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낭을 버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그녀만의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잃고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던 시절은 방황이었다. 왜냐하면 방황은 목적이 없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방황의 끝을 자살이 아니라 자신을 찾겠다는 선택은 탁월했다. 마침내 종착지에서 셰릴의 벅찬 얼굴은 과거를 딛고 오늘의 문턱에 오른 모습이다. 박수를 보내지 않을 관객이 어디 있으랴. 이제 그녀가 짊어진 인생이란 배낭(봇짐)은 미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