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신을 만나다 기획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많은 신(神)들이 재밌게 등장한다. 이 중에서 치히로를 구해준 ‘하쿠’라는 소년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하천의 신(神)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일본의 전통문화와 신앙이 현대적인 스토리로 재탄생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렇다면 한국엔 없을까? ‘미생’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윤태호 작가는 대표적인 무속신화인 ‘바리데기’를 만화로 그렸다. 2006년도에 펴낸 ‘영혼의 공주, 바리데기(한겨레아이들)’가 그것이다.

서양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국 고유의 신(神)들이 만화로 부활하고 있다. 이를 유물과 함께 전시한 ‘만화, 신과 만나다 기획전’이 2월 28일까지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과 한국만화박물관(이사장 이희재)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민속신앙이 표현된 만화, 저승사자, 꼭두 등 유물 90여 점을 만날 수가 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기획력이 돋보인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이승, 죽음, 저승의 문을 하나씩 통과하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만난 한국의 신(神)들이 만화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 만화 신을 만나다 기획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원귀 vs 가택신

우리 조상들은 집이 중요했다. 이곳에서 천수(天壽)를 누리고 죽는 것을 복(福)으로 여겼던 것.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무엇일까? 집 밖에서 죽는 것이다. 이를 객사(客死)라고 한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귀(寃鬼)가 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씻김굿을 했다. 이러한 원혼에 대한 내용을 만화로 그린 박기당의 『백발귀』, 서봉재의 『유령의 원수』등이 있다. 1부 ‘이승, 원한을 풀고 복을 기원하다’에서는 몽달귀신부적, 삼재부적, 액막이연, 당사주법 등을 유물로 만날 수가 있다.

하지만 악마가 있다면 천사가 있듯이, 원귀와 반대되는 신들이 있으니 이른바 ‘가택신’이다. 집을 보호하는 신이다. 이를 통해 조상들은 가족과 후손들의 평안을 염원했다.

집의 건물 전체를 관장하는 신은 ‘성주’라고 했다. 모든 일이 잘되도록 보살피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어 대문이나 문지방에 깃들어 잡귀나 부정을 막아주고 복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문신’이 있다. 그런데 서로 대립하는 신도 있다.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라는 것. 부엌의 신인 ‘조왕’과 화장실의 신인 ‘측신’이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조왕 : “부엌의 신이자 어머니를 상징하는 나는 조왕각시, 부뚜막신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부뚜막 뒤에 조왕보시기를 두고 날마다 깨끗한 물을 나에게 올리면 내가 따뜻한 부엌과 맛있는 음식을 책임질 거야.”

측신 : “측간 즉 화장실의 신이야.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꼭 기척을 내서 나를 놀라게 하지 말아줘. 나는 조왕신과 대립하는 신이라서 전통적으로 부엌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이밖에 장독대에 살면서 음식으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철륭, 우물을 보호하는 용왕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한 유물은 성주, 조왕그릇, 오방신장 등이 있다. 만화로는 이빈의 『MANA』와 말리의 『도깨비 신부』등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 만화 신을 만나다 기획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삼도천’

최근 450만 관객으로 다큐멘터리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과 죽음을 다뤘다. 특히 할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은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제목처럼 한국인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뭍이 아니라 물을 건너는 것으로 비유했다. 삼도천(三途川)이나 황천(黃泉)길이 그것이다. 삼도천이란 생전의 업에 따라서 세 가지 다른 강을 건넌다는 뜻이다. 강을 건너는 것이 죽음을 상징하는 이유는 인간은 죄가 무거워 정토에 태어나는 일이 어렵기에 환생의 어려움이 깊은 내를 건너는 어려움과 같다는 비유에서다.

그러나 망자의 길에는 동반자가 필요했다. 상여에는 죽음의 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청사초롱이 있고, 망자를 위로해 주는 광대와 악사가 따르고, 망자를 시중드는 시녀나 동자동녀가 있으며, 창이나 칼을 든 무사가 잡귀를 쫓아내기도 한다. 용과 주작은 등천왕생을 뜻하고, 때로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나 염라대왕이 등장하기도 한다.

2부 ‘죽음, 삼도천을 건너다’에서는 꼭두와 용수판 등 다양한 상여 장식물과 망자의 혼을 상징하는 넋전 등을 볼 수가 있다.

 

▲ 만화 신을 만나다 기획전(제공=국립민속박물관)

휴대폰으로 명부를 확인하는 현대판 저승사자

옛사람들은 인간이 죽으면 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승까지 동반하는 인도자가 있다고 믿었다. 저승사자나 바리데기가 그것이다. 이들은 망자의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민속신앙에서는 망자의 저승길이 편안하도록 저승사자를 위한 사자상을 차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만화는 어떠할까? 저승사자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의 하나였다. 검은 삿갓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형태부터 일반적인 회사원처럼 까만 양복을 입고 3인 1조를 이루고 있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명부를 확인하는 등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점이 흥미롭다.

3부 ‘저승, 생전을 비추다’에서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상, 바리데기 무신도, 십대왕 무신도, 시왕기 등 명부세계와 관련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만화로는 이은의 『분녀네 선물가게』, 윤태호의 『바리공주』, 주호민의 『신과 함께』등이 전시됐다. 특히 죽음 이후 십대왕으로부터의 심판과정을 디지털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주최 측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통해서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만화로 표현된 민속신앙과 실제 유물을 접해보면서 민속신앙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뜻 깊고 재미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문의)032-310-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