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젠 잘 잘 수 있으니까 그만 다닐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그때 ‘유방암 수술 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도 안 받았는데, 이곳에 나와서 수련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생회원이 되었고 의식명상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심성(心性)수련을 받게 됐다. 심성수련을 받으면서 나의 아픔이 모두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그리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치매 걸리신 시아버님을 20년이 넘게 모시고 살았다. 눈만 뜨면 뒤를 싸셔서 씻겨드리다 보니 음식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먹을 수가 없었다. 아주 배가 고프면 억지로 물에 말아서 먹고 체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20년 동안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

시아버님은 아주 완고하고 유교적인 노인이셨다. 여자 음성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큰 소리를 내면 헛기침을 하시며 채근을 하셔서 입을 닫고 살았다. 생존을 위해 숨쉬기, 음식 먹기, 일상적인 말을 소리 낮추어 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내 몸의 모든 세포가 반란을 일으켰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협심증, 위장병, 만성 투통에 시달리니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느낀 것은 그냥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계속 차오르는 질문이 몸 아픈 것 이상으로 나를 괴롭혔다.

지금까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았다.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사회봉사를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20년간 교도소에 봉사하면서 힘도 많이 들었지만 내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주저앉아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남편 직장이 충주문화방송 쪽이어서 충주에서 이십 오륙 년을 살았다. 남편 정년퇴직 후에도 그곳에서 봉사하며 살았다. 이제는 다리를 못 쓰니 봉사도 할 수가 없고 몸도 아파서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심성수련 중 내가 살아온 나날들이 마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쁜 일도 되살아났고 슬픈 일도 떠올랐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슬퍼도 소리 없이 울고, 기뻐도 소리 없이 웃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러나 그런 나의 희생이 있었기에 시아버님은 집에서 편안한 임종을 하셨기에 나는 자신에게  잘 살았다고 칭찬을 했다.

전에는 건강도 좋지 않았고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남편과 외국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일 년에 두 차례 정도는 다녀올 정도로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좋아진다는 것은 기적일 뿐만 아니라 현상 유지만 하고 있어도 감사한 일이다.

단월드에 매일 나와서 수련한 것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물은 바로 밑으로 흘러도 콩나물이 자라듯이 조금씩 몸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밝아진다. 특히 회원들과 서로 등을 두드려줄 때 그 시원함이 너무도 좋다. 명상시간에 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오기 전과 너무 많이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만사가 귀찮았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다. 지금까지 봉사하느라 못한 것들을 이제 마무리를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단월드 수련에 임하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글. 우혜 양정옥 수필작가 yangjo1220@hanmail.net

『수필춘추』등단(2006년). 수필춘추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글향기 회원. 수필집 『아직도 꿈을 꾼다』, 공저『때론 바람이고 싶다』『해거리하는 나무』 『나를 바라보는 시간』 『글향기 머무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