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최고의 유행어 중의 하나는 ‘관피아’(관료+마피아)이었다. 관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 조직 ‘마피아’처럼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쌓인 관행, 부패 등의 폐단이라는 지적에서 사용됐다.

200년 전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 또한 오늘날의 관피아와 같은 탐관오리를 접하고 이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3가지의 대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무엇일까?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사진)은 8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1층 예인홀에서 한민족원로회(공동의장 이수성, 김동길) 주최로 열린 제9차 한민족미래포럼에서 '2015 대한민국, 다산에게 배우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사진=윤한주 기자)

공직자의 덕목은?
 
다산은 문과에 급제하고 이런 시를 남겼다.
 
 “둔하고 졸렬해 임무 수행 어렵겠지만(鈍拙難充使)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합니다.(公廉願效誠)”
 
공정과 청렴은 공직자의 덕목이다. 박 이사장은 “다산의 『목민심서』는 전부 공렴을 말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 공직자가 공렴, 공심 등을 버리면 나라를 버리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발표문에서 다산의 생애는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는 수학기(修學期)로, 유년 시절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기 전까지인 28세 때까지다. 경사(經史)를 두루 익히고 과거공부에 온 힘을 기울여 유학공부를 섭렵한 시기를 말한다. 둘째는 28세부터 벼슬을 그만둔 38세까지의 사환기(仕宦期)이다. 정조대왕의 재임 기간에 해당하는 시기로, 한림학사 ‧ 홍문관교리 ‧ 암행어사 ‧ 곡산도호부사 ‧ 동부승지 ‧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세 번째는 40세부터 57세까지의 18년간 강진 유배기간으로 많은 양의 책을 집필한 저술기(著述期)이다. 네 번째는 57세에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삶을 마무리하고 75세를 일기로 고향 집에서 운명했던 정리기(整理期)이다. 
▲ 8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1층 예인홀에서 제9차 한민족미래포럼이 열리는 가운데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2015 대한민국, 다산에게 배우다'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썩어 문드러진 조국을 구하는 법
 
박 이사장은 다산이 암행어사로 활동한 ‘사환기’를 주목했다. 이때 탐관오리를 접하고 다산의 개혁사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다산은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상이 썩은 지 오래다(天下腐已久, 천하부이구).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腐爛, 부란)”고 개탄했다
 
박 이사장은 다산의 개혁사상으로 3가지를 꼽았다.
 
첫째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의 생각은 교육에서 결정된다. 그것은 교과서를 바꾸는 것이다. 당시 사서육경이 주 과목이었다. 다산은 사서육경을 해석한 주자학에 반대해 실학적 이론으로 사성육경을 재해석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주자학설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학문세계를 열고자 한 것이다. 박 이사장은 “모든 논리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공직자와 국민이 해야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의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개혁하자”(新我之舊邦)라는 다산의 주장이 그것이다. 썩고 병든 나라를 고치고 바꾸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셋째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앞의 2가지의 성과는 국부(國富)의 증진에 달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철저한 연구와 개발이다. 당시의 유교 양반사회에서 하층민이나 하는 기술의 필요성을 다산이 주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농업의 발전은 농기구의 개발이고 군대의 발전은 무기개발이다. 상업도 마찬가지다. 다산은 수원화성을 건축할 때 거중기를 발명하는 등 과학기술에도 진가를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