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안고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단월드에 2012년 5월에 큰딸의 권유에 마지못해서 갔다. 그 당시 나에게는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다. 두 번의 유방암 수술을 하고, 설상가상으로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더 산다는 것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어느 날 큰딸이 “만약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시면 우리 삼남매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겠어요?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서로 뿔뿔이 흩어진 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힘이 드셔도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 라고 간청을 했다. 큰딸이 간 뒤 혼자서 꼼꼼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떠난 빈 둥지는 쓸쓸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쏟아지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늙었다고 슬픔이 어찌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이 70에 남이 보는 앞에서 울 수도 없고, 나로 인해서 자식들의 마음까지 괴로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단월드에 나갔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근 일주일쯤 지나니까 불면증이 사라졌다. 몸은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이곳저곳 쑤시고 더 아팠지만 불면증이 없어진 것이 너무 신기해서 싫어하면서도 매일 수련에 참석했다. 명상시간에는 남몰래 수없이 울었다. 내가 불면증에 시달린 것은 다리 관절 수술을 한 후 지병이 많다 보니, 진통제를 못 먹고 그냥 아픔을 견디느라 잠을 못 잤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 년 이상 계속되었다가 유방암에 걸렸다. 수술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다 했으나 불면증은 가시지 않아 늘 밤이 두려웠다. 4년 6개월 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내가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나보다 하루 일찍 병원에 입원했다. 2~3일 후에 퇴원하려니 했는데 그 길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질 못했다.

유방암 2차 수술을 받은 채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남편이 의식을 잃기 전 큰딸에게 말 하시길 “내가 꼼꼼히 생각을 해 보았는데 엄마가 유방암에 걸린 원인은 불면증인 것 같다. 엄마의 불면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는 그 말이 유언 아닌 유언이 되고 말았다.

장례를 치루고 아이들이 서둘러 알아보니 삼성동에 수면 내과가 있다고 해서 갔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자면서 머리를 검사했다. 불면증의 원인이 사람마다 다른데 내 경우는 밤에 산소가 뇌로 올라가지 않아서 뇌가 죽기 싫어서 못 잔다고 했다. 그러니 밤에는 산소 발생기를 하고 자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거부했다.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병원 측 말에 자식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알아낸 곳이 단월드였다. 그만큼 나에게는 불면증이 큰 문제였는데 그것이 해결되었다.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수필작가 우혜 양정옥

『수필춘추』등단(2006년). 수필춘추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글향기 회원. 수필집 『아직도 꿈을 꾼다』, 공저『때론 바람이고 싶다』『해거리하는 나무』 『나를 바라보는 시간』 『글향기 머무는 정원』

 
 
글. 우혜 양정옥 수필작가 yangjo12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