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책장에는 주로 정치, 경제 관련 책들이 즐비하다. 좀 더 나간다면 미래학 관련 도서 정도? 주된 관심사가 정치적인 이야기, 구조적인 문제, 시대정신 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언니의 손에 조금은 낯선 책 한 권이 들어왔다. 제목은 《一指 이승헌의 붓그림 명상》 (한문화). 저자는 책 제목에 나온 대로 일지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이다. 대학과 대학원의 총장으로 국제뇌교육협회장, 한국뇌과학연구원장도 역임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명상가'이자 '자연치유 권위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一指 이승헌의 붓그림 명상》 (글/그림. 이승헌, 한문화 출판)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대를 논하는 이들의 머리 아픈 이야기에 빠져 지내던 언니가 전체의 부분인 '나'를 돌아보는 명상집을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쳤었다. 아니, 지칠 때가 된 것인지도, 지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거대 담론 속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고 또 그 과정에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의 그릇된 욕망을 하나둘 알아가면서 분개했다. 어느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니와 같은 소시민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두커니 세상에 대한 투지의 불씨가 잦아들던 12월의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던 선배로부터 이 책, 《붓그림 명상》을 받게 되었다. 선배의 설명인즉슨, 1년이 52주인데 매주 한 편씩 총 52편의 붓그림과 명상 메시지가 담겨있으니 매주 월요일마다 한 편씩 읽고 나를 돌아보라는 것.

"365일 마음이 자라는 생활 명상집"
책 표지 귀퉁이에 써진 부제목마저 의미심장하다. 언젠가부터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매일 도돌이표 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비록 세상은 바꾸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은 하루하루 자라게 해보자는 마음에 작은 희망을 품고 책을 펼쳤다.

선배는 2015년이 되면 매주 한 편씩 보라 일렀지만, 선배가 그러건 말건 마음 가는 곳, 펼쳐지는 곳 읽기 시작했다. 글이 빽빽하지도, 머리 싸매고 봐야 할 그래프나 도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긴 호흡으로 한 음절 한 음절 읽어내려간다. 메시지와 함께 그려진 붓그림은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고…다시 보니 얼굴 같기도 하다.

▲ 《一指 이승헌의 붓그림 명상》은 52개의 명상 메시지와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붓그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어렵다는 책도 읽어 젖히던 언니였는데…생각해보니 내 마음자리 한 번 제대로 보아준 적이 없어서 이리도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하고 반성하게 된다.

언니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33주차 메시지,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을 가져라'.

'...인생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스스로 발명'하는 것이다...
...남의 생각, 남이 제시한 답을 따라 살지 말고
스스로 묻고 선택하여,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과연 내게 주어진 이 삶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내 것으로 인지하고 스스로 창조하고자 애써왔을까.' 언니 안에서 답하기 녹록지 않은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행간을 읽는 속도도 더뎌진다. 그런데 말이다. 묘하게 마음이 기뻐한다. '인제야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것이냐?'며 기뻐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3권을 샀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 후배에게 《붓그림 명상》을 선물했다. 지금 당장 세상은 바꿀 수 없더라도, 지금 당장 그 세상의 중심인 나는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그 질문의 시작이 바로 내 마음자리 돌아보기임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