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영화계에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일반 상영관에서 다른 상업영화를 제치고 흥행 1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 영화가 언제 이토록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가. 과거 이와 비슷한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한 적은 있었지만…. 5년 만에 휴머니즘이 빛나는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보고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문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인간다움의 핵심은 인간성 회복에 있다. 우리 삶과 역사가 닮았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에 있을 것이다.

▲ 민성욱 박사
늙은 농부와 늙은 소가 그리는 휴머니즘과 늙은 노부부가 그리는 휴머니즘은 어떻게 다를까? 왜,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 감동을 받는가? 어쩌면 그들의 삶이 우리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거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너무나 평범해서 새롭다고나 할까. 하여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과 너무나 닮아 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뵙는 듯 친근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보는 듯 했다. 즉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각도 낫고, 미래의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 올려 지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는 결혼 76년차 노부부의 주된 일상이 전개된다. 우연히 끼어든 죽음도 그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한 노인영화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부부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큰 해답을 던져 주고 있다. 다 큰 자식들이 모두 그 강을 건너 곁을 떠났고 부부만 남게 되었을 때, 두 분이 늘 강가에 앉아서 자식들이 오고가는 것을 지켜보며 기대와 아쉬움을 품었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도 그 강을 건너시게 될 것이다. 이분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로서 이별을 준비하고 죽음을 정리하고 마지막을 완성해 주고자 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누군가를 위해 그처럼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를 많은 부부들이 두 손을 꼭 잡고 보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곳곳에서는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눈물을 훔치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의외의 부부들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던 여자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울지 않았던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당신, 내가 죽어도 안 울거지?”
“........”
 

영화 잘 보고 당혹스러워 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아직도 웃음이 난다.

이 땅에 부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의 문제는 어떻게 다른가? 죽음을 향해 가는 삶, 하지만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될 삶은 항상 결코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면 영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도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언제 산을 넘고 강을 건넜을까?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삶과 닮아있는 우리 역사,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산과 강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 산과 강을 건넜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기록된 역사가 전부가 아니다. 기록된 것은 극히 일부다. 그저 우리는 기록된 역사를 통해 그 시대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와 마주하는 첫 장면이자 모든 것이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과거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나를 만나고 또한 역사속에 등장하지 않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여기서 상상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고대와 현대, 시대를 넘나들면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행문화를 갖고 있는데, 이것을 두고 ‘선도문화’라고도 한다. 여기서 상상력은 창의력으로 연결된다. 항상 역사를 이끄는 힘은 아이러니 하게도 현실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 있었다. 여기서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뇌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상상의 힘,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 주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의 힘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갖고 있는 남다른 민족의식, 어쩌면 그것은 단군이래로 계승 발전시켜 온 문화와 연관이 많다. 민족적인 차원에서 문화의 힘을 강조한 이가 백범 김구선생이다. 역사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로부터 우리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 메시지는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고대 시가인 ‘공무도하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백발의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강물 속에 뛰어들었던 한 남자와 그 뒤를 따라가며 말렸던 그의 아내, 남자가 강물 속에 빠져 이내 사라지게 되자 공후인을 타면서 ‘공무도하가’를 부른 후, 남자의 뒤를 따라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던 여인,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고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 공무도하가 ]
                                “공무도하 -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 - 임이 끝내 그 강을 건넜네. 
                                 타하이사 -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당내공하 - 가신 임을 어이 할꼬.”

“공무도하가”에서 시작된 서정적 자아가 고구려 시대“황조가”, 고려 시대 “청산별곡”, “서경별곡”등과 민요 “아리랑”을 거쳐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우리 정서와 맞닿아 있다.
역사를 통해 삶에 대한 진한 향수와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의 힘으로 해내는 작지만 큰일들이 우리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오늘도 우리는 그 위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써내려 갈 것이다.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