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생>의 열기가 뜨겁다. 총탄은 없지만, 그 어느 전쟁터보다 치열한 직장인의 하루를 그려내며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이다.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임시완 분)는 프로입단에 실패하면서 인생의 전부이던 바둑을 그만두고 무역상사의 비정규직사원으로 들어갔다. '고졸 낙하산 인턴'이라는 딱지를 달고서, 편견에 맞서며 진지하고 치열한 삶을 산다.

10화에서는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장그래가 영업3팀의 위기를 벗어날 결정적 한 방을 날린 모습이 그려졌다. 회사 내에서 무례하고 건들건들한 태도로 악명높던 박과장의 비리를 밝혀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과 함께 한 팀웍이 빛났다. 인턴사원 장그래는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라며 차분하게 상황을 되짚어 '신의 한 수'를 둔다. 문제를 해결해 나간 열쇠는 그의 전부였던 바둑으로부터 얻은 통찰이었다.

▲ tvN 드라마 <미생>

드라마 미생과 바둑

원래 <미생>은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윤태호 웹툰 작가가 원작을 연재할 때도 네티즌 평점 1위를 계속 고수하였고, 누적 조회수 10억 건이라는 기록으로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윤태호 작가가 작품 의뢰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둑 기원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원작이 큰 환호를 받았던 데에는 샐러리맨의 일상을 그려내며 공감을 산 것도 있지만, 그 저변에 깔린 깊은 통찰도 크게 작용하였다.

바둑을 두는 이를 가까이서 봤다면, 그들의 생각이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장기간의 바둑 훈련은 뇌를 활성화하여 직관적 통찰을 돕는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평균 12.4년간 바둑을 훈련한 바둑 전문가를 대상으로 뇌 영상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를 촬영했다. 평균 연령 17세인 17명의 바둑 전문가와 16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바둑 전문가 그룹은 일반인 그룹보다 정서적 처리와 직관적 판단에 관여하는 편도체와 안와전두엽 부위 기능, 공간적 위치 정보를 처리하는 두정엽 부위의 기능이 활발했다. 즉 바둑 훈련이 정서적 처리, 직관적 판단을 처리하는 뇌 부위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하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기원의 연구생으로 바둑 훈련을 한 장그래가 직장에서도 깊은 통찰과 직관을 보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바둑은 명상이다?

게임인 동시에 두뇌훈련법인 바둑. 그러나 바쁜 현대인이 바둑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명상 외에 다른 두뇌 스포츠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둑인들도 면전에서 승패를 가르는 바둑 판 앞에서 패배를 맞닥뜨렸을 때 이에 대한 정신적 관리 훈련을 해야 한다. 이를 견디거나 지켜본 사람들은 이 과정이 명상과도 같다고 이야기 한다.

일본에서 약 20년 동안 바둑계의 1인자 자리를 고수한 우칭위안(吳淸源)은  “거울의 표면을 닦지 말고 거울의 안쪽을 밝게 하라.” 고 말했다. 상대와 마주 앉아 있는 상황에서 불안이나 부정적인 내면을 걷어내고 평정하게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용직 전 프로기사는 그런 것을 담당하는 기술로는 명상이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또한, 윤태호 작가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바둑 기사들이 좌절감을 풀어내는 것에 대해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바둑은 기본적으로 명상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작가 스스로도 <미생> 이전에 큰 인기를 안겨 준 <이끼>를 연재하기 이전, 3~4년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명상서적과 성경 등을 많이 읽은 것이 도움되었다고 말했다.

▲ <미생>은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동명의 웹툰(윤태호 작가)이 원작이다

주목받는 두뇌스포츠, 명상

크게 집중 명상, 마음 챙김, 자비 명상 등으로 나누어지는 명상은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명상을 훈련한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잡념과 혼란스러운 마음에서부터 벗어나 감정 조절을 하고,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며 의식적으로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명상이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을 높이며 두뇌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특히 명상은 우울증(depression)과 만성통증(chronic pain) 치료와 웰빙감(sense of well-being)을 높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명상이 심리적인 안정 효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뇌의 구조를 변화시켜 인지와 기능 향상, 공감 능력, 노화 예방에까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명상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와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성인의 뇌는 경험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서로 일치한다.

▲ 미국인들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단월드)

명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훈련으로 불안, 우울 등에 효과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것은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다. 우리는 직장 상사나 팀원, 가족과 같은 많은 사람과의 관계, 혹은 업무 등에서 스트레스 상황을 만난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잡념으로부터 분리하여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자극들로부터 지장을 덜 받고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약물 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명상과 같은 대체 요법의 효과가 더욱 반갑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내과학회지'에 밝힌 47종의 이전 연구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명상이 불안증과 우울증 그리고 통증과 같은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반면 기분이나 수면 혹은 약물 사용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마음챙김 명상은 지속적인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하여 부적절한 감정 반응을 줄게 하고,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바꾸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고통자극이 계속될 때 명상 초보자와 비교해서 명상 전문가의 불안 관련 뇌영역인 뇌섬엽 피질과 편도의 활동이 감소하여 빠르게 적응하고 뇌를 최적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한국식 명상을 현대화한 뇌파진동 명상이 우울증 감소 및 수면장애 개선효과, 긍정적 정서를 강화하는 등의 효과가 우수하다는 연구결과가 세계적인 연구저널에도 수차례 실렸다. 한국식 명상의 핵심은 에너지를 느끼는 것으로, 잡념을 없애며 주의집중 상태에 이르게 하여 뇌가 가진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의 런던대학교와 한국뇌과학연구원, 그리고 국내 대학 연구진은 한국식 명상 뇌파진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한국식 명상 훈련을 한 이들은 스트레스가 감소했고 긍정적인 정서가 강화되었다. 또한,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가 효율적으로 증가되는 결과를 보였다.

명상, 뇌에서 기억력과 학습 능력 관장하는 영역 활성화

심리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의 라자르 박사팀은 마음챙김 명상을 한 대상자들의 뇌영상을 스캔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명상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뇌에서 기억력과 학습 능력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명상을 수행한 참가자들은 단 8주 만에 MRI 스캔에 나타날 정도로 뇌에 큰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다. 뇌 회백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뉴런) 간의 연결이 이전보다 훨씬 조밀해지고 두터워진 것이다.

특히 기억과 학습, 정서조절을 담당하는 좌측 해마와 기억과 감정에 중요한 후 대상피질, 공감과 관련한 측두 두정접합, 운동조절을 돕는 소뇌 등의 회백질에 변화가 관찰되었다. 사라 라자르 박사는 "뇌의 이런 특정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은 실제적인 정신 운동이다. 마치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뇌도 사용해야만 양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생리적인 조절도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 심사위원 앞에서 암산을 하거나 연설을 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명상 훈련은 염증이나 스트레스 호르몬과 같은 생리적 반응들의 완충 혹은 조절하는 능력을 높였다.

 

명상, 두뇌 노화 예방으로 건강한 노년까지

대인관계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는 공감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것은 때로 감정 소진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비 명상을 한 사람의 경우에는 공감할 때의 부정적인 감정은 줄고 긍정적인 감정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비, 긍정적 감정, 모성애와 관련한 뇌 앞쪽 부위인 안와전두엽, 중심부의 복측 선조체와 전방대상피질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졌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클리프 사론 연구팀은 세포의 지속(장생)과 관련된 분자에도 명상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염색체의 말단에서 DNA 세그먼트를 연장시키는 말단소체복원효소(telomerase)라고 한다. 이 효소는 세포 분열 동안 유전적 특징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길이가 역치 이하로 감소하면, 세포 분열은 멈추게 되고 점차적으로 노년기에 접어 들게 된다.

명상 훈련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말단소체복원효소 기능을 높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마음챙김 훈련이 세포 노화 과정을 지연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식 명상도 두뇌 구조를 변화시켜 노화를 예방한다는 의미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실제 뇌의 피질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은 한국식 명상인 뇌파진동 숙련자와 일반인의 뇌를 MRI, DTI 영상으로 비교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 결과 뇌파진동 수련 그룹의 뇌에서 사고와 판단, 감정 조절의 중추인 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 두께가 증가했다. 또한, 내측 전전두엽의 회색질과 백색질의 두께가 동시에 증가했다.

이는 뇌파진동이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 예방과 항노화에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주의력, 사고력, 기억력, 정서조절 등 두뇌개발 측면에서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결과는 세계 신경과학분야의 탑 저널인 SCAN(Social Cognitive Affective Neuroscience)에 게재되었다.

약 15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명상 훈련이 한 뇌의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존의 관점과는 매우 달라서 논란이 많긴 하지만, 많은 연구가 명상 수련이 육체적 건강에 있어 생물학적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두뇌 건강법, 명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조해리 뇌과학 전문기자 hsaver@naver.com
참조. <Mind of the meditator> Ricard, M., Lutz, A., & Davidson, R. J. (2014).
감수.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이승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