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알고 보면 무궁무궁한 이야기 소재를 담고 있다. 이를 잘 가공하여 창작 소재로 활용하는 일이 앞으로 과제다.

우리의 기록 자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을 확인하고 국내외 전문 창작자들과 전통 소재 전문가들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창작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20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산,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한 "옛 기록, 이야기로 피다' 인문 정신과 전통창작 소재 국제콘퍼란스가 그것이다.

이날  "전통문화자산을 활용하기 위한 조건과 활용 사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성석제 소설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덕분에 접한 사자소학, 동몽선습, 등 한문책을 접한 책들이 소설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박시백 만화가가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옛 기록, 이야기로 피다'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외가에서 붓으로 써서 액자로 걸어둔 한문 글귀를 보고 그 뜻이 궁금하여 묻고 자료를 찾아보고 나중에 씨디로 나온 '조선왕조실록'에서 맨 처음 그 글귀를 찾아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글귀를 바탕으로 단편소설 '해설자들'을 썼다. 그가 꼿힌 글귀는 "不係世累雖日高矣 源淸之流 表正之影 豈無所關哉(불계세누왈고의 원청지류 표정지영 기물소관재)". 뜻은 "조상과 상관없이 후손의 마음됨이 충성스럽다면 어찌 고상하지 않으리오마는 근원이 맑으니 그뒤의 흐름도 맑은 법이고 푯대가 바르니 그 아래의 그림자도 곧은 법, 어찌 관계가 없다고 하겠는가."

시를 먼저 쓰기 시작한 성석제 소설가는 '오봉선생실기'를 보고 소설을 쓰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변두리와 시골의 향토지, 문집에서 사람다운 어떤 것, 인지상성의 향기를 강하게 느끼고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고칠 수 있는 미시적이고 아름다운 수많은 단초를 보았다. 그러던 중 '오봉선생실기'를 접하고 그에게서 이름 없는 민중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어떤 인물의 삶이 소설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나온 소설이 '인간의 힘'(2003).

그는 어려서 접해 한문책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10여년 작업을 통해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펴낸 박시백 만화가는 역사에서 대작을 건졌다. 그는 일간신문 시사만화가로 근무하던 시절  사극 '왕과 비'를 보면서 조선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 조선정치사에 매료돼 만화로 그릴 생각을 했다. 때마침 '조선왕조실록'이 국역되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힘이 됐다. 그는 실록에 기초해 조선 정치사를 만화로 풀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신문사를 사직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매일 공부하여 노트정리를 하고 그 노트를 보면서 얼개를 짜고 구성한 뒤 콘티작업을 했다. 수많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작업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사진, 초상화, 기록을 참조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상상력을 보탰다. 그리고 펜과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컬러링을 하여 완성했다.

박시백 만화가는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면서 위대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권력자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데서 오는 엄정함, 기록의 보존과 관련한 선조들의 정신, 사관의 주장과 당파성에도 진실에의 접근을 가능케 하는 팩트의 풍부함 등을 들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연구와 보급이 빈약해 잘못된 지식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실록'의 경우 황희,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잘못된 상식이 만연하고, '선조실록'의 경우 유성룡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징비록'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박시백 만화가는 풍부한 콘텐츠의 보고인 '조선왕조실록'을 더욱 연구하여 학자는 물론 작가들도 잘못된 지식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하사극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은 '정도전'을 중심으로 '전통 기록자료 콘텐츠의 성공요건과 콘텐츠 제작 전략'을 밝혔다. 정현민 작가는 2014년 KBS 1TV 정치사극 '정도전'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으며 '정통사극' 열풍을 일으켰다. '정도전'은 국회 보좌관으로 활동한 작가의 생생한 정치적 경험과 다양한 역사 기록자료의 분석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정현민 작가는 '정도전'을 통해 역사인물을 새롭게 조명하고 정치인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2014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정도전'을 쓰기 위해 여섯달 동안 역사책과 관련 논문을 공부했다.

 사극에 처음 도전한 정현민 작가는 제작전략으로 '역사에 충실한 공영성이 강한 사극', '기존 전통사극과의 차별화', '현실감(공감의 영역)'이라는 세 가지를 세웠다고 밝혔다.

▲ 드마라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현민 작가는 "사극은 이미 결과가 알려져, 시청자가 결말을 안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는다는 것을 안다. 이는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의 두터운 우정을 깊이 있게 그려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이라는 징검다리는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허구'를 활용하는 게 각색의 포인트라고 했다.

정통사극은 느린 전개방식과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 시청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현민 작가는 사극을 집필했다. 그가 이런 추세를 어떻게 돌이켰을까?

"'정도전'에서는 트렌드를 반영했다. 가벼운 톤의 연출과 대사를 과감하게 했다. 아랫배에서 나오는 소리가 적게 한 것이다. '정치'라는 말을 쓰지 않았는데, 이런 말도 과감하게 썼다. 또 전개를 빠르게 했다. '정도전'은 정통사극과 퓨전 사극 중간에 있지 않을까."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도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돋보였다. 정현민 작가는 전통 기록자료에 적시되어 있거나 사료를 통해 유추되는 인물상을 강조하거나 이를 극대화하는 수법을 썼다. 이성계가 함경도 사투리를 쓰거나 이인임의 신진 세력이 넘을 수 없는 권문세가의 뇌회한 점, 정몽주의 충성, 최영의 재물에 대한 무욕 등이 그 예이다.

"시청자들이 자녀나 누군가에서 정몽주, 최영 등을 설명할 때 어떤 공통된 것이 있다. 그러한 것을 강조하거나 극대화했다. 즉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거나 크게 부각시켜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

에피소드를 쓰기 위해 그는 '고려사' 가운데 지(志)를 많이 참조했다고 한다.

 드라마 '용의 눈물'이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 정도전'의 기획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현민 작가는 "사극은 옛날 이야기지만 오늘의 현실을 투영해야 하며 대중은 이러한 사극에 깊이 공감하다. 현대정치드라마는 쉽지 않다. 그동안 현대정치드라마는  성공한 예가 드물다." 

 그는 현대극에 사극에 나오는 '명대사'를 넣는다면 오글거리겠지만 사극에서는 '명언'의 반열에 오른다며 사극은 힘들기도 하지만 장점이 있다고 했다.  자극적인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하나. 사극에서는 살인 장면 등이 많아  '막장 사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정성 있게 구현하면 막장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어느 드라마작가가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맞는 이야기"라며 "드라마 속에 펼쳐지는 이슈와 사건들이 현재를 사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계적인 테마파크 프랑스의 퓌드푸 테마파크 성공사례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즈(House of Cards)' 성공사례도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