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이란 국호는 ‘옛 조선(B.C. 2333~B.C. 238)’과 ‘근세조선(서기 1392~1910)’으로 구분된다. 옛 조선은 1세 단군 ‘왕검’께서 건국하여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2,096년간 존속했다. 이제부터는 정확하게 ‘단군조선’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로부터 우리역사는 북부여로 이어진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3국 시대’를 거쳐 ‘2국 시대’(발해, 통일신라)로, 다시 고려, 근세조선으로 이어진다. ‘근세조선’은 태조 이성계의 건국으로부터 27대 순종까지 518년간 존속하였다.

우리가 매년 국경일로 기리고 있는 ‘10월 3일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일’로 금년은 단기 4347년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국호는 유구한 역사를 통해 질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 국학원 옆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 자리한 단군왕검입상 [제공=국학원]

단군을 개국시조로 알고 존경과 사랑을 잊지 않았던 백성들과는 달리, 근세조선의 권력의 주축인 지식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극심해졌다. 그러나 근세조선의 개국 공신들과 역사의식이 있는 일부 식자들에 의하여 단군을 기리는 풍조는 이어져왔다.

그것이 근세 조선지식인들의 단군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단군제영한시(檀君題詠漢詩)’로 남아 있다. 혼란했던 조선 초의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운 권근(權近 1352~1409), 하연(河演),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신광한(申光漢), 심언광(沈彦光), 이수광(李晬光), 허균(許筠), 김육(金堉), 최오길(崔嗚吉), 정두경(鄭斗卿), 윤봉구(尹鳳九), 윤서(尹緖), 유득공(柳得恭) 등이 있다.

권근은 국조 단군을 다음처럼 기렸다.

“전설을 듣자니 아득한 옛날, 단군님이 나무 밑 언저리에 내리시고, 임금 되어 동쪽 나라를 다스렸는데, 저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때라오. 천년의 세월이 아사달(阿斯達)에 들어오고, 만대가 천지자연의 원기를 판가름하니, 좋은 고풍이 오래도록 이어지며, 서산엔 이름다운 석양이 붉게 물들었다.” (聞說鴻荒日 檀君降樹邊 位臨東國土 時在帝堯天 千年入斯達 萬代判鴻濛 好古踟躕久 西山落照紅)

- 양촌집 陽村集 권1 -

그로부터 약 4백년이 흐른 뒤인 정조 시대,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 1784년)를 지어 만주의 드넓은 ‘발해 땅은 단군조선의 땅이며 바로 우리의 땅’이라고 외친다.

“대동강 물에 황무지 같은 안개가 스며드니, 봄날 왕검성이 그림책과 흡사하며 우임금이 만리 길 도산에 와서 옥구슬을 집은 듯, 좋은 아들 해부루를 가상하게 기억한다.” (大同江水浸烟蕪 王儉春城似畵圖 萬里塗山來執玉 佳兒尙憶解夫婁)

- 영제집 冷齋集 권1 -

뿐만 아니라 근세조선을 다녀간 중국의 사신들도 자신들의 역사보다 오랜 단군조선의 역사를 접한 놀라움을 시로서 남겼다. 1521년(중종 16)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온 한림원 수찬인 정사(正使) 당고(唐皐)와 부사(副使) 사도(史道) 등 이다. 당고는 단군사(檀君祠)를 지어 존경을 표한다.

“개국이 그 얼마나 아득하던가. 이 분이 조선의 시조인데, 온갖 가시나무를 베어 없애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동토를 낙토로 만들었으리.” (開國何茫然 朝鮮此鼻祖 荊棘非剪除 伊誰樂東土)

- 신증 동국여지승람 新增 東國輿地勝覽 -

이제 남은 일은 동이족의 후손이며 단군 조선과 근세조선을 거쳐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들의 오랜 역사와 빛나는 조상들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하는 것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리를 심어 세운 나라 조선(朝鮮)’. 그 사랑이 마치 ‘아침 해처럼 세상을 선명하게 비추는 나라 조선(朝鮮)’. 그런 완전한 나라를 이미 4천3백 여 년 전에 세운 국조 단군에 대한 뜨거운 존경과 남겨주신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홍익인간이 되어 지구촌을 영원한 진리로써 조화를 이룬 이화세계(理化世界)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군 조선 개국의 뜻대로 ‘나와 민족과 인류를 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최고의 본분을 알알이 실천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학원장(代), 전국민족단체연합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