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330척과 싸워 이겨 오랜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한곳에 모았다.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처럼 나라가 어려울 때 백성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을 난세영웅(亂世英雄)이라 한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에게는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한 곳으로 모으는 '난세사화(亂世史話)'가 있다. 바로 ‘국조 단군’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단군을 실재 인물로서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알고 있었다.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을 단군의 계승자로 자처했고, 일반 백성들은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간주했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 다섯 번째 이야기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구심이 되었던 우리 역사 속 '홍익인간' 정신을 소개한다.

역대 통치자들 스스로 단군의 계승자로 자처

불교의 승려였던 일연이 쓴 《삼국유사》(1281)는 단군의 건국을 동국사의 첫머리에 적으면서 홍익인간이념을 전하고 있다. 유학자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1287)에는 동북부여·남북옥저·예맥 등이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사유고》에는 신라 화가 솔거가 단군 초상을 1,000여 폭 그렸으며, 고려 시대 삼남 지방에서 집집마다 단군의 초상을 모시고 있었다고 나온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후기 신라와 고려 시기에도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 북애자가 쓴 《규원사화》(1675), 단군임금이 고조선을 세우고 이후의 역대 임금들이 47대에 걸쳐 만주와 요동, 한반도 북부 일대를 다스리는 1천 2백여 년간의 치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선 시대 공식적으로 단군에 대한 제사를 지낸 기록은 15세기 초와 17세기 중기, 19세기 조선 말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이때는 나라를 새로 세웠거나, 전쟁이나 침략으로 나라의 기반이 흔들릴 때이다.

이는 조선 초기, 태조 원년(1392), 태종 13년(1413), 세조 원년(1455), 성종 3년(1472)에 《조선경국전》, 《동국사략》, 《세종실록》,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는 숙종 5년(1679), 조선 말기는 고종 5년(1868)에 기록되어 있다.

태조에서 성종 대에 이르는 15세기 100년 동안 유례없이 많은 사서가 편찬되어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역사 인식 정립을 통해 조선 건국의 명분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기도 했다.

특히 15세기는 조선 건국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의 사료에서 국조로서의 단군을 구축하려 했다. 이때 '조선(朝鮮)'이라는 국호 제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대의 단군조선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고려조부터 내려오던 단군에 대한 설화나 시문집 등을 사서에 대폭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을 기본 텍스트로 삼으면서 고려조에서 형성된 민간의 다양한 논의들을 사료로 채택해 역사화했다. 이 시기에 단군조선은 역사적으로만 공인된 것이 아니라 단군 자체가 국조로 인정되어 태조 원년에 이미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조처가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 시대 두 번째로 단군에 관심을 끈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17세기였다.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해 민족 고유의 역사, 문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성리학 이외에 이단시 되던 양명학, 불교 등에 관심과 함께 유학자들은 앞다투어 역사서를 편찬하며, 중국과 다른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는 18~19세기 실학으로 계승되어 구한말 동학혁명의 역사 인식에 기여하고, 20세기 독립운동의 이념적 지주 역할로 '홍익인간' 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개인 차원에서도 자신의 뿌리, 정체성에 대해 늘 궁금해하지만, 집단 차원에서도 그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 홍익인간 이념은 상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생활 속에서 깊숙이 자리 잡고, 사회적 무질서나 외침으로부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 다음 편에는 구한말 항일운동의 구심점이었던 ‘홍익인간’ 정신을 소개한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1편. 민족의 정신적 보배를 아십니까? (클릭)
2편. 교육이념 '홍익인간'에 대한 끝없는 논란(1) (클릭)
3편. "홍익인간 모르면 무식꾼이야! (클릭)
4편. '신화(神話)'라는 두 글자에 곰의 자손이 돼버리다! (클릭)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 1. 한국 기독교교육의 교육적 인간상의 이상과 현실, 조성국
2. 17세기 단군 이해의 민족주의적 경향, 김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