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새로운 국가에 맞는 교육이념이 필요했다. 1949년 100명으로 구성된 조선교육심의회는 '홍익인간' 정신이 민족 고유의 이상을 표현하면서도 민주주의·복지·사랑·인류공영과 같은 전 인류의 이상과 통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교육이념으로 채택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교육이념으로 채택된 지 60년이 흘렀지만, 홍익인간 이념은 여전히 장식장에 전시된 골동품 마냥 이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 교육현장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에 담긴 의미가 원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 안에는 홍익인간 이념의 출처인 '단군신화'에 대한 논란과 관련 깊다.

▲ 국조 단군 영정. 단군이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로 역사학계의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자료=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부정하는 현실

홍익인간은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1281)와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1287)에 처음 언급되었다. 이 문헌은 단군의 건국을 동국사의 첫머리에 적으면서 홍익인간 정신을 표현했다.

위서(魏書)에 이르되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열어 이를 조선이라 부르니 그때는 요 임금과 같은 시대라 하였다. 고기(古記)에 이르되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사람 세상을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세 높은 산 중의 하나인 태백산을 내려다보며 홍익인간(弘益人間) 할만 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삼국유사》 발췌-


지금까지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단군신화(檀君神話)'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신화나 전설은 역사와 달리 원칙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단군신화’라는 용어는 단군의 실존 역사를 한낱 허구적인 이야기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단군신화'라는 용어는 일제의 어용관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단군고>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일본은 1915년 <조선사> 편찬 계획을 세워 준비해오다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조선총독부 직할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켰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도 열심히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려 했을까?
 
당시 우리는 단군에서 시작하는 자국사에 큰 자부심을 품고 있었고, 백제 등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주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지식인은 잘 알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조선인을 뿌리가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여 그들의 민족을 부끄럽게 하라. 그것이 식민지 국민을 식민지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시했다.

일본은 한국사를 식민지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변조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었다. 이후 한반도 북부에는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때 이완용, 권중현, 박영효, 구로이타 가쓰미 등의 일제 어용학자들이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특히 이마니시 류는 한국사의 출발인 단군조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말살한 장본인이다. 그에 의해 한국은 초기에는 중국의 식민지였다가, 삼국시대에 일본의 식민지로 둔갑한다.

여기서 이마니시 류의 수제자 이병도는 고려 이전의 고대사 연구를 맡았다. 조선총독부가 침략을 합리회하고 한국사를 말살하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고대사다.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중국 식민정권인 한사군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세웠다.


너무 늦은 老학자의 참회

이병도 박사는 일제 때 한국사 편수관으로 일하면서 식민사관에 물들어 해방 후에도 단군조선을 신화로 취급하고 고구려 초기의 역사까지도 부정했다. 그는 역사학계 수장으로 그의 역사관은 우리나라 사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를 바로잡고자 역사학자 최태영 박사는 친구인 이병도 박사에게 잘못된 고대사를 바로잡아 식민사학자라는 멍에에서 벗어나라고 3년 동안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마침내 이병도 박사는 죽기 3년 전인 1986년 “역대왕조의 단군제사가 일제 때 끊겼다”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단군(檀君)임금 관련 기록은 신화(神話)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봐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과는 180도 다른 주장을 펼친다. 당시 아흔이었던 노학자의 양심고백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1986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이병도 박사는 이 글에서 "대체 천(天)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중에서 천(天)을 군장(君長)의 뜻으로 해석할 때에는 개천절(開天節)은 즉, 「군장(君長)을 개설(開設)한다」는 것이 되므로 개국(開國), 건국(建國)의 뜻이 된다. 그러면 우리의 이른바 개천(開天)은 즉 최고(最古) 시조인 단군(檀君)의 즉위와 개국(開國)을 의미하는 개천(開天)이라고 보아야 하겠다."고 밝혔다.

이병도 박사의 참회는 너무 늦은 것이었을까? 우리는 역사적 성찰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 체,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단군신화라는 용어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여전히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을 지식으로 간주하는 '실증사학자'들은 단군을 허구적 존재로 해석한다.

이에 대해 종교학자 이은봉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화는 고대인의 세계관이요, 신학이고 가장 절실한 설명의 틀이므로 고대인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사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만약에 과학적으로 실증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하며 단군을 한국의 역사 일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한다면 그리스도교에서 신앙의 아버지로 숭배받고 있는 아브라함도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인물이라 하여 제외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이은봉 <단군·단군신화·단군신앙> 61쪽-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  다음 편에는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구심점이 되었던 홍익인간 정신을 소개한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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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 이주한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역사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