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이 올라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영화가 있다. 눈이 아니라 가슴에 울림으로 남는 작품이 그렇다. ‘비포 선 라이즈(Before Sun Rise)’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신작 ‘보이후드(Boyhood)’를 만난 소회다. 

먼저 감독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지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배우와 제작진을 만나 15분씩 촬영했다고 한다. 특히 6살 엘라 콜트레인이 실제로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불의의 사고로 다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불확실성을 감독은 뚝심으로 작품화시켰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일월드컵에서 만난 유치원생을 데려다가 작품을 만든다는 프로젝트다.
 
영화는 6살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가 18살이 될 때까지의 성장기를 다뤘다. 그가 커가면서 바뀌는 세상의 풍경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국학문화마당 57번째로 선정한 영화 ‘보이후드’를 인성이란 키워드로 소개한다. 
 
▲ (영화 보이후드=영화 '보이후드' 포스터)
# 부모
 
싱글맘 올리비아(패트리샤 아케이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성격이다. 대학원생에서, 시간강사, 마침내 교수까지 된다. 학생들로부터 존경도 받는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가 않다. 이혼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의 성격이 바뀐다. 
 
이사가 잦아질수록 작별 인사도 못 하고 친구를 창밖으로 바라보는 메이슨 주니어의 마음은 점점 내면으로 침잠한다.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또한 엄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으니 불만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따라 하던 발랄한 소녀는 어느새 말수가 적어진다.
 
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자유롭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도 가고 캠핑도 하면서 멘토와 같은 아빠라고 자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가족의 생계는 엄마가 책임지니,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장면이 바뀔수록 메이슨 주니어의 키는 훌쩍 커지고 목소리도 굵어진다. 그와 함께 부모 또한 마음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가장의 역할을 못 해서 뒤늦게 반성하는 철부지 아빠나 자녀를 분가시키고 인생이 끝난 것 같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의 모습 등이 그렇다.
 
인성이란 사람됨을 말한다. 아이들의 첫 인성교재는 부모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한 아이의 성장만이 아니라 부모의 성장이 중요한 이유다. 
 
# 홀로서기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학교가 아니면 학원으로 간다. 반면 메이슨 주니어는 아르바이트 한다. 점장으로부터 욕도 듣고 칭찬도 듣는다. 친구가 아니라 동료라는 관계도 겪는다. 일전에 벤자민인성영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를 미리 체험해본 것이 소득이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한다. 혼자서 돈을 벌어서 대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구한다. 부모가 자녀의 대학교와 결혼까지 보장해주는 한국과 다른 풍경이다. 어른아이로 나이만 먹을 것인가? 아니면 일찍부터 인생을 책임질 것인지? 영화도 이런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새 아빠가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자동차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또한 메이슨 주니어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에 푹 빠져든 아들의 모습에 대해 부모는 뭐라고 그러지 않는다. 부러운 장면이다. 한 사람의 진로를 점수나 부모가 결정짓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메이슨 주니어는 졸업작품전에도 참가한다. 자신의 작품을 둘러볼 때 한 교사가 다가와서 제자를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성교육이 단순히 도덕점수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꿈을 설계하고 응원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 이후 또 하나의 걸작이 나왔다.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봤으면 좋겠다. 15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