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월17일 아침 6시 백하(白河)역에 도착했다. 90년대 중반에 백두산을 갈 때는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연길로 이동하고 다시 차량으로 백두산 아래 호텔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번에는 밤새 기차로 움직이니 다소 불편해도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
역 앞에는 택시 수십 대가 대기하여 요란하게 손님을 부른다. 이번 손님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 호객 행위가 요란하다. 그 옆으로 관광버스는 조용히 예정된 손님을 맞이한다.

관광버스로 이동하여 강원도식당 2부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재중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이름이 왜 2부인가.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백두산 북쪽에 위치하여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부 안도현에 속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松花江) 상류의 이도백하 강변을 따라 취락이 조성되어 있어 이 지역을 이도백하라 하였다. 말하자면 강 이름이기도 하고 지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1983년 '이도'(二道)로 개칭하였다.

 한중 수교를 한 직후에는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이 한국인이었으나, 요즘은 중국 국내에서도 백두산 관광을 많이 한다. 그로 인해 이도백하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여파로 강원도식당은 헐리게 되고 새로 식당을 연 곳이 강원도식당 2부이다. 돼지고기, 닭고기, 두부, 김치, 된장국, 달걀찜. 한국에서 먹는 음식과 다를 바 없다.
“백두산 올라가려면 삼 뿌리 하나씩 드시지요?”
류경성 광주국학기공연합회장이 삼을 내놓았다. 어제 가이드가 백두산에 갈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며 삼을 먹으라고 하더니, 미리 준비한 모양이다.

▲ 백두산 관광 매표소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천지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백두산 등산길에 올랐다. 도로 양 옆으로 위로 곧게 자란 소나무가 즐비하다. 미인송(美人松)이라는 이도백하의 명물이다. 곁가지가 많지 않고 쭉쭉 뻗은 모습이 과연 미인 같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버스가 꽉 차있다. 관광객들을 향해 비옷, 겨울옷을 사라고 한다. 백두산은 위로 올라가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가 자주 온다. 모두 비옷을 챙겼다.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백두산 초입까지 이동했다.
초입에는 전에 없던 큰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백두산 관광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주는 듯하였다. 표를 받는 입구에는 줄이 늘어서 있다. 깃발을 든 가이드가 이곳저곳에서 인솔해온 여행객들을 이끌고 입구로 몰려든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다. 말소리가 시끄러우면 중국 관광객이다. 말이 없는 곳은 얼추 한국 관광객이다.  
▲ 백두산 천지가 안개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한참 줄을 서 있다 들어가니 다시 줄을 선다. 백두산 정상까지는 지프차로 이동한다. 11명이 정원. 수십 대가 쉬지 않고 왕래하여 관광객을 나른다. 버스요금, 입장료, 지프차 요금ㅡ편하긴 한데 내야 할 요금이 적지 않다.
지프차가 내려준 곳은 백두산 9부 능선. 이곳에도 전에 없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내려오는 관광객이 대기하는 곳으로 음식물, 잡화 등을 파는 판매점도 있다. 가이드가 당부한다.
“제를 지내거나 국가를 부르면 안 됩니다.”
전에는 그런 일이 많아 중국 당국이 긴장했다.

추워 겨울옷을 걸쳐 입는데 이명학 국학운동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여전히 반팔차림이다.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할 만큼 건강관리를 잘하여 추위에도 끄떡없는 듯하다.

▲ 중국은 백두산 정상 부근에 관광객 편의 시설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비를 피하거나 음식물을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백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A선, B선 두 갈래 길로 나누어 나무계단을 만들어 올라가기 좋게 하였다. 관광객 편의를 도모하면서 자연보호에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A코스로 가기로 했다. 올라가는 도중 경관이 좋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선택한다. 위에서 B선으로 이어지니 어느 쪽을 가도 된다. 50명 단위로 올려 보낸다.
백두산 풍경을 내려 보며 천지를 향해 다가간다. 천지를 못 볼까 조바심이 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정상에 올라서니 안개가 자욱하다. 천지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안개가 흩어지기를 기다렸으나 안개는 끝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실망감이 급격히 밀려왔다. 아쉬움을 달래며 B선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천지가 보였다. 물뿐만 아니라 건너편까지 보였다. 아! 천지. 말없이 지켜보았다. 잃어버린 고토(古土).
한기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한다. 일행 일부는 먼저 내려갔다. 우리도 서둘러 내려왔다.
“천지 봤어요?”
서로 물어보며 백두산에 온 기쁨을 나누었다.
줄 서는 대로 지프차를 타는 통에 모두 흩어졌다.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여 다 모이기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 장백폭포 물줄기가 세차게 흩어진다. 폭포로 가는 길을 정비하여 안전하고 편하게 폭포를 구경할 수 있게 하였다.

이번에는 장백폭포로 버스를 타고 갔다. 도로 정비를 잘하여 버스가 상당히 위쪽까지 올라갔다. 버스에서 내려 걸으려니 비가 쏟아진다. 그대로 폭포까지 올라간다. 나무 계단을 쭉 만들어 놓아 흙을 밟지 않아도 되나, 빗물이 미끄럽다.

장백폭포는 전에 비해 사람이 접근하는 지역이 줄었다. 사고가 난 후로 통제를 한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감흥은 덜하다.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으로 이 일대는 구한말 한일구국투쟁의 본거지였다. 백두산 포수 홍범도 의병대를 시작으로 광복까지 항일 전사들이 이곳에서 일제 침략자들과 싸웠다.  이곳을 찾은 우리는 풍경에 취해 감탄만 할 수 없다.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에서도 독립투사들의 얼을 느낀다.

백두산을 내려와 이제 청산리 대첩 현장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