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일본에 나라를 세웠다!
백제가 일본에 나라를 세웠다!
  • 박성수 명예교수
  • culture@ikoreanspirit.com
  • 승인 2014.10.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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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명예교수의 역사에세이 23편

1931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이다. 그 해에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선전포고 없이 침략전쟁을 시작했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후 20년 만의 일이다. 다시 6년 뒤인 1937년에 중일전쟁을 도발하여 중국을 침략하더니 4년 뒤인 1941년에는 미국이란 호랑이를 고양이로 알고 물고 늘어졌다가 스스로 묘혈墓穴을 팠다. 일본은 지금도 한국에 대한 침략을 침략이 아니라 말하고 만주사변 이후부터의 대륙침략전쟁만 침략이라 주장하고 있다.

오늘의 아베 정권 역사관도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극우파의 역사관이다. 일본 좌익이 말하는 15년 전쟁설이란 것도 한국에 대한 침략을 정당하다고 보는 제국주의 이론에 동조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침략만 침략이요 한국에 대한 침략은 침략이 아니라는 것은 일본 좌우익이 모두 같으니 좌우 할 것 없이 대국주의 사관이다. 그러면 이 같은 엉터리 역사인식은 언제부터 싹튼 것일까.

일본에는 한국을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누가 그런 인식을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7세기부터의 일이다. 그때부터 한일 간의 역사가 왜곡된 것이니 1,500년이나 된 해묵은 인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태초에 한국이 일본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해 왔고 지금도 희미하지만 기억하고 있다.

일본 고대사는 중국의 사서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에 이르러 비로소 나온다. 거기에 보면 왜인은 어디 있었나 하면 한반도의 “대방군帶方郡(지금의 황해도)에서 남으로 내려가면 한국이 있고……. 다시 내려가면 바다를 동남쪽으로 가면 구사한국狗邪韓國이 나온다. 왜인은 바로 그곳에 산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한반도 남쪽에 한국이 있고 다시 바다를 건너가면 일본 땅에 또 하나의 한국인 구사한국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일본에 왜인이 살고 있으나 그들을 지배하는 사람은 구사한국이란 나라라는 것이다. 바로 일본에 백제의 분국分國 즉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일본열도로 건너간 한국인은 백제인 말고도 가야, 신라, 고구려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삼국사기』에는 그런 사실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으나 일본에는 기록은 물론 유적 유물이 허다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 곳곳에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었고 일본인은 아직 야만인이라 나라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몰랐다. 일본에 나라가 선 것은 7세기의 일이었다.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패하여 망한 것이 바로 7세기였다. 그때 많은 백제 왕족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그곳에 백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구주 그리고 동쪽의 일본 본토의 <나라>였다. 나라는 일본말이 아니라 한국말이었다. 그곳에 이미 1백50만이 넘는 백제인들이 살고 있었으니 원주민을 압도하는 숫자였다. 총인구의 90%나 되었다는 연구가 있다. 그전에도 이미 남 구주에 정착한 백제왕족이 있었으니 그들은 나라보다 더 일찍부터 정착하여 담로(식민지)을 설치하고 조국에 두고 온 그리운 백두산(太伯山)을 정하여 하늘에 제사(天祭)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일본서기』에 다 지워지고 없고 난데없이 천황이 등장하여 야마토(대화) 국가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다 나라를 세운 공은 어디로 가고 백제인의 역사는 깡그리 없어지고 일본인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일본서기』에는 없어졌으나 지역마다 전해오는 전설은 그대로 남아 백제인을 포함한 한국인의 역사가 생생하게 전해오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그들이 고국에서 일본에 가져간 신교문화神敎文化가 살아남아 일본의 기층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무천황神武天皇은 달랑 이름만 적혀 있을 뿐 무엇을 했는지 그 업적이 하나도 없다. 이런 공란이 9대 천황까지 계속되니 그들이 모두 가공인물에 틀림이 없다. 그냥 아무 대본도 없이 연극을 꾸민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역사를 표절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서기』와 『삼국유사』의 줄거리는 아래 도표와 같은 것이다.

【일본】  천신  →  천조대신  →   신무천황 <신칙과 신기삼종>
【한국】  환인  →  환웅  →  단군 <홍익인간 이화세계와 천부인>

위에 든 【일본】측의 도표에서 말하는 천신天神은 우리나라의 환인을 갖다 베낀 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천신을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부부 신으로 개작하였다. 그러나 그 역할은 같다. 이 두 부부가 딸 아마테라스(천조대신)를 낳았는데 부모와 딸을 합치면 삼신이 된다. 삼신을 만들기 위해  천조대신의 오빠요 남편인 소시머리(소머리) 신을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시켜 한국(맥국, 춘천)으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동해안을 따라 이즈모(出雲)로 가서 신사를 짓는다. 그다음에 신무천황이 나오는데 단군에 해당하는 신이다. 즉 천조대신은 신무천황에게 정권을 넘겨주면서 그 징표로 신기삼종(神器三種 즉 거울과 구술과 칼)을 주고 이어 “너와 너의 후손은 대대로 일본을 다스리라”는 신칙神勅을 내린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환인이 환웅에게 내린 천부삼인天符三印과 홍익인간 이화세계하라는 명령이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천황이 천조대신에게 일본을 통치하는 영구 집권의 권한을 내린 것이니 가장 중요하다. 만일 신무천황이 가공인물이요 천조대신으로부터 받은 신칙이 가짜라면 천황의 권위는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신무천황을 가짜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일본 제일의 국립대학인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다. 그러니 일제는 그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불경죄로 몰아 교수직을 박탈하였다. 그러나 여러 학자가 신무천황 가짜 설에 동조하니 그 후유증이 컸다. 천황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일제가 천황을 앞세워 국민을 하나로 묶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는 마당에 일개 대학교수가 겁도 없이 일본의 만년대계를 방해하니 괘씸한 일이었으나 함부로 여러 교수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많은 젊은이를 천황을 위해 죽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침략 전쟁을 성공리에 마칠 터인데 신무천황이 가짜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일본제국주의 전쟁은 1930년대를 전성기로 하여 막 절정에 달했는데 누구보다도 천황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기어이 신무천황을 살려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백제인의 후손이 많이 사는 <나라奈良>의 한 야산 기슭에 한국식의 작은 봉분(丸山)이 있는 것을 보고 신무천황의 릉으로 위조하였다. 그리하여 대대적인 축제를 거행하고 신궁을 짓고 기념관을 세우는 등 소란을 피웠다. 그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일본의 역사를 1,260년 더 늘려 기원 2600년으로 만들었다.

세상에 이런 역사 날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어이 1940년을 기원 2600년을 만들어 축제를 열었다. 지금도 가짜 신무천황의 릉이 헐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필자가 어릴 때 소학교에서 <기원2600년>이란 노래를 배워서 불렀고 그 곡과 가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교육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신무천황의 릉이 가짜란 사실을 폭로한 사람이 마에 게이이찌(前圭一)이란 일본인 교수다. 그의 책  『나라奈良』 ( 1990년)은 지금 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아주 작은 안내 책자에 지나지 않지만 귀중한 책이다. 완곡하게 일제의 역사왜곡을 고발하고 있어 더욱 용감하고 깨끗한 책이다. 이 책은 앞으로 일본이 다시 침략전쟁으로 2,000만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자가 없는가 하고 아쉬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귀중한 기억은 1994년 일본 구주의 백제촌에서 열린 학술회의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발표자의 한 사람이면서 왜 그런 시골에 한국의 태백산이 있으며 백제왕족이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의아해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의 회의가 얼마나 귀중한 학술회의였는지 모른다. 다시는 그런 모임에 나가서 발표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나온 이 모임의 발표문을 읽어 보니 이 회의를 주관한 고 아라키 히로유키(荒木博之)교수의 뜻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고인이 된 그는 지금도 지하에서 아니 하늘에서

“한국과 일본의 모든 역사학자들이여! 제발 황국사관과 일제식민사관의 쇠사슬을 끊고 해방되시오!”

라고 목멘 소리로 부르짖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날을 맞아 서로 즐겁게 역사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지.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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