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조선교육심의회는 많은 논란 속에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했다. 조선교육심의회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흐려진 국가 관념을 강력히 고취하는 민족적 성격을 띈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4년 후 최초의 교육법을 제정할 때 홍익인간 교육이념에 대한 논란은 다시 일어났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교육이념이 건국신화와 관련된 공허한 것이고, 추상적이라 과학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제5회 국회 법률안 심의 과정에서 이성학 의원은 "교육이념을 홍익인간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바란다"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 문교사회분과위원장을 맡은 이영준은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한 것은 특별한 뜻은 없고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문구를 포함한 것"이라고 얼버무려 답변했다.

이때 일부 정치권의 반발에도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정립하는데 앞장선 이가 바로 초대 문교부장관(1948년 8월~50년 5월) 안호상 박사였다.
 

“홍익인간 모르면 무식꾼이야”

"해방후 우리의 교육현실은 일제의 오랜 민족교육 말살정책으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정도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제도정비와 함께 교육이념 정립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안호상 박사 동아일보 인터뷰 중, 1994년 10월 9일 보도)

▲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

안호상 박사는 장관직에 부임하자 마자 민족정신회복을 교육시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서양의 교육이념은 인간주의·인문주의가 중점적 사상인데 홍익인간은 이보다 훨씬 강도가 높고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홍익인간이란 말을 제외한 다른 표현을 있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안호상 박사는 "36년 일제 식민지 교육잔재를 하루 빨리 씻고 민주주의 교육을 구현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주장한 것에 대해 회고한다.

"우리나라 교육법 1조에 사람을 크게 유익케 하기(홍익인간) 이념이 들어간 것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홍(弘)에는 널리뿐 아니라 크게의 의미도 들어 있다. 크게라면 입체성을 갖는다. 또 '이롭게'라면 물질적인 것만을 가리키기 쉽다. '유익하게'라면 정신과 물질이 모두 해당된다.

교육이념을 홍익인간으로 정한데는 유독 나의 주장만은 아니었다. 이미 미군정시절 한국에는 1백 명으로 구성된 교육심의회가 있었고 이 심의회에서 20여 회의 전체회의 끝에 홍익인간을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정했던 것이다." -<한뫼 안호상 20세기 회고록(민족문화출판사, 1996)> 중-

훗날 일부 학계나 정치권에서 홍익인간 교육이념에 대한 비판이 일 때 마다 "시대가 높은 이상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아쉬워 하기도 했다.

평생 왜독(倭毒)·중독(中毒)·양독(洋毒) 등 '삼독(三毒)'에 의해 왜곡된 한민족의 역사 바로잡기에 헌신했던 안호상 박사는 "홍익인간 모르면 무식꾼이다!"라고 혼쭐을 낼 정도로 민족혼을 일상의 삶 속에 녹여낸 민족지도자였다. 그가 말하는 '삼독'은 왜는 일본, 중은 중국, 양은 서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외세에 의해 한민족의 빛나는 역사,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신문화가 왜곡돼 온 현상을 의미한다.

또한, 민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 생전 대통령, 재벌 가리지 않고 민족교육을 잘못시킨다는 질책을 삼가지 않았다. 심지어 종교계 원로 앞에서도 "너희 놈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소리치며 실책을 꼬집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렇듯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홍익인간은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으로 확정된다. 1958년 문교부에서 발간한 자료집 <문교개관>을 보면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仁),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고 홍익인간 교육이념을 풀이하고 있다.

▲ 《문교개관》(1958)표지(좌)와 교육이념을 설명한 1장(우)


끝나지 않는 논란 "홍익인간, 우리나라 교육의 치명적 결함"


교육법 제정 이후로도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서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지지하는 입장, 반대하는 입장, 절충적인 견해가 있었다.

조선교육심의회 중 한 명이었던 오천석(제8대 문교부장관)은 "홍익인간이란 문구가 과정시대(過政時代)부터 문제가 되어온 말인데, 역사적 근거를 지나치게 논하기 보다는 그 박애주의적 정신만을 취하는 것이 옳을 줄로 생각한다"며, 당초 '홍익인간' 교육이념을 반대했던 입장에서 추후에는 어느정도 절충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교육학자 김인회는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현대인의 눈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삼국사기》나 《제왕운기》의 저자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작품이 정체성과 민족의 자존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대 교육철학 이인기 교수는 "후진국 국민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민족의 역사가 오랜 것을 자랑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자국의 위대함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신화적인 교육이념을 하루빠삐 청산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우리나라 교육의 치명적 결함"을 홍익인간 교육이념으로 꼽았다.

이렇듯이 '홍익인간' 교육이념의 논란은 끊임없는 논란과 반대 이견 등 우여곡절 끝에 채택되어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고유의 교육이념으로 정착됐다. 그러나 '잘 살아보세'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엄청난 속도로 산업화·현대화를 이루며, 대부분의 교육이 서양의 합리주의 실리주의를 기준으로 근대화 되어가면서 점점 전통 문화에 대한 가치는 잊혀져 갔다. 교육이념과 교육과정은 서로 별개로 움직였고 결국 1997년 교육법을 교육기본법으로 개정하면서 교육이념에 대한 규정은 제1조에서 제2조로 변경됐다.

이미 잘 알다시피 홍익인간은 한민족건국이념으로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한다.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기록한 단군의 조선 건국 역사가 일제에 의해 '신화'로 둔갑되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 만의 고유한 '홍익인간' 정신이 이렇게 오랜 시간 핍박받는 데에는 역사를 신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 다음 편에는 '신화'라는 두 글자에 곰의 자손이 돼버리다‘가 연재된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1편. 민족의 정신적 보배를 아십니까? (클릭)
2편. 교육이념 '홍익인간'에 대한 끝없는 논란(1) (클릭)
 

.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