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만 잘 놔도 은행에서 스카웃해 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주산이 용도폐기되었다. 많았던 주산학원이 사라지고 상업학교에서도 주산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컴퓨터가 계산을 다해준다. 사람과 달리 즉각 결과를 알 수 있고 틀리지 않는다. 주산뿐이랴! 몸을 쓰는 힘든 일은 기계가 한다. 위험한 일은 로봇이 담당한다. 그럼 사람은?

사람은 점점 직장에서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단순노동, 육체노동을 담당할 사람은 거의 뽑지 않는다. 대신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호한다. 창의력, 다른 말로 한다면 사고력, 상상력이다. 앞으로 시대는 생각의 시대다.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생각의 시대다. " 이런 주장을 하는 인문학자 김용규가 '생각의 시대"(살림)를 펴냈다.

그는 20세기 정보형멱이 지식의 생산과 전달 방법뿐 아니라 형태와 본질마저 바꾸어놓았다고 진단한다. 그 변화는 인류가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하기 시작한 이래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규모라고 한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은 세 가지인데 첫째, 정보혁명은 지식의 폭증을 가져왔다. 둘째 지식의 소재와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셋째, 정보혁명은 지식의 수명을 단축했다.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나고 이제는 생각의 시대라는 것이다.

▲ 김용규 저 생각의 시대.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학습을 통해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에 의존하여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법에만 익숙하다는 데 있다. 격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법을 모른다. 문명인이 사냥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 능력을 회복하여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

고대 그리스인들이 개발한 생각의 도구를 활용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면 된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시기인 '축의 시대(die Achsenzeit)에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약 400년에 걸쳐 개발한 다섯 가지 시원적인 생각의 도구를 소개한다.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는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이다.

 메타포라로서의 은유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생각 도구다. 그것은 본질을 파악하게 하는 기능뿐 아니라 창의적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언어 습관에도 은유가 담겨 있다. ‘불길이 살아난다’라는 문장도 자세히 보면 불을 생물에 비유하고 있다. 발명도 종종 은유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동물의 날개를 통해 비행기를 떠올리고 굴러가는 돌멩이를 통해 바퀴를 고안하는 것도 다 은유의 힘이다. 한마디로 은유는 대상의 본질을 꿰뚫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는 가장 훌륭한 생각 도구다. 
 

‘아르케(원리)’는 어떤 역할을 할까. 아르케로서의 ‘원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준다. 인간은 관찰을 통해 ‘원리’를 고안하고 그 원리를 검증한 뒤, 그것을 통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로 쓴다. 길게 말할 것 없다. 이 책에서 원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소개된 ‘가추법(假推法)’은 지금도 세계에서 큰 부를 쌓은 사업가와 아주 유명한 학설을 발표한 과학자들 모두가 활용하고 있다. 
 

‘로고스(문장)’는 어떤가. 로고스로서의 ‘문장’을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 정도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제대로 된 문장을 쓰게 된다는 것’이 곧 ‘제대로 된 정신 구조를 갖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놓았다. 예를 들어 ‘누가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 어떻게 - 왜’라는 육하원칙(five W’s and one H)은 보도문을 쓰는 지침일 뿐 아니라 ‘자연과 사물의 질서에 합당한 정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문장이란 기본적인 정신 구조를 ‘세팅’하는 엄청난 생각 도구라는 것이다.
 

 ‘아리스모스(수)’도 단지 생활에 필요한 계산 도구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아리스모스로서의 ‘수’란 인간이 관찰한 자연과 사회, 그리고 예술 현상을 보다 활용하기 쉽게 패턴으로 표현해주는 생각 도구다. 예를 들어 조개의 나선형 모양이나 피요르드 해안의 굴곡들은 육안으로 볼 때는 불규칙한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형상을 ‘수’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패턴화될 수 있다. 그게 ‘프랙털 이론’이다. 이와 같은 ‘수’를 통해 인간은 또 다른 무수한 활동으로 옮겨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레토리케(수사).’ 어쩌면 ‘수사’라는 생각 도구가 현대인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명확한 판관이 없는 시대이고 기준이 불투명한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는 ‘누가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해진다. 서점마다 심리학 서적과 대화법 책들이 그득하게 쌓이는 이유다. 이런 시대에 ‘수사’라는 생각 도구는 필수품이나 마찬가지다.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상당 부분 완성해놓은 수사라는 생각 도구를 익히는 순간, 우리는 가장 강력한 설득의 수단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의 시대'는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저자는 저술의 목적이 ‘실용’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개발한 이래,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온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라는 ‘다섯 가지 생각 도구’들을 손쉽게 익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해놓았다. 그리고 그 방법들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낙관했다.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인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정통 인문학자다. 그는 그동안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중적 철학서와 인문교양서, 그리고 ‘지식소설’을 집필해왔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들도 그의 글쓰기를 거치면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바뀌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런 그를 가리켜 ‘인문학의 연금술사’,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는 ‘생각’에 주목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 사이, 그리스에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류 문명을 탄생시킨 ‘생각의 도구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졌던 것. 그 생각의 도구들은 그 당시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매던 그리스인들에게 황금기를 가져다주었고 더 나아가 서양 문명, 아니 인류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 ‘생각의 도구들’은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였던 것이다.
저자는 '생각의 시대'에서 바로 그 생각 도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한다. 남다른 생각 하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바로 지금, 늘 새로움을 창안해야 하고 한발 앞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개개인들에게 이 책에 소개된 생각 도구들은 반드시 익혀 사용해야 할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인류사적으로도 우리는 근대 문명을 낳은 ‘근대적 이성’의 무능함과 폭력성을 넘어서야만 하는 과제를 눈앞에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그 해답이 바로 ‘생각’에 있다고 말한다. 세계대전과 대량 학살, 차별과 증오를 낳은 근대적 이성을 대신할 ‘부드럽고 유연한 이성’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주요 저서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신』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철학 통조림』시리즈 『설득의 논리학』 『데칼로그』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관 옆 철학 카페』 『알도와 떠도는 사원』(공저) 『다니』(공저) 

도서명_생각의 시대
지은이_김용규
발행일_2014년 8월 27일
판형_신국판(152*210)
제본_반양장
페이지_508p
가격_16,000원
분야_인문교양
ISBN_978-89-522-2905-2 0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