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겸임교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우리 고유의 중심철학은 무엇일까?
영국에 신사도,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 중국에 중화사상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철학이 있었는가?
바로 홍익인간 재세이화, 천지인 삼원사상, 한(一)철학이 있다.
이런 철학을 담은 우리 민족 최초의 경전이 바로 천부경(天符經)이다.
민족 고유의 경전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화민족의 척도라 하겠다. 그 민족의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을 담은 경전의 존재는 문화의 깊은 뿌리를 나타낸다.
많이 알려진 것이 종교 경전인 불경, 성경이 있고, 중국의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도 있다.
한때 천부경은 신라 말 최치원 선생이 쇠퇴하는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또는 일본강점기 때 독립의지를 고취하고자 만들어진 위서라는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 말 충신인 농은 민안부 선생의 유품에서 갑골문으로 된 천부경이 발견됨으로써 논쟁은 일단락됐다고 보인다.
우리 경전이나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천부경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인인 우리는 적어도 알아야 할 것이다. 

 천부경(天符經)


一始無始一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  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
衍萬往萬來用變不動
本本心本太陽昻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천부경"은 일본강점기 때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에 실린 것과 최치원의 후손 최국술이 편찬한 ‘최문창후전집"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이다. 최문창후전집에 실린 천부경은 최치원의 친필이 아닌, 암송되어 전해 오던 것을 후일 구술로 쓴 것이기 때문에 환단고기에 실린 것과 음(音)은 같으나 글자가 틀리는 곳이 7곳이나 된다. 그 외에 고려 말 충신인 농은 민안부 선생 유품에서 발견된 갑골문 천부경 등이 있다. 천부경이 전해 내려온 과정에 대해서는 환단고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부경"은 천제(天帝)의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桓雄大聖尊)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였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일찍이 신지(神誌)의 전서(篆書)로 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문서(帖)를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천부경은 환인에서 환웅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녹도문으로 기록됐다


고려 말에 목은 이색, 휴애 범세동 등이 천부경을 주해하였다고 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조선 명종 때 천문학 교수를 지낸 남사고의 ‘격암유록"에 “단서용법 천부경에 무궁조화 출현하니, 천정명은 생명수요, 천부경은 진경이며...”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천부경 전문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천부경이 1916년에 계연수가 묘향산 석벽본을 탁본하여 1917년에 단군교당으로 보낸 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0년에 도교사상가이자 정신철학자인 전병훈이 그의 저서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 해제를 실은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부경 해제이다.

그 후 1921년 계명구락부에서 발행한 잡지 ‘계명" 4호에 한 별의 천부경 해제가 실렸다. 그리고 1922년에 유학자인 김택영의 천부경 해제, 1923년경에 석곡 이준규의 천부경 해제, 1930년에 단암 이용태의 ‘천부경도석주해", 1937년 ‘단군교부흥경락"에 실린 노주 김영의의 천부경 주해 등이 있다.

그리고 구한말 임시정부의 간부로 활약했던 이시형이 1934년에 ‘감시만어"를 통해 천부경 전문을 소개하였고 독립운동가 홍범도, 여운형 등이 ‘천부경찬"을 남겼다.

이처럼 일본강점기에 천부경이 널리 알려지고 주해서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천부경을 민족정신의 원형으로 인식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민족의 정체성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천부경은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말미암아 근근이 전해져 오다가 1970년대 말 환단고기의 출판과 함께 시중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천부경이 81자라는 매우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지만, 다음과 같이 우주만물의 생성과 구성 및 변화 원리, 그리고 인간 완성의 원리를 담고 있다.

“우주의 근원적 존재원리인 ‘一’은 시작 없이 시작되어 하늘, 땅, 사람의 세 갈래로 나타나지만 그 근본은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다.

이렇듯 하늘과 땅과 사람이 원래의 근본 상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 형상화된 상태, 형상화되기 이전과 형상화된 상태가 어울려 작용하는 상태, 이 네 단계를 거쳐 우주 만물이 완성되며, 우주 만물은 본래 따로 뗄 수 없는 한 덩어리다.
마음의 근본과 우주 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 때 일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마음을 밝힌 사람에게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들어가 있다. 이와 같은 ‘一’은 끝이 없는 ‘一’로 끝난다.”

일반적으로 경전이라 하면 성인(聖人)의 가르침이나 행실, 또는 종교의 교리들을 적은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천부경에는 성인에 대한 내용이나 종교적 교리에 관한 내용은 없고 영원히 변치 않는 우주의 근본진리를 담고 있어 종교 이전의 근원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천부경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우리 민족에 의해 기록되고 보존되어 온 자랑스러운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