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차고에서 혼자 일하며 애플의 첫 컴퓨터를 만들었다. 워즈니악은 한 인터뷰에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집 밖에 나가지 않은 덕분에 창조성을 키웠다"고 밝혔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 역시 숲 속에서 혼자 걷기를 좋아했으며 저녁식사 초대는 단호하게 거부한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내향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향적인 성격을 선호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내향적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외향적인 척하며 살아간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1기 김성윤(18·전북 전주) 학생은 3분의 1중 한 명이다. 만약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운다면 성윤이는 줄 끝 어딘가쯤에 해당할 만큼 내성적이었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김성윤 학생

벤자민학교 입학 전의 성윤이는 사람들로 붐비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버스에서는 'stop' 버튼 누르는 것이 힘들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야 할 때는 동생과 꼭 같이 갔다. 또 학교에서 발표할 일이 있을 땐 성윤이가 꼭 준비하던 게 있었다. 우황청심환. 낯선 곳에 가거나 혹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때는 긴장되고 위축되었다.

산업사회가 도래한 후, 어린 시절 살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활기차고,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인재’이며, 우리는 이런 성격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카리스마’, ‘처세술,’ ‘인간관계’ 이런 단어를 포함한 자기계발서나 강연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학교 교육도 변화했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책상을 서로 붙이고 모둠 수업을 하고 과제를 함께한다. 그래서 스스로 혼자서 뭔가를 하기 원하는 학생들은 특이하거나 문제아로 취급한다.

▲ 아버지 김영민 씨와 성윤 군.(사진=김성윤 제공)

이런 사회에서 성윤이의 성격은 반드시 고쳐야 하는 ‘문제’였다. 성윤이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스피치 학원, 중학교 때는 BR뇌교육을 다니며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이 하나씩 쌓여가며 남들의 시선을 받는 건 점점 힘이 들었고, 대인기피증은 심해져만 갔다. 매일 가는 학원과 체육관은 몇 달을 다녀도 갈 때마다 항상 긴장되었다.

이런 성윤이도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벤자민학교에서 가능할 것 같았다. 지난 2월 벤자민학교 선발캠프 때에는 우황청심환을 2병이나 마시고 면접에 들어올 정도로 떨리고 긴장했지만, 꼭 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발표요? 몸에 좋은 건 알지만 맞기 싫은 주사 같아요.”

큰 기대를 하고 입학한 학교였지만 성윤이의 학교 생활은 넘어야할 산이 많았다. 첫 번째 산은 3월 국학원(충남 천안시)에서 열린 벤자민학교 워크숍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1박 2일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워크숍은 앞에 나와 발표하는 시간도 많았다. 성윤이에게 발표란 몸에 좋은 건 알지만 맞기 싫은 주사였다.

“발표라는 건 먼 우주에서나 있을 법한, 내 인생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사람들 앞에 선다는 생각만으로도 하늘이 하얘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요. 3월 워크숍 마칠 때쯤 선생님께서 다음 워크숍 때 각자 노래를 한 곡씩 준비해 오래요. 집에 돌아와 매일 울었어요. 학교를 그만둘까, 어디로 도망칠까,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4월은 유독 시간이 빨리 흘렀고, 다시 두번째 워크숍이 열렸다. 누군가 차라리 "김성윤 나와서 노래해봐!"라고 시키면 좋을텐데, 벤자민학교에서는 누구도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나와 노래를 불렀고,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며 성윤이의 긴장감은 커져만 갔다.  

'그래! 해야 한다면 빨리 해버리자!'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붉어졌지만, 성윤이는 그렇게 첫번째 산을 넘었다. 
 

선택에 대한 신념 있다면 남들의 시선 중요치 않아

벤자민학교 학생은 자기만의 ‘벤자민 프로젝트’를 정해 1년 동안 진행한다. 성윤이의 프로젝트는 한라산을 시작으로 백두산까지 전국의 산을 등산하는 것이다. 지난 3월 벤자민 워크숍 때 ‘청년 탐험가’ 이동진 씨의 멘토 특강을 듣고 결심했다.

“누가 옆에 없이 혼자 하려니 너무 떨렸어요. 이동진 멘토님 말대로 떨리지만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내 안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혼자서 편의점도 가지 못했던 성윤이는 지난 5월 제주도로 홀로 배를 타고 가서,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한라산을 올랐다. 운동신경이 좋은 성윤이는 왕복 8~9시간 걸린다는 백록담을 왕복 4시간 30분 만에 완주했다. 요즘에도 집 근처 모악산(전북 전주)을 매일 오른다는 성윤이는 최근 무등산을 등반했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꼭 ‘우리가 꿈꾸는 행복 교육의 꿈,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깃발을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 한라산 백록담과 무등산 정상에서 벤자민학교 깃발을 들고 찍은 기념사진.(사진=김성윤 제공)

정상에서 학교 깃발을 펴면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예전이라면 당장 집어넣었을 테지만 어느덧 성윤이는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벤자민학교가 뭐냐고 관심을 엄청나게 보였어요. 20명은 넘게 제 사진을 찍어간 것 같아요. 사람들이 계속 멋있다고 하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신념이 확실하고 그 일이 옳다는 믿음이 있다면 남들의 시선이 전혀 부끄럽고 힘든 일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등반하면서 창피해하지 않고 깃발을 더 크게 펼치면서 벤자민학교를 알리고 싶습니다.

▲ 지난 7월 벤자민인성영재캠프에 참가한 학생을 대상으로 국학원 전시관을 소개하고 있는 성윤 군(사진=전은애 기자)

27명의 벤자민학교 학생 중 성윤이의 변화는 단연 두드러졌다. 매월 벤자민워크숍, 벤자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성윤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왜 모든 사람이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야 할까? 스스로 묻고 답을 찾고 싶었어요. 편의점에 혼자 못 가는 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일에 앞장서서 자신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니깐요.”

성윤이는 최근 지역에서 열리는 벤자민학교 입학설명회나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 앞에서도 종종 발표한다. 발표하는 전까지는 여전히 떨리고 긴장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지만 해야 하는 일이면 피하지 않는다. 지난 8월 1일에는 천안에서 열린 벤자민학교 설명회에서 3천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성격을 고치고 싶었는데 거의 다 고쳐진 것 같아요. 예전에 내가 왜 그랬을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요. 지금까지 고친 것은 학교생활을 통해 고쳐진 것이고,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바꿀 자신이 생겼어요.”

성윤이에게 벤자민 입학을 권유한 아버지 김영민 씨 역시 아들의 변화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아버지는 8월 학교설명회 때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아들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앞에 나서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을까? 무대에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성윤이가 큰 용기를 냈고, 그만큼 마음의 그릇이 커진 것 같아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내가 바뀌면 내 주위도 바뀌는 홍익의 삶을 배우다!

벤자민 워크숍, 벤자민 프로젝트와 함께 성윤이를 변화시킨 것은 아르바이트이다. 성윤이는 벤자민학교 필수교육과정 중 하나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을 이롭게 바꿀 수 있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찾았다.

처음 성윤이는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 전주 시내의 한 모터 펌프 가게에서 판매 보조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다. 1년 동안 휴학하고 자신을 계발하고 꿈을 찾는 벤자민학교에 다닌다며 학교 소개 책자를 드렸지만, 사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느냐, 학교폭력 같은 문제가 있었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일단 2주 정도 일해보고 계속할지 결정하자고 말할 만큼 성윤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그냥 알바생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했어요. 알바생으로 일할 때는 손님이 많으면 힘이 들지만,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일하면 장사가 잘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성윤이는 말없이 성실히 일하며 행동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었다.

"어느 날 거래처 사장님이 오셔서 갑자기 넌 정말 된 놈이다. 착한 애구나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인사도 안 받아주던 분이었는데요. 우리 사장님도 이제는 편견 없이 저를 신뢰해 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거나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바뀌면 내 주변도 바뀌고 이게 진짜 홍익(弘益)하는 삶이구나 알바하면서 느꼈습니다."

▲ 김성윤 군(사진=벤자민학교 제공)

성윤이 안의 보물을 찾아준 벤자민학교

아버지 김영민 씨는 성윤이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능력을 펼치길 바랬다. 

“숨은 재능이 많은 아이인데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 외향적인 친구들처럼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설 땐 항상 긴장하고 위축되는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벤자민학교 다니면서 달리지는 성윤이를 지켜보며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벤자민학교 입학을 권유했던 아버지는 벤자민학교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벤자민학교를 설명할 때 ‘인생을 바꾸는 1년, 드림 이어(Dream Year)'라고 하잖아요. 성윤이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성윤이가 남은 벤자민학교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어요. 검정고시 준비하고, 나중에 어학연수도 가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데 대견했습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는 함께 갔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결정하고 혼자 사장님께 말하고 정리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성윤이는 이제 아무 의미 없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니라 홍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함을 깨우쳤다.

“성윤이에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 확연하게 보입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해보니 되더라고 생각해요. 학교의 역할은 아이 안에 담겨 있는 보물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점에서 벤자민학교는 최고의 학교라 생각합니다.”

 ▼[영상] 지난 8월 벤자민학교 설명회에서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발표하는 김성윤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