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서울 인구는 불과 30만이었고 사대문 안에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만 눈에 띄는 기와집이었다. 그 밖의 집들은 하나같이 초가집이었다. 양옥집이라고는 달랑 명동의 천주교 성당과 청계천 건너 운현동에 선 천도교 교당뿐이었다. 요즘 택시를 타고 “명동성당 갑시다” 하면 모르는 기사가 없으나 “천도교 교당 갑시다” 하면 길을 모르는 기사가 더러 있다. 그만큼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세(勢)가 약해지고 있고 서양의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것이 죽고 남의 문화가 성(盛)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두 교당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매고 있을 때 이리로 오시오라고  말하던 방향타였다. 지금은 수많은 고층 건물에 가리어 두 교당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지 등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민족종교. 내비게이션을 보아야 위치를 아는 민족종교의 대표들이 로마의 천주교 교황에게 가서 이석기의 석방을 호소하였는가 하며 <세월호> 참사 유족과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모두 교황을 찾았다. 

옛날에는 명동성당과 천주교교당이 어름 풋이나마 우리가 동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방향타였다. 시골에 가면 고을마다 향교가 있었으나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지 오랬다. 그러나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한 격려사는 가슴에 살아남아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지긋 지긋했던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우리는 동방을 버리고 서방을 향해 줄 다름을 쳤다. 그리고 우를 보지 않고 죄를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금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  민족종교대표들이 명동성당에 줄을 서서 교황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중 어느 종교 대표인지 모르지만 해방 직후 즐겨 쓰던 중절모를 쓰고 여름 면바지를 입고 나와 교황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보였다. 필자는 아연실색했다. 신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법복도 없는 교주가 왜 나와 인사하는 것인가. 부끄러운 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고 했다. 
 
19세기에 서학이 우리나라를 향해 돌진해 왔을 때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선생은 동학의 창시를 선언하면서 동학이란 무엇인가 묻는 말에 태연히 “내가 동국에서 나고 동국에 살고 있으니 동학이라 한 것이지 서학과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다”고 대답하였다. 얼마나 솔직하고 바른 대답인가. 그러나 지금의 민족종교 대표들은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시절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우선 100년 전 민족대표처럼 의젓하지 못하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처럼 완고하지도 못하다. 심하게 말하면 병자호란 때 인종仁宗이 삼전도에 나아가 침략자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지난 지 반세기가 지나지 않았는가.
 
지금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 온 세상이 서구문명에 굴복하여 세계가 서구의 문화식민주의에 굴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우리는 서구문명이 무엇이며 기독교가 얼마나 이 세상을 오도하고 있는가 비판받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덮어놓고 십자가에 절하는 것은 예수 자신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운현궁 바로 앞에 서 있는 천도교 교당을 지을 때 손병희 선생이 명동성당을 향해 맞서야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사의 속내를 읽어 보면 기독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종교가 맡았던 사명이 무엇인지 민족종교 교주들이 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유학은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가지고 당당하게 서학과 대결하였다. 지금도 동도서기의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기술(器)은 서학에 양보하더라도 도(道) 만은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었는가. 동도서기론이 지금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종교란 동서를 막론하고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이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에는 각각 다른 역사와 문화와 신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전에 서양에서는 덮어놓고 옳다는 기독교가 지난 100년간 역사를 오도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교황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바쁜 일정을 제치고 방한한 것이다. 그러나 혹시 3.1운동 때 미국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가 우리 한국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옛날 윌슨은 폴란드를 포함한 동유럽국가를 향해서만 민족자결을 부르짖었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한국과 아시아가 들고 일어났었다. 교황이“우리는 다 형제”라 한 것은 지난날의 서양이 한 짓을 미안하다고 사죄한 것이다. 우리는 교황의 말을 새겨듣고 천주교와 천도교(민족종교)가 하나 될 수 있다고 한 말을 아는가 모르는가. 교황이 명동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기도문을 들어보니 성부 성자 성령 삼신三神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31일 필자는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문화회관에 가서 유병언과 구원파를 사교집단이라 성토하는 목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사들이 너무 흥분하고 있어 구원파를 반대하는지 찬성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의 월경을 빨아먹고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끔찍스러워 그만 일어나 나와 버렸다.   
 
지금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악해지고 있다. 과학 기술 교육을 우선하고 인성교육을 소홀이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1.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냉전이란 3차 대전을 치루고 나서도 중동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구문명은 여전히 살상(殺傷)을 주제로 하는 오락물로 아이들을 오도하니 인간이 사악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교회에서만 옳소(아멘)를 부르짖고 있다. 인류사회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놓고 크리스토퍼 도오슨(Christopher Dawson)이란 유명한 천주교 역사가는『서구문명의 정신위기』란 책을 썼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금 서구문명이 극도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원인은 종교교육을 포기한 학교교육에 있다고 했다. 이런 인간성의 총체적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를 재교육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 교육을 국가가 독점하고 인간을 한 솥에 넣고 삶아내고 있다. 사람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어디 가 달라도 다른데 그런 인간을 학교라는 공장에 넣어 똑같은 교과서를 읽어 복창하게 하면 인간이 아닌 동물이 태어난다. 더 중요한 결함은 질보다 양을 중시하여 되도록 많은 단편적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어 깊고 깊은 지혜를 가르치지 않고 얕은 지식만 가르친다. 동학의 주문에 위천주조화정爲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란 말이 있는데 그 때의 지知는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일一도 지혜다.  이걸 가르치지 않으면 뼈대 없는 지식이 된다. 현대처럼 학교교육에 돈을 막 쏟아 부운 시대는 없었고 이렇게 잘못되게 교육한 시대도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 한국인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한국인은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배 안에 가두어 두고 먼저 내려가 버린 선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의 일을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라”는 말이 있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고려 왕 씨들을 모조리 배안에 가두어 두고 바다에 수장했다. 그 때 한 스님이 죽음의 현장을 보고 있다가 목탁을 두드리며 슬피 울었다. 한편 침몰하는 배에서 죽게 된 한 왕 씨는 우는 스님을 보고 이렇게 울었다.
 
푸른 바다 물결에 노 젖는 소리 들리고 /  산에서는 스님이 울지만 당신이 우리를 구할 수 없어요. (一聲柔櫓滄波外 縱有山僧奈爾何)
 
지금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모두 함께 죽어 가고 있다. 한 사람의 스님이 와서 운다 하여 우리를 살려 낼 수 없다. 우리 스스로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헤엄쳐 나와 육지에 올라서야 한다. 또다시 남의 힘을 믿고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왕 씨들은 두 사람이 배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아 500년이 지난 지금 2000명으로 늘어나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도 지금 그런 신세가 되었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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