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6

우리나라 역사에서 단군과 기자, 그리고 고조선은 조선시대까지는 비교적 명료했는데 대일항쟁기간 이후 흐려졌다. 논란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1976)에서 “오늘날 기자의 동래, 동봉설(東封說)을 부인하는 입장에서 볼 때 소위 낙랑조선민의 범금팔조란 것은 기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조선의 본유본래(本有本來)의 법금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고려 충숙왕이 세운 북한국보 제5호 숭인전(崇仁殿)이 기자를 모시는 사당이고,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대왕이 기자를 “후조선 시조 기자”라 일컬었듯이, 기자는 고구려, 고려, 조선에서 계속 우리의 조상으로 인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뒤집을 만한 근거도 대지 않은 채 단지 말로만 하는 주장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 설사 ‘기자동래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기자가 가르쳤다고 하는 ‘범금팔조’를 단군이나 위만이 가르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조선에 뒤이어 위만조선을 서술하였고,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조선을 前조선, 기자조선을 後조선이라 부르며 시대의 선후를 명확히 구분지었다.『남북 학자들이 함께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2005)에서 김정배 교수는 “고조선이란 이름 속에는 단군조선 천오백 년과 함께 기자조선 천 년이라는 시간과 각기 다른 시기가 아울러 함축되어 있다. 고조선이란 이름은 분명한 개념 정리가 없을 때는 애매모호한 지칭이 되므로 명확한 이름을 쓰는 것이 옳다.”라고 지적하였다.
교육부의 국제교육진흥원 사이트를 보면, ‘한국의 교육’란에 외국어로 “고조선(古朝鮮)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강력한 국가체계를 취하기 위해 팔조법금을 제정하여 백성들을 교화하였다.”라고 홍보한다.  그리고 현행 초ㆍ중ㆍ고 역사교과서와 국가공무원 7, 9급용 국사 수험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수험서 등에서도 팔조법금은 고조선 사회의 기본법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부의 교육 방침이 담긴 이들 역사 서적에 기자 또는 기자조선이란 문구가 보이질 않는다. 고조선 부분은 단군조선에서 곧바로 위만조선으로 건너뛰었고, 팔조법금은 출처인 『한서지리지』를 언급하면서도 낙랑조선이 아닌 고조선의 법으로 기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체계에서 기자룰 떼어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기자가 가르쳤다는 ‘범금팔조’ 대신에 ‘단군 8조교’로 대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단군팔조교’는 단군의 위대함을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이 경전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것은 『너희들도 단군이 되거라』는 말이다. 사실은 ‘홍익인간’도 한마디로 하면 『모두가 하나다.』라는 말이다.
‘단군팔조교’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평등한 수평 관계로 설정한다. '단군팔조교’ 뿐만 아니라 모든 배달민족의 고유한 경전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수평 관계이다. 이 개념이 곧 ‘천손사상’ 이다. 우리 민족 모두는 하나님의 자손이며 인류 모두가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천손문화’로 이어졌다. 배달경전에서 전하고자 하는 지식 정보는 『너희가 곧 단군이고 너희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단군팔조교’는 단군왕검께서 단군조선을 세우시면서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의 진리를 압축하여 전하신 경전이다. 이 경전은 우리 민족이 단군조선이 출발할 때와 오늘날과 비교해 볼 때 정신세계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 경전 한권만으로도 유불선을 비롯한 만교가 이미 우리의 정신세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서』「지리지」에 나온 ‘범금팔조(犯禁八條)’와 『환단고기』「단군세기」단군왕검조에 나오는 ‘단군팔조교(檀君八條敎)’ 그리고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편에 나오는 ‘금팔조(禁八條)’ 등의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행 역사교과서에서 고조선의 사회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여 제시하여야 할 ‘팔조(八條)’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서』권28「지리지」8 하 2의 ‘범금팔조’는 다음과 같다.

“은나라의 도가 쇠하여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 기자는 그 백성들에게 예의, 밭농사와 누에치기, 직물 짜기와 음악 등을 가르쳤고 또 낙랑조선 백성에게 팔조를 범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가르쳤다. 즉,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 들어가 남자는 종이 되고 여자는 여자 종이 됨이 원칙이나, 배상하려는 하는 자는 전 50만을 내어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위의 ‘범금팔조’ 내용을 토대로 고조선 사회의 모습을 생명 존중 혹은 노동력을 중시하는 농경사회였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였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구분되는 계급사회였고, 화폐경제가 존재하는 사회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범금팔조’는 앞서 살펴 본대로 고조선 중에서도 상당히 후대의 모습이고, 기자가 등장하는 시기의 낙랑조선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팔조이다. 그렇다면 고조선, 즉 단군조선의 사회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단군세기」제1대 단군왕검조에 나오는 단군의 여덟 가지 가르침인 ‘단군팔조교’ 이다. 단군팔조교(檀君八條敎)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 조 : 하늘의 홍범(洪範)은 오직 하나요 그 오래를 둘로 하지 않나니 오직 순수하고 참되어 그대들 마음이 한결같아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제 2 조 : 하늘의 홍범(洪範)은 언제나 하나이고, 사람의 마음은 다 같게 마련이니 내 마음으로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하라. 사람들의 마음이란 오직 교화를 통해서만 하늘의 홍범과 합치되는 것이니 이리해야 온 누리에서 그 쓰임새를 얻으리라.
제 3 조 : 그대를 낳아주신 이가 부모요, 그 부모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니 부모 공경이 곧 하늘 공경이요, 그 마음이 나라에 미치면 곧 충이 되고 효가 된다. 그대들이 이 도리를 체득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먼저 벗어나 먼저 면할 수 있으리라.
제 4 조 : 새와 짐승들도 짝이 있고, 헌 신짝도 짝이 있는 법이니 그대들 남녀는 화목하게 지내어 서로 원망과 질투와 음란이 없도록 하라.
제 5 조 :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라. 아픔에 크고 작음이 없으리니. 그대들은 서로 사랑하여 헐뜯지 말며 서로 도와서 해(害)를 끼치지 않으면 집과 나라가 흥하리라.
제 6 조 : 소와 말을 보아라. 오히려 그 꼴을 나누어 먹으리니. 그대들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빼앗지 말며, 함께 일하고, 서로 훔치는 일이 없으면 나라와 집이 은성(殷盛)즉, 번성하게 되리라.
제 7 조 : 호랑이를 보아라. 억세고 사납기만 하며 영명(英明)하지 못하여 재앙을 부르듯이 그대들도 성품을 해치며 난폭하게 행동하지 말라. 남을 아프게 하지 말며 언제나 하늘의 홍범을 준수하여 능히 세상 만물을 지극히 사랑하라. 위태로운 사람을 도와주고 약한 이를 얕보지 말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낮은 이를 업신여기지 말라. 그대들이 이 법칙을 어긴다면 영원히 삼신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자신과 집이 멸망하게 되리라.
제 8 조 : 그대들 간에 혹여 충돌이 있어 밭에 불을 놓으면 곡식이 모두 타 없어져 삼신과 사람들이 진노(震怒)하리니 그때 가서 아무리 두껍게 싸서 감추려고 해도 그 냄새는 반드시 새어 나오리라. 그대들은 삼가 떳떳한 성품을 지녀 사특(邪慝)한 마음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라. 삼신을 지극히 공경하여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면 그대들 복록이 끝이 없으리니 그대들 5가와 무리들이여! 삼가기를 바라노라.

또「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편에 보면 단군 색불루 4년에 ‘금팔조’를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색불루 4년 기해(단기 1052, BCE 1282)년에, 진조선(眞朝鮮)이 천왕(단군색불루)의 칙문을 전하였다. 그 칙문에서 말하기를, “너희 삼한은 위로 천신을 받들고, 아래로 뭇 백성을 맞아 잘 교화하라”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백성에게 예절과 의리, 농사, 누에치기, 길쌈, 활쏘기, 글자를 가르쳤다. 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禁八條)를 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제2조: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제3조: 도둑질 한 자 중에서 남자는 거두어들여 그 집의 노(奴)로 삼고, 여자는 婢(여자 종)로 삼는다.
제4조: 소도를 훼손한 자는 금고(禁錮) 형에 처한다.
제5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
제6조: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
제7조: 음란한 자는 태형(笞刑)으로 다스린다.
제8조: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

앞으로 고조선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초기 1대 단군왕검의 ‘단군팔조교’ 와 중기 22대 색불루 단군의 ‘금팔조’ 그리고 후기의 기록인 기자의 ‘범금팔조’를 모두 설명하든지 아니면 1대 단군왕검의 가르침인 ‘단군팔조교’를 토대로 설명해야 지금으로부터 4347년 전 고조선 시대의 사회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비교적 후기인 기자의 ‘범금팔조’는 8개 조항 모두도 아니고 3개 조항만 들어 고조선 시대의 사회 모습이라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자칫 불완전한 형태의 고조선 사회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 이제 우리 역사를 대충 읽고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정확하게 읽고 온전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역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일 것이다. 

▲ 민성욱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