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양령에게는 필독서이지만, 충령대군은 드러내놓고 볼 수 없는 금서 아닌 금서. 송나라 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진덕수(眞德秀, 1178~1235)가 지은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두 사람에게 주는 의미가 이렇게 달랐다. ‘대학연의’는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깊은 뜻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는 의미. ‘대학연의’는 왕위에 오를 세자가 반드시 공부해야 할 제왕학의 교재였다.

충령대군이 ‘대학연의’를 정식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임금으로 즉위한 1418년 첫 경연에서였다. 1418년 10월 17일 첫 번째 경연을 여는데 그 교재가 ‘대학연의’였다. 왜 ‘대학연의’였을까.

▲ 조선시대 제왕학의 교재인 '대학연의'가 처음으로 완역됐다.

“임금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옵나니, 마음이 바른 연후에야 백관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른 연후에야 만민이 바르게 되옵는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지는 오로지 이 책에 있습니다.”

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 이지강(李之剛)이 세종에게 ‘대학연의’를 교재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 말이다. ‘대학연의’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책’이다. 특히 임금의 마음을. 세종이 경연에서 ‘대학연의’를 독파하는 데 걸린 기간은 대략 4개월 정도. 양령은 세자 시절 6년에 걸쳐 ‘대학연의’를 다 읽었다. 세종은 1차 강독이 끝나자 다시 ‘대학연의’로 경연을 열었고 다음해에도 ‘대학연의’를 공부했다. 세종 8년 1427년에도 경연에서 다시 ‘대학연의’를 공부했다. ‘대학연의’는 성군 세종대왕을 만든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 '대학연의'를 가까이 했다는 기록이 거의 없다. 찬탈 행위에 극도의 비판적인 '대학연의'는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사실상 찬탈할 세조가 좋아할 책이 아니었다. 대신 '정관정요'를 경연에서 공부했다.  '대학연의'는 왕도(王道)를 강조한다.   '정관정요'는 패도(覇道)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한다.

'대학연의'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조선 왕들의 필독서이자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인 이 책은 진덕수가 통치철학과 실제 방법을 황제에게 간언하는 형식으로 서술했다.
이렇듯 ‘대학연의’는 조선조 임금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책이었고, 개국부터 후기까지 줄곧 제왕학의 교재였다. 조선의 임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정치를 하는지를 알려면 그들이 애독했던 책을 살펴보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대학연의’가 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았다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제야 완역본이 출간되었는데 그것도 전공학자가 아닌 언론인이 해냈다.
조선 왕의 리더십을 추적한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의 사서삼경’을 출간한 학술 저널리스트 이한우가 2003년부터 정확히 12년, 책을 구입하여 공부를 시작한 2007년부터 7년,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한 2013년 5월터 1년 만에 우리말로 된 ‘대학연의’를 내놓았다.
그는 조선의 정치사와 사상사를 꿰뚫는 책인 ‘대학연의(大學衍義)’가 완역되지 않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틈틈이 번역해 원고지 6,511매를 상하권으로 나누어 해냄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대학연의’는 조선을 탄생시킨 태조와 그 아들 태종이 탐독했고, 세종은 백 번 이상 완독하며 경연에서 신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후기에 이르러서는 숙종과 정조 역시 자주 거론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왕들의 사상적 기본으로 평가할 만한 비서(秘書)로 자리 잡았다. 특히 조선 중기에는 ‘대학연의’의 방대한 분량을 안타까워한 율곡 이이가 그 구성을 참고하되 내용을 간추린 ‘성학집요(聖學輯要)’를 펴내면서 축약본임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대학연의’의 원본은 총 43권 12책이다. 저자는 ‘대학(大學)’의 주요 개념인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논어(論語)’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의 유교 경전과 ‘한서(漢書)’ ‘자치통감(資治通鑑)’ ‘구당서(舊唐書)’ 등 역사서에서 선별해 950여 편을 발췌하여 친절한 풀이와 함께 소개했다.

통치의 의미와 제왕의 마음가짐, 인재를 발탁하고 간신을 구분하여 백성들의 사정을 공정하게 살피는 법까지를 낱낱이 설명한 이 책에는 통치자라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자아를 성찰하며 술과 여색 등을 삼갈 것, 왕비와 후궁 및 그 친인척을 다스리고 경계할 것 등을 역사상 사례를 들어 상세히 설명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조선판 ‘리더십의 매뉴얼’이라 하겠다.

발췌 문장을 원저의 본문과 비교․대조해 완전한 원문으로 되살림으로써 문맥이 원활하게 보완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출처 및 주요 인물의 생몰연도와 그 설명을 추가하여 한글 번역본으로서 완성도를 높인 점도 높게 평가해야 하리라.

‘대학연의’로 배우는 제왕의 리더십. 조선 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되도록 이끌어간 리더십의 본질을 이 ‘대학연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조직이 50년 존속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 500년 지속한 비결에서 배울 게 많을 것이다.

 

저자 진덕수|역자 이한우|해냄출판사 |2014.07.10

상하 각 권 4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