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연구가 어려운 것은 사료(史料)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흔히 말한다. 남아 있는 역사 자료가 없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심백강 박사의 저서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도서출판 바른역사)을 보면 사료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심 박사는 청(淸)나라가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정사 사료인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한사군의 낙랑 관련 수많은 자료를 찾아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로 평가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낙랑 기록보다도 연대가 훨씬 앞서는 여러 고대 낙랑 관련 사료를 정사사료에서 최초로 발굴, 수록했다. 
 

▲ 심백강 박사가 펴낸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  <사진=바른역사>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1736~1795) 연간에 학자 1,000명을 동원하여 10년에 걸쳐 청나라 이전 중국의 사료를 집대성한 것이다.  규모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사료의 보고이다. 근 8만 권에 달하는 방대한 사료를 담은 ‘사고전서’는 만리장성, 경항(京杭)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기적으로 꼽힌다.
심 박사는 “일찍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이런 자료를 인용했더라면 대동강 낙랑설은 탄생하지도 않을 것이고, 한국사의 방향 또한 오늘날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한국 고대사 속의 낙랑은 한국사의 척추에 해당한다. 이 척추가 바르게 서지 못함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고조선사, 부여사, 고구려사, 백제사 등 한국사 전체가 뒤틀려지게 되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낙랑기사는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한단고기’는 내용은 충분하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백 년을 끌어온 낙랑문제가 결말이 나지 않고 지금까지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보다 수백 년 수천 년 앞선 수많은 낙랑 관련 정사 자료를 대거 포함한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한단고기’가 지닌 결함과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사의 척추 낙랑을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심 박사는 이번 책을 펴내면서 국내외에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1차 사료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상세하게 주석을 달았다. 이 책에 포함된 갈석 낙랑, 고죽국 낙랑, 북평군 낙랑 따위의 자료는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지금까지 현대적으로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1차 사료이다. 이런 1차 자료를 심 박사는 ‘사고전서’ 원전에서 발췌하여 한국, 중국, 일본이 공히 인정할 수 있는 정확한 번역을 하고 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상세하게 주석을 덧붙였다.
 

이 책은 또한 역사학자가 아니더라고 기본 교양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쉽게 해설을 덧붙였다. 학술서의 성격을 띠면서도 일반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게 이 책의 특징.

낙랑군은 중국 하북성 동쪽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발해를 끼고 있었다

‘사고전서’ 사료는 낙랑이 어디에 있다고 말해주는가. ‘사고전서’ 사료에는 서한 무제가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 낙랑을 설치했다”라고 했는데 그 갈석산은 하북성 남쪽 오늘의 호타하유역 북쪽에 있다. 현재 진황도시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은 후대에 붙여진 명칭이고 한무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리장성의 동단 또한 산해관 장성이 아니라 현재 하북성 수성진에 문물로 보존되어 있는 연(燕)장성이 그것이다.
이 사료에 따르면 낙랑군은 이병도 등이 주장한 것처럼 대동강 유역에 있지 않았다. 난하하류 창려현 갈석산에서 동쪽으로 요하 서쪽에 걸쳐 있었다고 한 민족사학자들의 주장과도 다르다. 그럼 낙랑군은 어디 있었나? 현재 진황도시 노룡현, 산해관 일대에서 서쪽으로 당산시, 천진시를 지나 보정시 서수현 수성진에 이르는 지역에 발해를 끼고 동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사고전서’ 사료를 분석한 심 박사의 주장이다.

 이는 우리민족의 고조선과 고구려의 활동무대가 대륙의 동쪽 변방이 아니라 바로 중원의 심장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지금까지 대동강 낙랑설을 중심으로 서술된 우리 국사교과서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증명한다.
우리는 광복이후 일제식민사관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식민사관의 핵심인 대동강 낙랑설이 교과서에 그대로 기술되어 왔다. 이제 대동강 낙랑설로 인해 근본부터 잘못된 한국사는 처음부터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사고전서’ 학파의 출현 기대한다

‘사고전서’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사를 바로 세운다면 한국사 상의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 있는 여러 난제의 해결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심 박사는 말한다. 예컨대 한사군의 낙랑, 고조선의 발상지와 강역, 북부여와 동부여사 등에 관해 어렵지 않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현재 한중 양국간에 대립각을 보이는 만리장성의 동단, 고구려의 당나라 지방정권·소수민족 문제 등 현안도 우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하나하나 손쉽게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 즉 ‘사고전서’는 한국사의 새로운 정립, 중국의 동북공정에의 대응, 일제 식민사학의 해체라는 세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다.
심 박사는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을 넘어 새로운 ‘사고전서’ 학파를 형성하는 일,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학이 바로서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심백강 편저.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 민족문화연구원 학술총서 13. 도서출판 바른역사 간. 24,000원.

■ 심백강 박사는 누구인가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에 인용된 한문으로 기록된 원전자료는 거의가 처음 번역되는 자료다. 국내 학계는 물론 현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인용되거나 번역된 적이 없다. 한국사와 관련하여 국내외에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이런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여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을 하고 또 거기에 일반인이 알기 쉽게 해설을 붙이는 일, 개인의 힘으로는 쉽사리 할 수 없다. 한문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심백강 박사. <사진=바른역사>

책을 펴낸 심백강 박사는 ‘퇴계전서’‘율곡전서’‘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주요 고전을 번역한 국내 굴지의 역사학자이다. 또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여 중국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다. 그는 또 월간 ‘현대문학’ 출신의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문(文), 사(史), 철(哲)을 겸비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이기에 국책연구기관에서 전문 인력이 공동으로 해야 하는 작업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까지 개인에게 맡겨둘 것인가. 이 책의 발간이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