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瀋陽)으로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5)가 쓴 여행기 ‘모레아 기행’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레아는 펠로포네소스 반도를 말하는데 중세에는 ‘모레아’라고 불렀다. ‘모레아 기행’. “그리스인에게 모레아 기행은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런 시련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썼다.
“외국인이 그리스를 순례하는 것은 마음속에 아무런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 단순한 여행일 뿐이다. 과거의 정서적 뒤얽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외국인은 그리스 문화의 정수를 단순히 즐길 수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의 그리스 여행은 희망과 공포, 고통과 동경, 갈등과 이완 등이 가득한 모순의 순례가 아닐 수 없다.…잔인한 질문들이 마구 떠올라 그리스인 순례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어떻게 저 무수한 경이로움들이 창조되었으며 그런 창조자의 후예인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왜 이처럼 추락한 것인가?”(이종인 옮김. ‘모레아기행’. 열린책들. 2008.)

한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벌판을 여행하는 한국인도 이런 마음이 아닐지. 우리 민족 역사 현장인데 지금은 남의 나라가 되어 있어, 우리 뜻대로 할 수 없고, 역사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다. 모레아를 기행하는 그리스인 뒤로 한국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외국 여행을 떠나는 설렘과 함께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을 안고 7월 15일 낮 남방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였다. ‘2014 바른역사 인식을 위한 현장 답사 – 중국 만주지역 고구려·독립운동 유적지 답사’가 시작되었다. 국학운동시민연합은 이 답사를 통해 ‘지나간 역사에서 미래를 만나기’를 원했다. 동북아 국가들이 평화롭게 함께 번영하는 미래.
 

 일행은 모두 19명. 이성민 국학운동시민연합 대표, 우대석 국학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 이명학 국학운동시민연합 사무국장, 허필열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사무국장, 백포 서일 연구로 학위를 받은 정길영 박사, 박정욱 서울 은평구국학원장 등이 중국 속 우리 역사 탐방에 동행했다. 제주도에서 온 김경숙, 이인순, 천안 김다현 님은 여성 참가자로 환영을 받았다. 김산태 서울국학운동시민연합 대표, 유경성 광주국학기공연합회장, 서울에서 온 정성률, 한상필, 유병석, 주승문, 남상만, 최원락 님도 우리 역사 공부에 열정이 뜨거웠다. 각자 하는 사업이 있고, 직장에 나가야 하는 터인데도 6박 7일의 역사 탐방에 동행했다.
고구려사 연구로 연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임찬경 박사가 동행하여 깊이 있는 해설로 우리가 알지 못한 우리 역사를 일깨워줄 것이다.  

▲ 심양(瀋陽). 중국어 발음으로는 선양이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오후 1시 30분께 심양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로 1시간 40분 거리. 생각했던 것보다 심양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관심이 온통 북경에 쏠린 탓일까. 심양하면 기차나 말이 연상되어 나도 모르게 먼 곳이라는 거리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년 전 7월에 강남 항주, 소주에 갔다가 찌는 듯한 더위에 고생을 했다. 예상과는 달리 심양의 날씨는 무덥지는 않았다. 아마 북방이라서 그럴 것이다. 심양의 날씨가 역사 탐방을 도와주는 듯하다.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은 전원철 님. 수년 째 동북삼성 역사 탐방을 안내해 온 전문 가이드라고 소개한다. 그는 역사 현장 곳곳을 내 집 찾아가듯 안내하고 해설을 하여 그 나름의 전문성을 드러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감 넘치고 실력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였다. 늘 유쾌하게 웃으며 기쁘게 안내했다.
점심을 기내식으로 해결한 일행은 곧바로 심양에 있는 요령성박물관(遼寧省博物館 )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홍산문화(紅山文化) 유물과 요하문명(遼河文明)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요령성의 성도(省都)가 심양이라서 이곳에 요령성박물관이 있다. 
▲ 옆에서 본 요령성박물관.

 요령성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요령성박물관은 1949년 7월7일 개관한 동북박물관(東北博物館)에서 출발하였다. 이 박물관은 신중국이라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한 제1호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12만 건에 달한다. 요령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역사 자료, 예술품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고고, 서화, 도자, 청동기, 비문 등 17개 부문으로 분류하여 소장한다. 소장품 가운데는 진(晉)나라, 당송(唐宋), 원(元)나라의 서화, 송원(宋元)과 명청(明淸)시대의 자수, 홍산문화의 옥기, 요(遼)나라 시대 도자기, 고지도 등 특색 있는 유물이 많다.
▲ 요령성박물관은 '요하문명'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요하문명전 전시장 초입에 걸린 '요하문명' 글이 눈길을 끈다.

요령성박물관은 12개 전시실을 두고 ‘기본전시실’,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을 운영한다. 그들 용어로는 '기본진열' '전제(專題)진열', 특별전청이라 한다. 상설전시실은 비문, 화폐, 옥기 등 소장품을 정기적으로 전시하는 곳이라면 특별전시실은 국내외 유물을 부정기로 전시한다. 기본전시실은 ‘요하문명’ 유물을 전시하는 ‘요하문명전’이다. 요령성 내 최근 50년의 고고 유물을 모아 요하 유역 문명 발전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요령성박물관 3층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점차 몸에 힘이 가해지며 긴장된다. 3층 전체가 요하문명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요령성박물관이 요하문명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