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3등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커졌다. 지망 대학과 학과를 써내라는 종이를 받아들자 덜컥 겁이 났다. 인생을 좌우할 어마어마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자 더는 혼자 고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뭘 하면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부모님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단다. 우리나라 입시 현실에서는 내신과 수능을 잘 받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걸 너도 알잖니. 눈 꼭 감고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렴. 그럼 선택의 폭도 넓어질 거란다.”

두 분 모두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성규빈 양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성규빈 양의 이야기다. 지난 16일 특별활동을 위해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온 규빈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규빈이는 그 누구보다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다.

“제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쉬지 않고 공부만 했어요. 노는 게 뭔지, 어떻게 노는 건지 몰랐어요. 그저 학교에서 하라는대로, 부모님이 말씀하시는대로 공부’만’ 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고 TV드라마를 챙겨보고 여기 저기 쏘다닐 때, 규빈이는 공부를 했다고 한다. 쉽게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성적이 좋았다. 아니,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하는 게 공부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규빈이가 특이한 것만도 아닌 듯 하다. 규빈이는 진로 선택을 앞두고 자기 안에서 생겨난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런 규빈이가 달라진 것은 벤자민학교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벤자민학교는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다녀야 한다. 공부 밖에 모르던 규빈이였지만 단호하게 결정했다.

“딱 3일 고민했어요. ‘과연 내가 하는 선택이 맞는 것일까?’ 걱정이나 두려움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제 마음에서 ‘맞다’는 답이 들렸어요. 지금 그 선택에 만족하냐고요? 대대대대대대~ 만족이에요!”
 

[기사 클릭] 규빈이 어머니와의 인터뷰
 방황하던 전교 3등 딸, 벤자민학교에서 세상 제일 행복한 열여덟이 되다


규빈이가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무엇일까. 규빈이는 “저 자신이요!”라고 힘차게 말했다. 지금까지 규빈이는 아주 가까운 친구들하고만 친하게 지냈다.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학교 성적으로 대학이 결정되다 보니 학교 친구들과는 온전히 서로를 응원할 수 없었다. 때로는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기도 했다. 서로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자민학교는 다르다. ‘성적’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보통의 고등학교와 달리 벤자민학교는 ‘인성’을 기준으로 한다. 인성영재 양성이 학교의 설립 목적이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 "우리는 지구를 이끌어갈 리더가 될 것이다!" 서로 서로 응원하며 성장해가는 벤자민학교 아이들

“벤자민 친구들은 모두 한마음이에요. 서로가 서로를 무척 위하는 사이죠. 진심을 말하고 또 진심을 들어주는 진짜 친구들이에요. 저희는 만날 때마다 ‘우리는 커서 이 지구를 바꿀 리더가 될 거야’라고 말하면서 서로를 응원해줘요. 일반 고등학교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화죠.”

벤자민학교는 다양한 직업체험활동, 예체능 활동 등과 함께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1년 동안 진행할 벤자민 프로젝트를 스스로 선택하고 또 진행해나가는 것이다. 널리 모두를 이롭게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벤자민 프로젝트로 규빈이는 오는 11월 길거리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영혼의 새’를 주제로 자신을 무한히 표현해 내보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우리의 뇌는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온갖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무수한 뉴런이 생성되고 또 그 뉴런이 서로 연결망을 형성하며 성장해간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며 뇌를 발달시킬 최적기이다. 이 시기에 뇌를 발달시키지 못하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뉴런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공부밖에 안 하던 규빈이는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뒤 쉼 없이 배우고 만나고 익히고 또 깨쳐나가고 있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벽화작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도자기 장인(匠人)으로부터 도예도 배웠다. 어른들도 힘들다고 피하는 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기저기 상처가 나기도 했고, 멘토인 대구교대 권택환 교수와 한지수 일러스트작가로부터 멘토링도 받고 있다. 7월부터 8월까지는 서울 이모네 댁에서 지내며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청소년센터 활동도 하고 있다.
 

[기사 클릭] 규빈이의 멘토 한지수 일러스트작가와의 인터뷰
“거침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벤자민인성영재 화이팅!"

 

▲ 일러스트작가인 한지수 멘토로부터 일러스트에 대해 멘토링을 받는 규빈 양. 일러스트 기법을 알려주는 멘토의 손을 바라보는 규빈이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전 어른들이 시키는 게 다 맞는 줄 알고 교과서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어요. 전 자유롭게 저를 펼쳐내고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할 때 정말 행복해요. 제 입으로 ‘행복하다’고 표현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요, 전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게 돼요. 이 시간이 너무 귀해서요.
전 사실 표현을 잘 못 해요. 셀카(셀프카메라)도 못 찍어요. 손발이 오글거려서요. 특히 말하는 게 힘들어요.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긴장을 엄청 많이 하게 돼요. 아직도 힘들긴 한데 그래도 무척 좋아졌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규빈이에게 부족했던 것은 표현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규빈이는 세상을 소화해 제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1년 뒤가 걱정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도 규빈이는 “걱정은 없어요. 학교로 돌아가든 아니든, 제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준비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규빈이는 세상을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규빈이에게 벤자민학교를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하… 뭘까요? 장면 하나가 떠올라요. 어두운 터널 끝에 눈부시게 빛나는 환한 세상이 보여요.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그게 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답답하고 어두웠어요. 저를 표현해낼 기회나 경험이 부족했던 거죠.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전 지금의 제가 정말 좋고 또 행복해요. 저와 같은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