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2

요즈음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역사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오늘에 되살려 ‘법고창신’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역사 중 상고사에 해당하는 고조선은 남아있는 사료가 부족하여 고고학적 발굴성과나 문화인류학과 같은 인접학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제한된 사료를 토대로 합리적인 추론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관의 문제가 발생한다. 사관은 이러한 역사해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역사해석의 기준이 되는 사관이 중요한데, 특히 현행 역사교과서는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그 시대의 역사인식을 대변한다. 따라서 역사교과서에서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고 하는 것은 우리 역사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도 중요하지만 현재보다는 미래의 역사인식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1894~95년 갑오ㆍ을미개혁 시기에 반포되었던 교육입국조서에 따른 근대식 교육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최초의 관찬 역사교과서는 1895년 학부에서 국한문 혼용체로 간행한 『조선역사』이다. 이러한 근대역사교과서는 1910년까지 다양하게 간행되었는데,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은 단군을 신화가 아닌 역사적 실체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고조선의 강역과 태자 부루가 만국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 단군의 아들 3명을 강화도로 보내 삼랑성을 쌓게 했다거나 도읍을 옮긴 천도의 기록 등 고조선과 단군을 역사적 실체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자에 대해서도 준왕을 기자조선 41세로 기록하고,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위씨조선을 동등하게 보아 상고 3조선으로 부르고 있다.

근대역사교과서는 공통적으로 한(韓)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의 제정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고조선의 조선이라는 국호는 본래 단군에 대한 민족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고, 대한제국의 국호는 기자 숭배에 뿌리를 둔 숭한(崇韓)의식의 표출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국조 단군을 역사의 시발점으로 보고, 단군조선 이래로 근대조선까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로 인해 민족주의사학이 태동되었고, 대일항쟁기 때 민족주의사학은 더욱 공고하게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일항쟁기 때 일제는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지 말라.” 고 하였고, 그들이 학교 교육에서 강조했던 것은 ‘수신과 국어’ 이었다. 물론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말하는 것이고, 수신(修身)은 오늘날의 도덕교과서와 같은 것으로 일본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황국신민으로 양성하기 위한 내용이 주류였다. 반면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우리 역사를 배달민족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 역사교과서인『배달족역사』를 대한민국 4년(1922년) 1월 15일에 발행하였고, 이러한『배달족역사』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갖고 있었던 우리 민족사의 우월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써 이 책의 내용상 특징은 현행 교과서와는 달리 철저하게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배달민족의 역사적 행로를 추적함으로써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미군정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1954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이래로 7차에 걸쳐 교육과정이 제정되었으며, 현행 교육과정은 두 차례(2007년과 2009년) 개정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행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교과서는 초등학교에서는 국정교과서로 5학년 ‘사회’ 교과목에 편성되어 있고, 중학교에서는 검ㆍ인정 체제의‘역사’ 교과목(세계사 포함)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고등학교 역시 검ㆍ인정 체제의 ‘한국사’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런데 중ㆍ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출판사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역사인식을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의 다양성이라면 이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특히 우리 역사의 첫 출발점이자 뿌리 역사라고 하는 고조선시대 역사라면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한 집필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역사관이 형성될 시기인 청소년기의 우리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집필 기준은 어떠한가?  집필 기준 자체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우선 첫 번째, 고조선의 성립을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청동기 도입 연대는 서기전 400년부터 서기전 4000년까지 그 편차가 심하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따라 서기전 2000년까지 인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도 고조선 건국 연대인 서기전 2333년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역사교과서가 간행되기 전에 이미 신화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편차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호하게 그 성립시기를 기술함으로써 실체적 역사와 거리가 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단군신화와 『사기』 등 사서의 기록을 참고하여 국가의 성장과정을 서술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과서 수록 내용에도 신화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단군의 건국이야기’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내용은 사화라는 표현을 써야 보다 정확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조선열전」은 비교적 당대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고조선은 위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듯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자체가 모호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기준을 제시하면 그 기준에 따라 편찬되는 교과서는 더 신뢰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내용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상의 문제점이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의 대강만을 제시하여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 제작이 가능하도록 하였다는 점인데, 역사교과서가 지나치게 창의적이 되면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국정제의 고등학교 『국사(2007)』에서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하여 2007년에 비로소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로 서술되었다. 이것은 사실 큰 변화이다. 많은 단체 및 기관들에서 역사교과서를 통하여 한국사를 바로 잡겠다는 노력의 결과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2011년부터 현재의 『한국사』로 명칭이 바뀌고, 검정도서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출판사에 따라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검정교과서 8종을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5종)은 “『삼국유사』나 『동국통감』같은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이고, 두 번째 유형(2종)은 “청동기 및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강력한 군장(족장)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졌다.” 이며, 세 번째 유형(1종)은 “『동국통감』에는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록이 신화의 형태로 나온다.” 이다. 여기서 세 번째 유형은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록에 나와 있되, 그것이 신화의 형태라고 굳이 못을 박고 있다. 어떤 의도에 의해서 서술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칫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천명하는 꼴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위와 같이 고조선 성립과 관련해서는 역사인식을 달리하고 있지만 나머지 내용들은 거의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고조선 성립과 관련된 내용 말고는 쟁점사항이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그 밖에 고조선관련 서술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였고,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와 8조법을 통하여 농경사회, 사유재산의 성립과 계급의 분화에 따른 지배계급들이 농사와 형벌 등의 사회생활을 주도하였으며,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집권한 후 철기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세력을 넓혀 나가다가 중국 한무제의 공격을 받아 고조선이 멸망하였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들 내용 중에도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이러한 역사교과서 내용은 합리적 집필기준을 마련하여 제시함으로써 출판사별로 다양한 표현방식을 채택하더라도 기본적인 역사인식 만큼은 공통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분량도 충분히 늘려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8페이지, 중학교에서는 3~4페이지, 고등학교에서는 2~3페이지로 상급학교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고조선관련 분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료가 많지 않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고,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용이 있으며, 고고학적 발굴성과와 인류학과 같은 인접 학문과 지속적인 연구 결과에 따라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교과서에 수록함으로써 역사관이 형성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올바른 역사인식과 역사의식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용이나 형식 모두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역사교과서 집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이나 발행자들이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올바른 역사관을 고취시킬 수 있는 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고, 나아가 교과 내용에 대한 관점의 균형성과 내용ㆍ표현상의 정확성을 기할 수 있는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