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도 연구의 본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천손문화연구회는 지난 6월 21일~22일, 2014년 상반기 정기답사의 일환으로 강원국학원과 함께 태백·강릉지역의 선도문화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기를 7회에 걸쳐 싣는다.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 기획기사
[1편] 태백산을 오르며 - 태백산 당골광장 천부경 비석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있네.
사람들은 산마루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
- 김시습, <망태백산(望太白山)> -

 높고도 신령스러워 예로부터 천년병화(千年兵火)가 들지 않는 영산(靈山)으로 불리었던 태백산. 정상부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올라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 이번 선도문화답사 때 태백산 천제단을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솔직히 혼자 오르기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함께 갈 기회가 온 것이 기뻤다.

태백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새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이러다 태백산을 못 올라가면 어쩌나’ 조바심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언제 왔느냐는 듯 활짝 개어 있었다. 한 달음에 태백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백으로 가는 길, 도로 옆으로 병풍처럼 뻗어있는 높은 산봉우리들과 산신령이 타고 다닐 법한 구름이 산 위에 살짝 걸쳐 장관을 이루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 태백에 가까워질수록 귀가 먹먹해졌다. 강원도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 당골광장 매표소 앞 주차장. 우리 일행이 타고 온 시내버스가 보인다.  넓은 주차장에 차 몇 대만 주차하여 여유가있었다.

우리 답사팀이 만나기로 한 곳은 태백산 당골광장 입구 주차장. 당골광장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7번으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가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태백산 당골광장 입구.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성황당과 함께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이 모습을 보고 이번 답사를 이끄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이승헌 총장, 이하 뇌교육대학원) 국학과의 정경희 교수가 한 마디 덧붙인다.

“강원도는 아직도 동네마다 곳곳에 성황당이 있어요. 참 특이하죠.”

▲ 당골광장 입구 주차장에 있는 성황당과 큰 나무들. 네모 안의 사진이 성황당의 모습이다. 강원도에는 이런 성황당이 많다고 한다.


예로부터 하늘을 섬기고 하늘을 닮고자 했던 우리 민족이라 그런 것일까. 신령스럽고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에는 어김 없이 치성을 드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이 역시 천손의 유전자가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핏줄 속에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성황당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슬슬 추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6월 말임에도 태백산 산 아래의 온도는 17도. 지금까지 등산을 해 봐야 서울의 관악산(632m)이 가장 높은 산이었던 기자의 오판이었다.  산에 올라가면 더울 것이라는 생각에 반소매와 7부 바지를 입고 왔었고, 태백산 일정 내내 이 선택을 후회하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

강원국학원에서 준비한 간식을 받아들고 잠시 기다리니 함께 태백산에 올라갈 일행이 속속 모였다. 30여 명 남짓. 아빠와 같이 온 6살짜리 어린아이부터 60이 훌쩍 넘은 어르신까지.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양하지만, 우리의 뿌리를 바르게 알고 싶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선도문화 답사팀을 보니, 왠지 모를 희망이 느껴졌다.

# 등반의 시작, 천부경(天符經) 비(碑)

당골광장을 지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에는 2007년 강원국학원에서 세운 천부경(天符經) 비석이 있었다. 한민족의 경전이자 기(氣)에 관한 이론을 담은 천부경 비를 대표적인 선도문화 유적인 태백산 천제단을 가는 입구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천부경 비석. 2007년 강원국학원에서 성금을 모아 세운 것이다.

천부경은 81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에너지, ‘기(氣)’에 대한 이론을 적은 우리 민족 고유의 경전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행촌 이암의 현손이자 조선 중기의 문신 이맥(李陌, 1455~1528)의 ≪태백일사≫에서는 천부경에 대하여 천제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으로부터 구전된 글을 환웅천왕이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으로 적게 했고 신라 최치원 선생이 이를 보고 서첩을 만들어 전했다고 밝히고 있다. 천부경은 신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 그저 모든 존재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기(氣)’에 대해 적고 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 시대까지는 세간에 드러나지 않다가 근대 시기에 들어 ‘대종교’ 등 민족종교의 등장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천부경 비석 앞에 선 답사팀을 향해 정경희 교수가 설명을 시작하였다.

“천부경은 81자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상당히 심오합니다. 근대 이후 대종교와 같은 민족종교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천부경은 ‘기(氣)’에 대한 이론이기에 ‘기(氣)’적인 관점에서 풀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진정한 가치와 내용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보다는 ‘어렵다’, ‘중국에도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시큰둥한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이런 천부경을 ‘기(氣)’적인 관점에서 풀 수 있게 된 것은 80년대 한국 사회에 수련문화가 보급되면서부터였습니다. ‘기(氣)문화’, ‘수련문화’가 보급되면서 천부경의 진정한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보급되기 시작한 수련문화가 90년대 안착이 되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크게 퍼져나갔고, 이후 국학원과 국학운동시민연합 등이 주도하여 천부경을 비석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있는 선도유적지 등 의미 있는 장소에 보급하였습니다. 이곳 태백산에는 2007년도에 세워졌습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천부경 비석을 다시 바라보니 왠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천부경 비석이나 단군상 등이 어느 지역에 세워질 때 이를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인 지역 내 종교단체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가끔 있어 이곳, 태백산 아래 세울 때는 어땠을지 자못 궁금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천부경 비가 세워진다고 하면 종교라고 생각하여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는 안 그랬어요. 강원도 사람들은 우리 전통이나 민속 문화에 많이 열려 있습니다. 강원도는 인구도 별로 없고, 높은 산도 많다 보니 유교문화의 영향력이 약했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어떤 때는 고구려 땅, 어떤 때는 신라 땅이 되기를 반복하며 뚜렷하게 어느 나라의 영토로 정해지지는 않았었습니다. 물론, 각자가 자기 세력으로 넣고 싶어 하였지만, 중앙의 통치 시스템이나, 통치원리나, 유교적 질서를 강요하지 않았어요.”

▲ 토씨 하나 놓칠세라 설명을 받아 적는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모두 같은 궁금함이 있었는지, 말 하나, 토씨 하나 놓칠세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듣고 있다.

“지금 이곳 이름이 무엇이지요?”
“당골광장이요.”
“당골광장, 당골, 단굴, 단군의 변형입니다. 그리고 이 동네 지명이 ‘소도동’입니다.”
“아! 소도, 소도동!”

몇몇 사람들의 입에서 ‘소도동’을 되뇌며 탄식이 흘러나왔다.

“소도. 소도는 고대, 하늘로부터 기운이 내려오는 신성지역을 ‘소도(蘇塗)’라 하였습니다. 그 소도가 몇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지명으로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옛날부터 워낙 유명한 신성지역인 데다 이런 지리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보니 강원도는 토착적이고 고유로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고대에는 선도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도가 중심을 잃고 변질이 되어 무속이 되어 버렸기에 강원도에 무속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 등산로 입구의 석장승(좌), 단군성전을 알리는 입석(우)

모두 천부경 비 앞에서 이번 답사를 무사히 잘 마치고, 이 땅 곳곳에 선도문화가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부경 봉송하고 천제단을 향하여 올라갔다. 천부경 비석에서 조금 올라가니 돌로 만들어진 장승이 보였다. 장승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단군성전이라고 쓰인 큰 입석이 보였다. 여기 만들어진 단군성전은 1970년대 성금을 모아 새로 건립하고 제를 지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일정이 빠듯하여 단군성전에 들리지는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탐방 두번째 기획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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