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맞이
춘분맞이
  • 노중평 작가
  • culture@ikoreanspirit.com
  • 승인 2014.07.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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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노중평 작가의 소설 <감응주술> 5편

이때 내 핸드폰이 울려서 전화를 받았다. 혁거세 선생이 걸어온 전화였다.

“혁거세 선생.”
“선생님, 오늘 서해빈西海濱에서 춘분맞이가 있다는 것 잊지 않으셨지요?”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갈까 하는데 계군들이 동의할까요?”
“계주(중국은 계자禊者라 한다)가 이미 어떤 손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꿈에 미리 다 보았답니다.”
“아! 그래요?”
“근화 씨가 나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 무당들이 다 알아버렸으니 함께 가야 하겠어.”
“그렇게 하세요.”
 
근화가 승낙하였다.

“혁거세 선생. 오늘은 함께 행동합시다.”
“그러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지금 계신 데가 어디입니까?”
“역 광장에 있는 열차예요.”
“알겠습니다. 열차 앞에 가서 전화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 굿의 일월마지는 춘분맞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인천제가 한국을 세울 때, 한인천제의 비가 된 항영이 처음 일월마지를 하였다. 이족夷族은 어떠한 형태로든 일월마지, 즉 춘분맞이를 하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오늘 행사에 쓰려고 준비한 것이다. 상자 안에 쇠뿔로 만든 각배角盃 2개가 들어 있다.

“옛날에 춘분맞이 할 때 쇠뿔을 잘라 각배를 만들어 우혈牛血을 담아서 태양에게 바쳤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춘분맞이요. 이 일을 처음 한 사람이 복희였지.”
“그래요?”
“복희伏羲라는 문자는 복희가 임금으로서 절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쓴 문자야. 그런데 언재부터인가 희羲자에 우牛자를 변으로 붙여서 쓰기 시작했어. 이 문자의 뜻은 복희가 소를 바쳐 제사 지냈다는 뜻이야. 그때는 야생소를 길들여 농사에 트랙터로 쓰거나, 사람을 태우는 버스로 쓰거나, 짐을 운송하는 트럭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일 것이야. 재산 가치가 가장 높았던 것이 소였던 시대였지. 소를 잡아서 뿔을 바친다는 것이 문명을 바꾸는 일이었을 것이야.”

근화는 각배를 들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각배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오늘 여기에 소피를 받아 바칠 것인가요?”
“그렇게 할 거야.”
“계꾼이 10사람이면 소 1/10마리 값만 내면 소 1마리를 사는 군요.”
“계산상으론 그렇지. 그러나 그런 계산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돈을 추렴하는 방식에 어떤 룰이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계꾼 10명이 10달 동안 소 1마리 값과 제사비용을 계를 모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다음에 제수를 구매할 때 10사람이 공동으로 생산한 것을 계주가 구매해야 해. 다른 계원들은 구매에 참여할 수 없었어. 계주를 옛날에 왕검王儉이라 했지. 이게 신시시대의 호혜경제라는 것이야. 신시경제의 특징은 어느 누구도 이익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야. 신비스러운 사회였지.”
 
열차 앞에서 혁거세 선생이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지금 도착했습니다.”
“근화 씨 혁거세 선생이 도착했소. 내려갑시다.”

우리는 찻값을 지불하고 찻집 열차를 나왔다. 밖은 부천역의 남쪽 광장이었다. 광장 가운데를 화단으로 만들고 가운데에 사회주의식 표현 방법으로 조각한 여러 명의 군상을 세워 놓았다. 이 고장이 공장지대라는 표시였다. 그러나 지금 이 고장엔 공장다운 공장이 없고, 회사다운 회사가 없다. 쇠락해 가는 중소도시일 뿐이다.

“선생님은 상당히 예지력이 있는 분 같은데 왜 평범한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베드타운에서 살고 계시나요?”
“격암 선생이 내게 명령해서 여기에 와서 살고 있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눈을 뜨고 찬찬히 보면 희망이 없는 도시가 아니야. 퇴락한 부천을 희망의 도시로 만들려면 근화 씨 같은 분의 절대적인 조력이 필요해.”
 
오늘 선생은 차를 바꾸어 타고 나왔다. 청색의 말쑥한 대형차였다. 그는 언제나 나를 만날 때 새 차를 렌트해 타고 나왔다. 그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잡동사니가 들어찬 차를 쉬게 하였다. 우리는 승용차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중단되었다. 승용차에서 혁거세 선생이 내렸다.

“오늘 만나 뵌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혁거세 선생이 근화에게 아리송한 말을 하였다. 우리는 차에 올랐다. 나와 근화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차는 김포 쪽을 향하여 달렸다. 많은 차들이 강화도 쪽으로 달리거나 서울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차가 많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날씨가 좋군요. 근화 씨에게 좋은 날이 될 것 같소.”

내가 말했다.
우리는 강화의 서북 쪽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사람이나 집이 없고 이북과 가까운 북쪽 끝에 군부대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바닷가로 걸어갔다. 10사람의 계군이 바닷가에 모여 있었다. 좀 떨어져 3대의 왜건 형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봄이라고 하나 바닷가의 날씨는 찬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이 근화를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주가 말하였다. 계주는 여왕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한복을 약간 변형시켜 새로운 패션으로 만들어 입고 있었다. 흰색의 옷이었다. 왕관을 쓰면 여왕처럼 보일만한 풍모였다. 자신이 사모임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다.
 
“오늘 초대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근화가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계주가 나와 혁거세 선생에게 말하였다.

“비밀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문은 핸드폰에 저장해 왔습니다. 어느 분이 읽으실 것인지 핸드폰을 그분에게 드리겠습니다.”

내가 각배가 든 상자를 계주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계주가 상자를 받았다.

“열어 보세요.”

계주가 상자를 열어 계원들에게 뿔을 깎아 만든 직고聀觚를 보여주었다. 계원들은 직고가 너무 조그맣다는 데 놀라 탄성을 질렀다. 계원들은 네모난 상 2개를 차에서 내려 물이 철썩거리는 바닷가에 신속하게 펼쳤다. 물이 들어오는 곳에서 10m 뒤쪽이었다. 제상 차리는 일을 혁거세 선생이 도와주었다. 왼쪽에 놓인 상에는 태양과 각수에게 바칠 쇠뿔과 소피와 모절旄節을 올려놓았다. 춘분상이었다. 오른쪽에 놓인 다른 상에는 우혈牛血이 든 주전자와 직고를 소반에 놓았다. 삼신상이었다. 삼신상에는 삼신에게 바치는 빈 술잔 3개와 해떡․달떡․칠성떡을 접시에 담아 올려놓았다. 이로써 춘분마지 준비가 끝난 것이다.

▲ 춘분마지 고사 상차림은 단군왕검의 조선을 상징하는 (왼쪽) 검은 시루에 찐 떡과 (오른쪽) 중여곤을 상징하는 북어와 타래실, 직고聀觚 2개에 우혈牛血을 담아 올린다. 중여곤이 고사상에 올라가는 이유는 그가 고사를 창안한 최초의 제관이었기 때문이다.

“몇 시에 지낼까요?”

혁거세 선생이 내게 물었다.

“늦었는데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시작하시지요.”

내 말을 듣고 혁거세 선생이 계주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춘분맞이를 시작하겠습니다.”

홀기를 맡은 계원이 제상 왼편에 꿇어앉아서 선언하였다. 집사를 맡은 계원 2사람이 제상 좌우에 꿇어앉았다. 계원 2사람이 태양의 위패를 맞잡아 들고 전진 후퇴를 서서히 반복하며 제상 앞에 들고 와 상 위에 얹어 놓았다. 다음에 또 2사람의 계원이 각수의 위패를 들고 전진 후퇴를 서서히 반복하며 제상 앞에 와 얹어 놓았다.

▲ 노들제 굿상차림 중에서 일월칠성에게 바치는 상차림이다.천부삼인天符三印 상차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근화와 함께 제상 앞 오른 쪽에 서있었다.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 혁거세 선생은 전후좌우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천고天鼓하세요.”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오른쪽 악사 자리에 앉아 있는 계원이 큰 소리가 나게 북을 울렸다. 북을 치는 동안 바람이 멎었다.

“향로에 향을 올리겠습니다.”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계주가 소반에 놓인 향로 앞에 1보 나와 꾸부려 앉았다. 집사가 향을 계주에게 집어 주었다. 계주가 향을 받았다. 집사가 향에 불을 붙여 주었다. 계주가 향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 집사에게 주었다. 집사가 향을 받아 향로에 꽂았다. 향내가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냄새가 썩 좋지 않았다.

“이제부터 부정 치기를 하겠습니다. 태울 것은 불로 태우고, 씻을 것은 물로 씻고, 말로 할 것은 말로 하여 부정 치기를 합니다.”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부정 치기를 맡은 계원들이 모두 나와서 제상 오른쪽에 섰다. 모두 4사람이었다.
 
“소지를 시작으로 부정 치기에 들어가겠습니다.”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소지를 맡은 계원이 대야 앞에 앉아서 한지를 말아 들고 불을 붙였다. 한지가 불에 타면서 재가 날렸다. 하얀 재가 하늘로 오르는 것으로 보아서 종이를 암수합체로 만든 대단히 좋은 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수 뿌리기를 하겠습니다.”

▲ 금문 제祭자. 청동제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다. 북을 울려 북쪽 하늘에 고하고 제사지낸다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장손을 시동신상으로 모시고 제사지낸다.
 

천수를 맡은 계원이 제상 앞에 놓인 작은 항아리를 들고, 솔가지를 든 계원이 제상 주변을 돌며 항아리에서 물을 찍어 사방에 뿌렸다. 솔가지에 묻은 물방울들이 햇볕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부정경不淨經을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부정경을 맡은 계원이 악사가 울려주는 장구 가락에 맞추어 부정경을 봉독하였다. 장황한 내용을 간결하게 줄였으므로 짧게 마칠 수 있었다.

“헌작獻爵하겠습니다.”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우각牛角에 우혈牛血을 받아 바쳐야 하는 의식이므로 내가 도와주어야 하였다. 한국에서 무당들이 행하는 춘분맞이에서 처음 우혈을 바치는 헌작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쇠머리가 놓인 제상 앞으로 가서 집사 곁에 섰다.

“집사는 직고를 드세요.”

내가 말했다. 집사가 소반에 놓인 직고를 들었다. 내가 주전자를 들어 직고에 소피를 따랐다.

“직고를 계주에게 드리세요.”

내가 말했다. 집사가 직고를 계주에게 주었다.

“태양을 향하여 직고를 들어 올리세요. 태양과 일직선이 되게 각도를 맞추세요.”

내가 말했다. 계주가 내가 하라는 대로 하였다.
 “태양의 위패 앞에 놓으세요.”

계주가 집사에게 직고를 주었다. 집사가 직고를 태양의 위패 앞에 놓았다. 또 하나의 위패 앞에도 직고에 소피를 딸아 올려놓았다.

 “이제는 절을 하세요.”

내가 홀기를 맡은 집사에게 말했다.

▲ (위쪽) 신라의 토우. 박혁거세와 6부 촌장으로 보인다. 조선의 절 법인 삼육구배를 하고 있다. (가운데) 제주를 담아 올리는 술잔인 작爵이다.(아래) 천제를 지낼 때는 원정圓鼎을 썼고, 지제를 지낼 때는 방정方鼎을 썼다.

“모두 다 절을 하시겠습니다. 전부 일어서세요.”

홀기 집사가 말했다. 나와 근화와 혁거세 등 모두 13명이 절하기 위하여 일어섰다.

“읍揖!”

우리는 홀기 집사가 크게 외치는 창에 맞추어 모두 손을 단전 앞으로 모았다가 눈썹 위로 올렸다.

“궤跪!”

우리는 홀기 집사의 창에 맞추어 모두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무릎을 꿇었다.

“배拜!”

우리는 모두 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가 다시 눈썹 위로 올리며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우리는 각수 위를 통과하는 태양을 향하여 절하고 있었다. 춘분의 기가 사방에 넘치고 있었다.

“춘분의 기다!”

나는 나직하게 탄성을 발했다. 왜, 우리의 조상 풍이족이 자신들이 춘분의 기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던 것일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가슴이 뭉클한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축께서는 축을 봉독하십시오.”

홀기 집사가 홀기를 읽었다. 나는 핸드폰을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축祝을 노출시켰다. 나는 축을 읽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조상은 스스로 춘분의 기에서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가르쳐 주어서 알게 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깨달아 터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희도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 터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조상과 맺은 인연 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축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준비한 축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축 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상하게도 잠깐 태양이 멈춘 느낌을 받았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천지공사天地公事가 일어났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그가 한 말을 접수하기로 하였다.

“다음엔 삼헌관三獻官이 헌작하는 순서로 들어가겠습니다. 삼헌관은 절하는 자리로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앉으세요.”

홀기 집사가 시키는 대로 삼헌관이 제상 앞에 나와서 앉았다.

“먼저 삼헌관이 초헌․아헌․종헌의 순서로 춘분제상에 잔을 올리겠습니다. 다음엔 삼신제상에 순서대로 잔을 올리겠습니다. 초헌이 먼저 반보半步 앞으로 나와 앉으세요.”
 
초헌인 계주가 먼저 반보 앞으로 나와 앉았다.
 
“초헌 헌작하세요.”

왼편에 있는 집사가 잔을 들어 초헌에게 주었다. 초헌이 잔을 받았다. 오른편에 있는 집사가 주전자를 들어서 술을 따랐다. 초헌이 왼편에 있는 집사에게 잔을 주었다. 집사가 잔을 태양의 위패 앞에 놓았다.

“아헌 헌작하세요.”

이번에도 같은 요령으로 아헌이 술잔을 태양의 위패 앞에 바쳤다.

“종헌 헌작하세요.”

이번에도 같은 요령으로 종헌이 술잔을 태양의 위패 앞에 바쳤다. 이로서 태양에게 바치는 삼헌관의 헌작이 끝났다.  다음엔 각수에게 헌작하는 순서였다. 술 3잔을 태양에게 바쳤을 때와 같은 요령으로 술잔을 바쳤다. 이리하여 각수에게 바치는 삼헌관의 헌작이 끝났다.

“다음엔 삼신에게 헌작하겠습니다.”

삼신에게도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순서로 헌작이 진행되었다. 헌작이 모두 끝났다.

“헌작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엔 폐백을 바치겠습니다. 폐백은 흰 비단과 구슬입니다. 폐백은 초헌께서 혼자서 바치겠습니다.” 

폐백은 네모난 대나무 광주리에 담겨 있었다. 왼쪽 집사가 광주리를 하나하나 들어서 초원에게 주니 초헌이 받아서 오른쪽 집사에게 주었고 오른쪽 집사는 그것을 받아서 각 위패 앞에 놓았다. 이로써 폐백도 끝났다.

“다음엔 마지막 순서로 음복하겠습니다. 집사는 헌관에게 음복주를 드리십시오.”

집사들이 음복 잔을 들어 주전자에 모두 부어 섞어서 잔에 따라 헌관들에게 주었다. 헌관들이 음복 잔을 받아 마셨다.

“태울 것은 나중에 태우고 제기도 오늘의 제사가 다 끝나면 치우겠습니다. 다음 순서로 굿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하는 굿은 지극히 간결한 굿이 될 것입니다.”

오늘 굿에서 주무는 계주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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