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영 강사의 민방위 안보교육(사진=윤한주 기자)

지난달 13일 서울 중랑구민회관에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화창한 날씨와 달리 표정은 어두웠다. 오후 2시가 시작인데 비어 있는 좌석들이 눈에 띄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은 번호가 표시된 자리를 찾았다.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진행자의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방위 대원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20세부터 40세까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안보와 재난, 생활안전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안보교육, 역사에서 찾는다!

▲ 정혜영 강사(사진=윤한주 기자)
이날 안보 교육을 맡은 정혜영 강사(서울국학원)는 대원들과 400년 전 역사여행을 떠났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했던 임진왜란,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주한다.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하는 과정을 시청각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전했다. 정 강사는 당시 거북선에서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던 ‘격군’을 소개했다.

“나라가 망해버리면 눈 감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이 된다. 우리 가족과 이웃이 이러한 세상에 살지 않기 위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도록 노를 저었다. 역사에 이름 한 줄 없다. 그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50분 강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숙연해졌다. 처음과 달리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강의를 마치고 정 강사를 만났다. 그는 “조선 지도층이 많았다고 하지만 의병이 나타난 것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했다”라며 “그 마음이 있어야 안보가 튼튼한 나라가 된다”라고 말했다.

 

획일적 교육 vs 감동 교육

최근 민방위 교육에서 국학(國學)이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권흥상 강동구청 민방위 팀장은 “안보라는 것은 주입식으로 되지 않는다.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우러나게 해야 한다. 그런 내용을 담았기에 호응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보 중랑구청 민방위 팀장은 “이전의 강의는 획일적이었다. 북한은 이렇고 6․25는 왜 일어났나? 그런데 나라를 위해 온 가족이 독립운동하고 죽음까지 당한 이회영 선생을 국민이 얼마나 알겠는가? 강의를 듣던 직원이 눈물을 흘렸다. 아, 이런 거다”고 확신했다.

이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보 강의를 듣다가 강사와 싸운다. 왜 그렇게 북한을 비하하느냐? 보수와 진보가 대립해요. 그런데 국학 강의를 듣고 따지는 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원들도 교육 후기를 남겼다.

정 모 씨는 강동구청 게시판에 “오늘 2교시 국학원 강의는 재미와 감동의 도가니였다”라며 “가슴에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이 뭉클뭉클 피어오르더군요. 이 좋은 강의는 매번 민방위 교육 때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적었다.

탁 모씨는 도봉구청 게시판에 국학 강의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심과 가족애”를 꼽았다. 그는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 때도 이러한 강의는 호응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추천했다.

▲ 정혜영 강사의 민방위 안보교육(사진=윤한주 기자)

강사들이 말하는 민방위 교육의 ’매력’

현재 서울국학원 소속 10명의 강사가 9개 구청 민방위 교육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강의력을 높이고 있다. 다음은 강사들의 소감이다.

- 박현미 강사

“(교육생들이) 젊은 세대들이잖아요. 그분들의 혼을 깨운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나면 대원들이 음료수를 사주면서 정말로 좋은 강의라고 말해줄 때 보람이죠. 국학 강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 안정민 강사

“다른 강의와 다르게 준비를 더 많이 하게 되요.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내년 강의를 지금부터 해요. 매년 똑같을 수 없잖아요. 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야죠. (대원들이) 가슴에 조금이나마 열정이 생기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해요. 1번을 하든 10번을 하든 최선을 다해요. 저도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아요.”

- 박화정 강사

“그분들은 강의를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마지못해 앉아있죠. 강의하면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런 것에 보람을 느껴요. 뉴스도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되죠. 내년에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남자 강사가 오면 (대원들이) 핸드폰을 계속 해요. 우리(여자 강사)가 하면 허리를 펴더라고요. 워크숍에서 만난 한 남자 강사는 질문하면 대원들이 답을 안 해줘서 민망하다고 그래요. 저희는 물어보면 대답해주거든요. 사탕을 준비해서 주는 것도 졸지 않게 하는 방법이죠. 잠 좀 깨워볼까요? 라고 체조를 하면 따라 해요. 여자 강사라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 김상회 강사

“민방위 교육의 가장 큰 수혜는 강사 자신에요. 강의하면서 시대정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강의를 듣는 분들이 30~40대 남자들이잖아요. 시사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죠.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돼요. 다른 강사들과 차이점이라고 하면 우리가 하면 (대원들이) 빨려들면서 듣는 게 느껴져요. 조금이라도 와 닿게 하죠. 보람 있어요.”

- 고정숙 강사

“많은 분에게 홍익정신을 알려주는 것이 보람이에요. 그리고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서보는 것도 성장이 돼요. 자신감이 생기죠.”

■ 민방위 교육 강사가 되려면

서울국학원은 신규강사교육과 국학강사교육 2번의 코스를 수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방위분과에 소속되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강의력을 키운다. 1년에 한 번씩 시에서 주관하는 민방위 교육 강사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 떨어지면 다음해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 합격하면 2년 동안 강사 자격이 취득된다. 문의) 02-722-1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