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 시청역에서 인천으로 가는 전동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전동차를 타고 부천역에 가서 내리면 되었다.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명등의 광도가 낮아 상당히 어두웠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도를 낮춘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선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때 예쁘게 생긴 어떤 대중가수가 불러서 히트했던 초혼招魂이라는 노래였다.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행선지를 성주산이라 쓴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성주산으로 가는 열차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산이라니 처음 보는 열차였다.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니 22:00로 문자가 나와 있었다.
 문이 열리자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노약자석 뿐만 아니라 일반석도 텅 비어 있었다. 이 시간에 승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누군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행동이 민첩한 노인이었다. 마술사나 입고 있을 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노인네의 복장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그는 장난감으로 만든 호랑이 한 마리의 목에 맨 줄의 끝을 잡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생 호랑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였다.
 노인은 나를 이상스러워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보시오. 혹시 이 열차에 잘못 타지 않았소?”
 그가 내게 물었다.
 “그렇게 보입니까?”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그렇다니요?”
 “이 열차는 당신이 탈 수 있는 열차가 아니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어떤 사람이 탑니까?”
 나는 기분이 나빠져 가는 감정을 누르며 물었다.
 “하여간 당신이 타서는 아니 되는 열차라는 것만을 알아 두시오. 이 열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요. 만약에 당신이 나처럼 호랑이를 데리고 있다면 타도 괜찮소.”
 노인과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황당하였다.
 나는 오른손을 웃옷 주머니에 찌르고 있었다. 내 손이 청동팔주령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니군.”
 노인이 말했다.
 그가 내가 청동팔주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듯싶었다.
 “그렇게 보입니까?”
 “그렇소.”
 열차가 성주산역에 닿았다. 열차에서 내리고 보니 내가 늘 내리던 부천역과 다를 것이 없는 같은 역이었다.
 “성주산역이 부천역과 다를 것이 없는 역입니다.”
 “하기야 그렇지. 그러나 당신이 열차를 탄 그 시간은 아무도 탈 수 없는 시간대의 시간이었소. 순간이동의 순간이었단 말이요. 아무래도 누군가 당신을 내가 타는 열차에 태우려고 당신을 그 시간대에 열차와 만나게 한 것 같소.”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을 그가 하고 있었다.
 나는 신들의 움직임의 일단을, 신들의 세계를 잠깐 엿본 느낌이 들었다.
 열차가 출발하자 곧이어 동인천행 열차가 들어왔다. 동인천행 열차는 승객을 쏟아놓고 출발하였다. 승객들은 부천역에서 벌어진 엄청난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역사 남쪽 광장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물었다.
 “내가 좌정한 곳으로 가지. 함께 가시겠오?”
 “아닙니다. 귀가할 시간이 늦어서 집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와우고개에서 살지?”
 “그렇습니다.”
 “당신이 사는 집은 당신이 살아야 할 집이 아니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주산의 주인이 살아야 할 집이란 말이요.”
 나는 심기가 불편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내가 해 준 말을 기억하시오. 당신이 나의 전용차에 탔다는 인연으로 내가 말해 주는 것이니까.”
 택시가 노인 앞에 와서 멎었다. 택시 기사가 내려 노인을 정중하게 모셨다. 나는 이상하게도 택시 기사가 노인을 호위하는 신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탄 택시가 떠나자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나의 집은 이곳에서 성주산 쪽으로 도보로 15분 거리였다. 와우고개 중턱에 내가 사는 집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내일 노인을 찾아가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이메일을 점검하니 유 선생이 보낸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삼성대왕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홍익인간 체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도 덧 붙였다.
 근화라는 아이디를 가진 아가씨의 이메일도 와 있었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