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후원하는 현장학습 여덟 번째 답사지는 아산 현충사였다. 학생과 학부모 90명이  6월 14일  관광버스 두 대로 아산에 가서 조선시대에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나고 왔다.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존경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세계 4대 해전으로도 손꼽히는 한산대첩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 역사상 큰 고비를 넘기는 데 이순신 장군처럼 독보적인 활약을 했던 인물이 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 장군은 하늘이 우리민족에게 주신 큰 선물이자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 일곱 차례의 현장 학습으로 조선의 아름다운 궁궐과 한양성곽을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조선시대에 국난을 극복한 성웅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리 사뭇 진지해 보인다.

▲ 이순신 장군의 충신 편액.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아산 현충사는 숙종 때인 1706년에 세워졌다. 그런데 고종 5년(1868)에 시행된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고 만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묘소와 토지를 지켜내고 현충사를 다시 세웠고, 1960년대 현충사 성역화사업을 통해 지금의 현충사가 단장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산현충사는 넓은 부지에 잘 조성된 조경들로 현장학습 참가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과 멋진 모습의 소나무들은 이순신 장군의 높은 충정심과 품격을 표현하는 듯 잘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굳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충무문에 들어서면 정려가 있는데, 이것은 임금이 이순신 장군과 그의 후손들 중 충신과 효자에게 임금이 하사한 편액이다. 학생들은 훌륭한 삶을 살아 가족뿐 아니라 마을에도 자랑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본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학생들이 묵념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본전에 올라가 장군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봉심(奉心)의 시간이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히 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장난기 가득하던 학생들도 이 시간만큼은 숙연해지며 예를 행하였다. 본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이 영정은 1953년 장우성 화백이 그렸고,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정을 보고 있노라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곧은 성품으로 충과 효의 마음을 지켜낸 장군의 삶이 느껴져 절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다.

▲ 임금이 충신 효자에게 내린 편액인 정려 앞에서 답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순신 기념관에서는 임진왜란  자료가 많았다. 조선과 일본의 무기와 배를 비교해 놓았고, 이순신 장군의 가계도, 유성룡 등 곁에 함께 했던 인물에 대한 기록도 볼 수 있었다. 특히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의 유산이다. 전세계에서 그렇게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긴 장군은 없다고 한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그 당시 정치, 사회상, 백성들의 삶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동시에 군인으로, 아버지로 또 아들로 살아온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무덤에서 아들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함께 느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학생들은 숙제처럼 써오던 일기를 전쟁터에서 장군이 쓴 것에 또 한번 놀라며 기록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곳은 바로 셋째 아들 이면의 묘였다. 묘비에는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장군에 관한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다. 며칠 밤을 소리 내어 통곡했다는 대목에서는 모두가 가슴 아파했다. 가장 아끼던 젊은 아들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전쟁이라는 비극 앞에서 한 나라를 구한 장군이지만 사랑하는 아들 하나를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절규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 우리역사바로알기 현장학습에 참가한 학생들은 아산 현충사 앞에서 이순신 장군의 충과 효를 통해 나라와 가정의 소중함을 느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답사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학생들은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그렇게 용감한 장군이 아들의 죽음앞에서 통곡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가슴 아팠다고 했다.  마지막 학생이 이순신 장군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때보다 나라의 소중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낀 소중한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