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다. 영화계로 말하자면 ‘블록버스터’의 계절이다. 이맘때 국산 영화가 맥을 못 춘다. ‘영웅’과 ‘전쟁’이라는 2가지 뻔한 스토리를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가를 휩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톰 아저씨’로 불리는 톰 크루즈가 장동건과 차승원을 KO 시켰다. 그가 출연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가 4일 개봉한 이후 <우는 남자>와 <하이힐>을 따돌렸다. 15일 동안 단 하루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지금도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왼쪽부터 백 투더 퓨처, 터미네이터2,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영화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반복된 주제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무기가 추가됐다. 그것은 시간Time이다.

육체에서 정신이동으로

시간은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필수 아이템이다. 대표적으로 <백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가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자유롭게 여행한다.

제임슨 카메론 감독의 역작 <터미네이터(Terminator)2, 1991>는 어떠한가? 인류와 기계의 전쟁이 계속된다. 스카이넷은 인류 저항군 사령관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액체 금속형 로봇인 T-1000(로버트 패트릭)을 과거로 보낸다. 인류 저항군은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T-101(아놀드 슈왈제네거)을 과거로 급파한다. 미래의 위기를 과거에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지난달 22일에 개봉한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X-Men : Days of Future Past)>에도 적용된다.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발명한 로봇 ‘센티넬’로 인해 엑스맨은 멸종될 위기에 처한다. 이를 막기 위해 ‘울버린’을 과거로 보낸다.

<엑스맨(X-man)>은 2000년 첫 개봉 이후 3부작이 연달아 흥행했다. 시리즈를 뛰어넘는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사이먼 킨버그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엑스맨이 총출동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싱언 감독은 육체가 아니라 의식의 시간이동을 택한다. 미래의 몸은 잠들어 있다. ‘울버린’의 정신을 젊은 시절의 몸으로 보낸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영화 <아바타(Avatar), 2012>에서 인간의 뇌를 이용해 원격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하반신 불구의 몸인 제이크(샘 워딩튼)가 육체가 아닌 정신을 이동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빌 케이지는 죽음이 좋다, 왜?

▲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시간이동을 다룬다. 단지 그 방법이 독특하다.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공보 장교다. 전투에 가서 영상을 찍어오라는 장군의 명령을 거부한다. 곧 탈영병 처리가 돼 이등병으로 강등된다.

그는 50kg에 달하는 ‘엑소슈트’를 처음으로 입는다. 이는 군인의 운동능력을 키워준다. 강력한 화력을 가진 무기도 장착했다. 미사일도 보낼 수 있으니 1인 탱크나 다름없다. 하지만 케이지가 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 전투가 벌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죽는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다. 케이지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깨어날 뿐이다. 죽기 전날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외계 종족을 죽이면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는 타임루프(Time Loop)다. 마치 데이터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리셋(reset) 기능을 가졌다고나 할까?

영화는 특정한 장치를 통해 시간이동을 다루지 않는다. 시간을 다룰 수 있다는 능력으로 나온다. 이러한 능력은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다시 살려내고 전투에 나서는 것과 같다. 케이지는 죽음이 반복될수록 능력이 향상된다. 어느새 졸병에서 영웅으로 바뀌어간다.

우리도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아프고 죽음이 다가오니, 인간의 유한함은 두려움이다. 어쩌면 <시간이동>을 다룬 영화들은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의 대리만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