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신문도 모바일로 보는 스마트폰 시대, 이제는 사전 역시 모바일 앱을 이용한다.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전자기기의 편리함에 밀려 역사의 추억 속으로 밀려난 종이사전. 이 영화의 테마는 바로 이 종이사전이다.

그렇다고 종이사전의 매력이 전자사전에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단어를 찾던 즐거움마저 디지털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식 종이사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사전 편찬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보통 사전의 이미지처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사전이란 소재를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성과 코믹함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는 편집자 아라키가 일을 그만두기 전 영업부 왕따인 마지메 미츠야를 사전편집부로 스카우트하면서 시작된다. 마지메는 얼떨결에 사전편집부에 합류하면서 사전 만들기 프로젝트인 ‘대도해(大渡海)’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언어학을 전공한 경력의 소유자답게 그는 단어 수집 등 사전편찬 작업에 매료된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 동안 묵고 있는 하숙집 할머니의 손녀 카구야를 만나며 한눈에 반한다. 편집부 식구들은 그의 사랑의 도와주며 ‘사랑’이란 단어의 목록 풀이를 맡긴다. 이들 도움으로 마지메는 카구야와 결혼하며 직장과 일에서 안정을 찾는다.

마지메는 편집부 식구들과 함께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작업으로 단어를 모아 총 3,000만 개의 단어풀이를 완성한다. 하지만 대도해 사전 출간을 앞두고 실수로 단어 하나가 누락된 것을 발견하며 출간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마지메는 식사도 거른 채 밤샘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 사전편집부 사람들과 대도해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는 마지메. 그는 단어의 의미를 찾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기 시작한다.

“단어는 생겨나기도 하고 또 소멸하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하지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사전 편찬의 노고와 위대함 때문만은 아니다. 출셋길이 열린 영업부를 떠나 외진 사전편집부에서 일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마지메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은 타인과 교류하고 싶은 욕망을 대변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소통 창구인 것이다.

(마지메) “사전을 만든다는 게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 같아요.”
(하숙집 할머니) “그래서 그만 두게?”
(마지메) “아뇨. 사전 만드는 일에 제 평생을 바칠 겁니다. 다만 겁이 나요.”
(하숙집 할머니) “젊은 나이에 평생 할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미츠야는 행복한 거야.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잖아.”

사람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듯 행복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순간 그 일에 얼마나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느냐다. “당신은 진심을 다해 현재를 살고 있느냐”고 묻는 포스터 문구가 화두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내 마음의 사전을 행복한 단어들로 채우는 것은 오롯이 인생의 주인인 자신의 몫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