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가 6월 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제30회 국학원 정기 학술회의에서 선도(仙道)를 바르게 세운 '단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단학은 가장 먼저 한국선도의 요체인 '선도 기학(仙道 氣學)'을 현대화한 측면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선도 수련법이 현대화되었고 선도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는 지난 5일 열린 제30회 국학원 정기 학술회의에서 선도(仙道)를 바르게 세운 '단학'에 주목했다.

 <코리안스피릿>은 지난 학술회의에서 정 교수가 발표한 '현대 한국선도의 전개 양상과 단학'을 세 편에 나누어 게재한다. 아래는 마지막 편인 ▲현대화·세계화 속의 한국선도 원형 ▲맺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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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현대화·세계화 속의 한국선도 원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선도 기학 및 선도수련법의 현대화에 기반하여 선도가 널리 대중화되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세계화 움직임도 시작되었다. 이렇게 선도가 현대화하고 또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선도 원형성의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현대화나 세계화의 필요성에 따라 선도가 모습을 바꾸어 가게 될 경우 선도의 원형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삼국 이래 선도가 오랜 침체기를 지나면서도 현재에 이르러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선도의 원형이 분명하였던 때문이었다. 존재론(氣學), 인간론, 수련론, 실천론 등 모든 방면에서 한국선도의 원형을 상정해 볼 수 있지만 그 모든 원형성의 시작점은 존재론(기학)이다. 선도 기학에서 사람을 위시한 세상에 대한 인식, 사람의 본질 및 수련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대사회적 실천에 대한 인식이 파생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도 기학의 요체가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임은 앞서 살펴본 바인데, 구체적인 한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은 대체로 그 자체로 강조되기보다는 그 화현인 ‘삼성三聖(환인·환웅·단군)’의 형태로 강조되는 경향이었다. 한국 상고·고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삼성이 大司祭(선도적 의미로는 ‘선도 스승師’)이자 군왕으로서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던 때문이었다.

 한국 고대 이래의 많은 선도사서들에서는 ‘선도의 전승’이라는 기준으로써 한국사 계통을 설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연원을 제시하고 있는 책자는『澄心錄』「符都誌」이다. 여기에서는 ‘麻姑城→黃穹族→有因氏→桓國→神市倍達國→檀君朝鮮’이라는 仙道正統論을 제시하며, 이외의 대부분의 선도사서들에서는 ‘桓國·神市倍達國·檀君朝鮮’ 三代를 선도의 원형기로 제시한다. 三代를 이끈 주역이었던 역대의 환인·환웅·단군은 한국사 전통 속에서 ‘三聖’, 또는 ‘三神’으로 통칭되어 왔다. 이때의 삼신은 물론 한국선도 일반에서의 ‘천·지·인’ 삼원으로서의 삼신과는 다른 ‘환인·환웅·단군 삼성’으로서의 삼신을 의미한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삼성은 선도수행을 통해 자신속의 ‘일기·삼기’를 회복하고수련법을 후대로 전승한 당대 최고의 ‘大司祭(선도 스승師)’이자(‘성통’), ‘홍익인간·재세이화’라는 선도적 실천에 충실하였던 군왕이며(‘공완’), 성통·공완후 최종적으로 우주의 근원적인 ‘일기·삼기’로 돌아가 하나된 존재(‘조천’), 곧 한국선도수련의 정석인 ‘성통→공완→조천’의 典範으로서 이야기된다.

 삼성은 선도수행의 상징적 존재일 뿐아니라 실제수련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곧 선도수련시 수련자는 삼성에 집중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우주의 ‘일기·삼기’를 끌어 들일 수 있다. 선도수련의 일차적 관건인 우주의 ‘일기·삼기’는 이와 합일된 존재인 삼성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감지될 수 있었기에 우주의 ‘일기·삼기’가 곧 삼성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삼성은 우주의 ‘일기·삼기’와 수련자속의 ‘일기·삼기’를 매개해주는 존재로서 우주의 ‘일기·삼기’일 뿐아니라 모든 사람속에 자리한 ‘일기·삼기’로도 인식되었다.

 여기에서 ‘일기·삼기=삼성(선도 스승)=수행자속의 일기·삼기’라는 한국선도의 일대 원칙이 성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선상에서 삼성이 빠진 일반적 기수련은 한국선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현상도 생겨났다. 이러하므로 선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삼성’이 놓이게 되며, ‘삼성’의 위상 문제는 선도의 원형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국선도의 이러한 원형적 삼성 인식은 고조선 이후 선도가 퇴조되는 국면 속에서 변질, 삼성이 ‘수련’의 매개라기보다는 ‘삼신하느님신앙, 삼성신앙(단군신앙), 칠성신앙, 미륵신앙’ 등 ‘신앙’의 대상으로 화하게 되었다. 선도전통이 약화되어 수련으로 스스로를 검증하지 못하니 형해화된 신앙의 형식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근대 이후 선도가 부활하는 과정에서 원형적 삼성 인식 또한 차츰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근대 이후에는 많은 선도계 민족종교들이 등장하였는데 삼성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가장 선명했던 대종교도 있지만 삼성의 기준이 선명하지 못하였던 경우도 많았다. 이때 삼성의 기준이 희미하였던 경우는 한결같이 선도에 여타 사상들을 회통하려는 성향이 강하였고 그 결과 선도적 기준이 분명치 못한 측면이 있었다.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등장한 선도수련단체들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하였다. 이즈음 고유의 선도를 표방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등장하였으나 삼성에 대한 기준이라는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편차가 있었다. 단학의 경우는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도 ‘삼성’에 대한 기준이 가장 철저한 편이었다. 단학이 보급되던 초창기, 선도가 무속·유사종교 정도로 인식되던 시대 분위기 하에서 삼성·단군 할 것 없이 공히 무속신, 우상 정도로 취급되고 있었다. 가령 1985년 서울시의 발의로 단군성전을 건립하려던 시도가 기독교세력의 ‘우상숭배론’에 밀려 중지되었던 사건은 당시의 삼성·단군 인식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을 강조하거나 삼성이 중심이 되는 ‘선도 祭天’을 거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단순히 심신수련법만을 보급하는 것이 세간의 논쟁을 피해갈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단학은 삼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삼성을 중심으로 한 선도 제천을 극히 중시하였다.

 단학의 삼성 강조는 단순한 삼성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단학은 한국선도를 종교 차원이 아닌 내적 수련의 차원으로 접근, 한국선도의 수련적 본령을 강조하였다. 이러하였으므로 단학의 삼성 인식또한 종교적 ‘신앙’의 차원이 아닌 ‘수련’의 차원이었다. ‘일기·삼기=삼성(선도 스승)=사람속의 일기·삼기’라는 한국선도의 원형적인 삼성 인식을 따른 것이었다.

 단학은 처음부터 한국선도의 중심에 ‘삼성’을 두었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초창기인 1987년 8월 25일 민족정신광복운동본부를 창설하고 ‘聖祖檀君崇奉國民大會’를 열어 단군을 ‘聖人’으로 선포하였는데, 이는 단군에 대한 ‘국조’ 차원의 인식을 넘어서 ‘일기·삼기=삼성(선도 스승)=사람속의 일기·삼기’로 조명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또 1998·99년 ‘통일기원 국조단군상 건립운동’은 단군의 ‘국조’로서의 위상 회복에 대한 당위성을 강력히 피력한 것이었다.

 단학의 삼성 강조는 ‘선도 제천’의 본령 회복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단학은 ‘선도 제천’을 단순한 종교의례가 아닌 수련의례로서 그 면모를 일신하였다. 한국선도의 대표적 의례인 제천은 대표적인 수련의례로서 고려시대까지 계속되다가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에 이르러 사라졌다.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선도의 등장 과정에서 제천이 강조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데, 이시기 등장한 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도 단학은 제천전통 부활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를 단순히 종교의례가 아닌 수련의례로서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단센타에서는 매달 제천수련이 정례적으로 행해졌으며 10월 개천절 행사를 위시하여 광복절 행사 이하 단학이 주관한 모든 주요 행사는 한결같이 제천수련제의 형식을 취하였다. 단학의 제천수련이 수련의례로서의 측면과 함께 모든 참가자들이 어우러진 흥겨운 축제 방식으로 치러진 것도 고대 이래 國中大會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단학은 초창기부터 삼성 및 제천을 수련적 차원에서 강조, 선도의 원형성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러한 면모는 2000년대 선도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이즈음 선도수련법이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세계에 널리 보급됨으로써 홍익인간·재세이화를 표방한 선도 실천운동으로서 지구인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지구인운동이 국학운동과 함께 병행되었다는 점이다. 선도 실천운동은 국내에서는 ‘국학운동’, 국외에서는 ‘지구인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국학운동’의 튼튼한 기초위에 ‘지구인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니 국학운동과 지구인운동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병행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2002년 지구인운동을 위한 지침서로서『힐링소사이어티』·『힐링소사이어티를 위한 12가지 선택』·『숨쉬는 평화학』이 나온 동시에 국학운동을 위한 지침서로서『한국인에게 고함』이 나왔다. 여기에서는 단학·신선도·선도 등의 용어 대신 ‘國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니 선도는 한국의 오랜 고유전통으로서 명실상부한 ‘국학’이라는 의미였고 이와 함께 ‘국학운동’도 시작되었다. 같은 해 국학운동을 주도해나갈 일선 창구로서 (사)국학원이 설립되었는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도 단위로 구성된 지역국학원 및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국학운동시민연합 등 유관 단체들과의 공조를 통해 국학운동을 주도해가고 있다. 국학원에서는 국학운동의 시작과 함께 ‘민족혼’ 수련 및 ‘효충도’ 수련을 개설, 국학운동의 촉매제로 삼았으니 선도수련과 선도 실천운동이 하나로 연동된 성통·공완의 전통을 여기에서도 확인해보게 된다.

 국학운동은 대체로 ‘국사(특히 상고사․고대사) 개정 및 국사교육 강화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먼저 2003년~2005년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저지하기 위한 국민운동으로서 ‘고구려역사 지킴이 활동’이 있었고 200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상고·고대사 관련 연대표 오류 시정을 위한 운동이 있었다. 2007년에는 제천단 등 전국각처의 선도 遺墟地에 천부경 비석을 건립하는 ‘천부경비 건립운동’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국학운동의 사상적 중심을 천명한 것이었다. 2008년에는 국학원 경내에 한민족역사공원이 설립, 박혁거세·고주몽·을지문덕·최치원·묘청·나철 등 역대 仙家들 및 독립운동가들의 동상이 설치되었고 또한 그 중심에 21미터(지상 33미터)에 달하는 한국사상 유래없는 초대형 단군상이 설치되었다. 한국선도의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등장한 많은 선가들을 제시하고 그 수위에 단군을 놓음으로서 단군에 씌워진 ‘종교’의 굴레를 벗겨내고 한국 상고·고대문화속의 대사제(‘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2009년에는 미국 세도나 명상센타 경내에 초대형 마고상이 건립되었다. 앞서 마고(마고할미·삼신할미·마고여신)가 한국선도 기학의 요체인 ‘일기·삼기’의 다른 표현이며 역사적으로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 三代 이전사와 관련된 개념임을 살펴 보았는데, 단학에서는 그 의미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오다가 드디어 마고상을 건립하였다. 이보다 앞선 시기인 2000년 미국 세도나 명상센타 경내에 한국민속촌이 건립되고 단군상이 설치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초대형 마고상까지 설치되었다. 단군상이나 마고상이 특히 선도 세계화의 중심지인 미국 세도나에 세워졌다는 점은 선도의 세계화가 국학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시금석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이중 단군상의 경우 한국의 국조로서의 이미지 때문에 국학운동을 넘어선 지구인운동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마고상의 경우는 ‘일기․삼기’를 상징하기에 국학을 넘어선 지구인운동의 상징물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것이 선도 세계화의 차원에서 마고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비록 많은 오해 속에서 마고상이 철거되기는 하였지만 마고상의 건립은 한국선도의 시원에 대한 새로운 천명이자 선도 세계화의 방향의 상징물로서 향후 한국선도의 향방을 가늠해보기에 충분한 일대 사건이었다. 2011년·2012년에는 상고․고대사 복원의 일환으로 단기연호 병기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이 전개되었고 2013년에는 같은 선상에서 역사교육 및 우리말 교육 강화, 단기연호 병기 등을 주장하는 ‘우리얼찾기 범국민서명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국학운동은 한결같이 국학 연구와 병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학, 곧 한국선도의 내용적 실체에 대한 학문적 기반 없는 국학운동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때문이다. 가장 먼저 선도에 따라다니던 종교적 이미지를 불식하고자 전통적인 ‘神敎, 仙敎’ 등의 용어와 차별화하며 더하여 중국도교와의 차별성까지도 드러내는 ‘한국선도’라는 개념이 제시되었다. 한국선도라는 개념이 제시된 이후 우선적으로 한국선도와 중국도교에 대한 비교 연구가 시작되었다. 삼국 이래 한국선도의 약화과정에서 한국선도는 중국도교와 뒤섞여 그 고유한 내용성이 흐려지게 되었다. 근대 이후 민족종교가 등장하고 또 1970년대말․1980년대초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선도와 중국도교의 경계는 매우 애매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도교와 차별화되는 한국선도의 내용적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하였으므로 한국선도의 위상 정립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중국도교와의 관계 정리가 필요하였다. 연구 결과 한국선도 기학의 실체인 ‘三元五行論’은 동아시아 상고사상의 원류로서 중국도교의 ‘陰陽五行論’을 끌어안고 있는 형태임이 밝혀졌고 더하여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된 수련법의 차이, 대사회적 실천론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도 밝혀졌다.

 이렇게 한국선도의 사상적 원형이 제시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한국사 방면의 연구가 시작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2010년부터 한국 상고·고대사를 선도문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天孫文化’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간의 연구 결과 동아시아 상고사의 수위에 놓인 紅山文化가 倍達古國 환웅시대의 문화이자 동아시아 상고 천손문화의 원형으로서 중국․일본 등지로 널리 전파되어갔음이 밝혀졌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학은 선도의 현대화나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도 선도의 원형에 극히 충실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러한 면모는 불가피하게 기독교측과의 마찰을 가져왔다. 기독교측에서는 단학을 단군신앙과 관련한 우상숭배집단으로 비방․공격하였는데, 이중에서도 1999년 설립된 단군상 360여기중 70여기가 기독교의 우상숭배론에 의해 훼손된 사건은 가장 처참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뇌교육이 초․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크게 활성화되자 학교 뇌교육 보급의 저지에 주력하였다. 기독교측의 공세는 단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유도하였던 측면이 있다. 가령 단학을 신종교, 또는 국수주의로 바라보거나 또는 근대에 재구성된 전통일 뿐으로 종교를 상품화한 것이라는 인식 등이 그러하다.

 단학의 성장 과정에서 민족사상과 가장 대척적인 지점에 놓여 있던 기독교측과의 갈등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으나 단학 창립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기독교세력과의 분쟁을 바라보면서, 기독교신학중 한국사회의 사상적 지반인 선도(풍류도․한사상) 전통 위에 기독교가 수용되어야 한다는 ‘풍류신학’이나 ‘한신학’의 전통에 주목해보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거시적 안목만이 불필요한 소모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사 전통에서 한국선도가 차지해온 역사적 비중과 역할, 또 ‘성통․공완(홍익인간․재세이화)’이라는 한국선도의 내용적 실체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반하여 단학을 이해할 때 ‘신종교 세력’, ‘근대에 재구성된 전통’, ‘국수주의’ 등의 평가가 극히 피상적인 평가임이 자명해진다.

 특히 기독교측을 위시한 많은 비판론자들의 비판의 핵심인 ‘삼성․단군에 대한 우상숭배나 일지선사에 대한 개인숭배’라는 비판의 경우도 한국선도의 일대 원칙인 ‘일기․삼기=삼성(선도 스승)=사람속의 일기․삼기’의 기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할 때 삼성․단군에 대한 숭배가 우상 숭배 행위가 아니라 수련자 내면의 일기․삼기 회복을 위한 자력수행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단계임을 이해하게 된다.

 일지선사에 대한 개인숭배라는 비판도 그러하다. 선도가 민속·무속·유사종교로 인식되던 시기에 등장한 단학의 성장 과정에서 설립자인 일지선사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양면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단학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평가는 더욱 양극화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일지선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많은 부분은 개인 숭배와 관련된 부분이다. 실제로 단학에서는 한국선도의 오랜 전통에 따라 수련 일반에서 ‘스승’으로서 일지선사를 최상위에 두는 관행을 따른다. 그러나 ‘일기․삼기=삼성(선도 스승)=사람속의 일기․삼기’의 기준에 의할 때 이러한 관행 역시 일차적으로는 선도의 스승 전통이라는 역사적 안목으로 바라보게 된다. 단학에 대한 평가의 출발점에 한국선도 전통에 대한 역사적, 내용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상에서 2000년대 이후 선도의 현대화․세계화 추세 속에서도 단학이 선도의 원형을 충실히 지켜갔음을 살펴 보았다. 선도 기학의 요체인 ‘일기·삼기’는 구체적인 한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는 상고·고대시기 ‘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서 ‘일기·삼기’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던 ‘삼성’으로 대변되어 왔기에 한국선도의 원형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삼성’으로 바라보게 된다. 단학은 선도가 민속·무속으로 오해받던 상황 속에서도 삼성이나 단군을 ‘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 조명하였고 더 나아가 제천의례의 수련의례로서의 진면모를 회복하였다. 2000년대에는 선도의 세계화에 기반한 선도 실천운동으로서 ‘지구인운동’과 함께 ‘국학운동’이 병행되었다. 국학운동은 ‘국사 개정 및 국사교육 강화운동’의 방식으로 드러났고 국학 연구와도 병행, 많은 성과를 내었다. 단학의 성장 과정에서 민족사상과 가장 대척적인 지점에 놓여 있던 기독교측과의 갈등이 예상되었는데 실제로 단학 창립 이후 기독교측은 단학을 지속적으로 비방‧공격, 단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단학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평가는 한국사 전통에서 한국선도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대한 역사적, 거시적 인식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가 6월 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제30회 국학원 정기 학술회의에서 선도(仙道)를 바르게 세운 '단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7. 맺음말

 본고는 광복 이후 한국선도의 변화 양상을 살피되, 특히 1970년대말․1980년대초 무렵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도의 대중화․현대화‧세계화 추세를 추동해가고 있는 ‘단학’ 계열을 중심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이르러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즈음 먼저 서구화된 동양명상법이 소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선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였고 선도수련법의 보급을 통해 선도가 크게 대중화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계열로 ‘단학’이 있다. 한국 근대의 선도가 대종교를 중심으로 민족종교의 형태를 취하였던 것과 달리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의 현대 선도는 선도수련법의 보급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흥한 특징이 있다. 근대 이후 선도가 민족종교의 방식으로 부활한 이래 선도는 민족정신, 또는 민족종교의 차원으로 이해되었을 뿐, 실상 선도의 본류라 할 수련법의 측면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수련법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으니, 한국선도의 본령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해 보게 된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단학이 선도전통을 현대화한 면모는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한국선도의 요체인 ‘仙道 氣學’을 현대화한 측면을 들 수 있다. 동아시아사의 원류이자 한국사의 원류이기도 한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선도 기학의 요체는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력으로서의 ‘一氣‧三氣’로서 삼국시대 이후 한국선도의 침체 과정에서 그 원의미가 잊혀지고 민속·무속 등 다양한 형태로의 곡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단학은 그 오랜 시대의 격간을 뛰어넘어 선도 기학의 원형을 회복, ‘일기‧삼기’의 의미를 되살려내었고 또 ‘일기‧삼기’의 움직임으로 생겨나는 현상 물질세계의 생성과 회귀 문제까지도 해명해내었다. 선도 기학의 현대적 복원으로 인해 한국선도는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선도 기학의 현대화는 당연히 선도 기학에 기반하고 있는 선도수련법의 현대화와 맞물리게 된다. 단학이 이루어낸 선도 기학의 현대화라는 성과가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해 선도 수련법이 현대화되었고 또 선도수련법의 현대화를 통해 선도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학은 새로워진 선도 기학에 바탕하여 선도수련법을 현대화해가기 시작하였는데 대체로 1980년대 하단전 중심, 1990년대 중단전 중심, 1990년대말 이후 상단전 중심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1990년대말 이후 상단전 중심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고전적 선도수련법을 ‘뇌교육’의 형태로 현대화하였다. 단학의 많은 수련법들이 고전적 선도수련법을 현대화한 형태이지만, 특히 뇌교육은 뇌가 강조되는 시대변화를 적극 수용한 바, 선도 현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0년대 선도수련법은 다시 ‘생명전자수련법’으로 변개되었다. 이는 앞서의 상단전 중심인 뇌교육 단계를 넘어선 총체적 수련법으로 선도수행의 요체인 ‘일기·삼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선도수련의 본령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낸 형태이며 특히 양자물리학과의 접목을 통해 선도수련법의 현대화를 시도하였다. 이처럼 단학은 선도수련법을 보급하되 시대변화를 적극 반영하면서 현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선도수련법의 원론에 충실하면서도 시대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선도수련법을 경신해나가는 유연성이 단학이 선도의 대중화를 주도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

 한국선도는 수련법의 현대화라는 성과에 기반하여 2000년대 무렵부터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세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뇌교육은 뇌과학을 선도해가고 있던 서구사회에서 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크게 주목되었고 2000년대말 무렵부터는 유엔에서의 활동을 통해 보급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2010년대부터는 새롭게 등장한 생명전자수련법이 뇌교육과 함께 선도 세계화의 매개가 되었다. 선도의 세계화는 ‘홍익인간․재세이화’라는 선도 실천운동을 위한 기반이 되었고 이에 2000년대초 ‘지구인운동’의 이름으로 선도 실천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선도 실천운동으로서의 ‘지구인운동’은 기존의 지구평화운동에 비해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철학, 수련법, 조직, 계획 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훨씬 선명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구인운동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1억 지구인 연대’의 결성을 1차 목표로 활발히 진행되어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선도의 현대화․세계화 추세 속에서도 단학은 선도의 원형을 충실히 지켜가는 모습을 보였다. 선도 기학의 요체인 ‘일기·삼기’는 구체적인 한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는 상고·고대시기 ‘대사제(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서 ‘일기·삼기’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던 ‘삼성’으로 대변되어 왔기에 한국선도의 원형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을 ‘삼성’으로 바라보게 된다. 단학은 선도가 민속·무속으로 오해받던 상황 속에서도 삼성이나 단군을 ‘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 조명하였고 또 제천의례의 수련의례로서의 진면모를 회복하였다. 2000년대에는 선도의 세계화에 기반한 선도 실천운동으로서 ‘지구인운동’과 함께 ‘국학운동’이 병행되었다. 국학운동은 ‘국사 개정 및 국사교육 강화운동’의 방식으로 드러났고 국학 연구와도 병행, 많은 성과를 내었다.

 단학의 성장 과정에서 민족사상과 가장 대척적인 지점에 놓여 있던 기독교측과의 갈등이 예상되었는데 실제로 단학 창립 이후 기독교측은 단학을 지속적으로 비방‧공격, 단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단학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평가는 한국사 전통에서 한국선도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대한 역사적, 거시적 인식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