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달에 한 번 내가 속해 있는 민족미래포럼에 나간다.  회원은 100명.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회원은 은퇴한 대학교수와 변호사들이었다. 외견상 사회적 커리어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인원이 100명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박사나 변호사나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없는 내가 소설가라는 자기소개만 가지고 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쉬운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작가인 내가 해온 일은 팔리지 않는 책을 몇 권 쓴 것뿐이었다.
 포럼은 수요일 19시에 열렸다. 수요일에 포럼 장에 가면 케케묵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민족이니 미래니 역사니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명상의 대가인 장 선생의 권유로 포럼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선생을 보면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저의 느낌이 잘못된 것인가요? 잘못되지 않았다면 포럼에 나오십시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한 느낌이라는 말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 때문이었다.
 “연령 제한은 없습니까?”
 나는 문자를 보냈다.
 “원로라는 말에는 70세부터라는 뜻이 있습니다.”
 문자가 왔다.
 이제 나는 막 70고개의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유 선생이 보기에, 생각이 자유스러운 내가 생각이 굳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포럼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에게나 내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듯싶었다. 
  세 번째 포럼이 있던 날 나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하여 세종문화회관에 있는 예인홀로 갔다. 50평 남짓한 크기의 방이었다. 앉아서 공부할 수 있게 긴 책상과 개인용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이 고정으로 포럼을 열기로 한 장소였다. 자리는 아무 데나 앉으면 되었다.
 나는 회원들과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아무나 보고 인사하지 않았다. 인사를 한다고 해서 가까워질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책상 위에 포럼에서 발간한 팸플릿과 책 1권이 놓여 있었다. 팸플릿의 주제문은 「불교의 화쟁사상과 북한과의 대화」였고, 책의 이름은 『변화』였다.
 발제자가 도착했으므로 곧 강연에 들어갔다. 강사는 대학교수를 하다가 퇴직한 분으로 불교의 화쟁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였다. 화쟁은 원효스님(617년 진평왕 39년 생)이 제창한 잡다한 불교이론의 통일론이었다.
 원효스님의 통일론은 회삼귀일會三歸一이었다. 불교의 삼교의三敎義인 대승大乘, 소승小乘, 삼장三臟을 일불승一佛乘에 회귀시키는 작업이 원효스님이 하고자 한 일이었다. 불교의 잡설이 만연했던 시대에 원효 스님은 불승론의 통일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로부터 1407년이나 세월이 흘렀고, 그 시대엔 접해 보지 못한 기독교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고, 민족종교를 대표하여 천도교가 세상에 알려진 시대가 되었다. 이 잡다한 종교로 뒤엉킨 세상을 원효스님의 화쟁으로 푼다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사상과 북한의 유일영도사상唯一領導思想을 화쟁을 통하여 통일론으로 결론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기독교계를 설득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 문제도 북한을 설득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변화』를 펼쳤다. 변화의 저자는 세계적인 명상가인 일지 선생이 써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었다. 나는 일지 선생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현대적이고도 반 기독교적인 신학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교에서 신학이론을 도출해 내고 싶어 하는 내게 그의 신학이론이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불교신자라면 알고 있는 사상이다. 천지를 물物이라는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천도교는 물아라는 말을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무교에서 신인神人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신인이란 ‘신 내림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아일체나 인내천은 내가 깨달아야 알 수 있는 세계이지만 신 내림은 깨닫고 싶어도 깨다를 수 없는 세계이다. 일방적으로 어떤 강력한 우주적인 에너지가 몸에 쳐들어와서 일정기간 동안 혹독하게 단련시킨다. 이점이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이 에너지의 침입에 걸려들기만 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불가사의 그 자체이다. 이와 유사한 체험이 여자들이 아기를 임신했을 때 받게 되는 입덧이라는 체험이다. 입덧은 새로운 생명체가 여자의 몸속에 들어왔음을 각성시켜 주는 체험이다.   

이러한 체험이 없이 신 내림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수련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선도수련자仙道修鍊者라 한다. 그들은 우주적 에너지를 느끼기 위하여 수련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호흡법이다. 호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주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본다. 이 상태에 도달하려면 호흡을 통하여 인간의 몸을 율려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이 방법을 터득하여 활용하였다. 그들이 몸을 율려의 상태로 만들어가기 위하여 발명한 것이 청동팔주령靑銅八珠鈴이라는 방울이었다. 


▲ (왼쪽)청동팔주령과 (오른쪽)상쇠방울. 무당이 신을 부르는 데에 쓰는 방울이다.

방울을 흔든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팔여의 음으로 불리는 어떤 파장의 상태로 만들려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팔여의 음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고가 팔여의 음에서 태어났을 때처럼 인간의 몸이 팔여의 음에 감응할 수 있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몸의 순수한 상태란 무엇인가? 우주의 에너지, 즉 기가 출입할 수 있는 상태로 몸을 단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주와 내가 하나의 생명체로 통일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주라는 생명체를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우주를 속이면 기가 흐트러짐으로 팔여의 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 감응자와 진짜 감응자가 여기에서 구분된다.
 진짜 감응자가 되려면 방법론이 필요하다. 내게는 이 방법론을 찾는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제가 되어 왔다.
 나는 문득 내 주머니에 청동방울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른 손을 웃옷의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나의 체온으로 따끈따끈해진 청동방울이 만져졌다. 청동방울은 진품이었다. 청록이 슬어 있었지만 나는 그 청록을 벗겨내지 않았다. 그대로 놔두고 싶었던 것이다. 내 손때와 내 손에서 나온 기름기와 땀이 청록을 닦아내게 되어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만 선을 그은 것처럼 청록이 끼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이 청동방울을 흔들어보고 싶어져 포럼장을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인가 감응이 와서 내 손끝이 떨려오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내게 자주 감응의 도구가 되어 준 것이 청동팔주령이었다.
 강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출입문은 포럼의 여직원이 지키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8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곧 포럼이 끝날 것이다. 그곳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주 낯선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명상에 들어갔을 때 어쩌다가 한번 느끼게 되었던 그러한 분위기였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의 건물 밖으로 나갔다. 분수대 앞에 가서 청동팔주령을 꺼내어 흔들었다. 내가 흔든 것이 아니라 청동팔주령이 내 손을 흔들게 한 것이다. 전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다.
혹시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이 남북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속으로 중얼거린 것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청동팔주령을 지금은 사라진 진한辰韓의 고토古土에 있는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명지에게서 받았다. 학교는 전교 학생이 20여 명에 불과했다. 내년엔 학교를 떠난 학생들이 읍내에 있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어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 그도 다른 학교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 그가 폐교 직전의 학교 진한중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한의 고토에 있는 그 학교에 자원해 갈 만큼 기이한 면을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삼한의 역사를 찾기 위하여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학계에 어엿하게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이 아닌 그저 순수한 아마추어 역사가에 불가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남이 보지 못하는 역사를 직관으로 찾아낼 줄 아는 이 시대 최고의 역사가였다. 말하자면 타고난 역사가였다. 나로서는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한 세계에 그가 살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나를 진한리로 불러내 이 청동팔주령을 건네주었다.
 “이 청동팔주령이 말이야...자네에게 필요해서 주는 것이야. 매장문화재이니까 당국자에게 들키는 일이 없도록 해. 들켰다간 감옥에 가야 할 거야.”
 “이런 무시무시한 물건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왜 나를 주는 거야?”
 “내가 자네에게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일까?”
 “그럼 주고 싶지 않은데 준다는 것이야?”
 나는 등줄기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는 더 깊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주는 거야?”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신이 내게 와서 자네에게 이 청동방울을 주라고 해서 주는 것이야. 알겠나?”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어떤 신?”
 “자네가 이 나라에서 무교지식과 이론에 대가이니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겠군.”
 “어떤 신이야?”
 “자네가 오매불망 만나고 싶어 하는 감응신령이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감응신령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그 말을 할 때까지 내게 무교에 대하여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기독교신자였다. 어영부영 교회에 나가기는 했지만 기독교신자가 틀림없었다.
 “자네가 감응신령을 입에 담다니 놀라운 일이야.”
 “놀랄 것 없어. 우리는 다 그분의 자손이 아닌가?”
 “하긴 그렇지.”
 “그분이 주시는 것이니까 받아.”
 나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감응신령은 단군왕검이고, 그분이 세상을 떠난 지도 4천년 이상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명지는 그가 하숙하는 집의 텃밭에서 채소를 심겠다고 밭을 파다가 청동팔주령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간밤에 단군왕검을 꿈에 보고서 그 청동팔주령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때 그는 무의식중에 감응주술感應呪術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감응이 된 것 같아서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단군왕검을 꿈에 보고 신이 내린 사람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었다.
  “안 받을 거야?”
 내가 머뭇거리자 이명지가 재촉했다.
 나는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내게 청동팔주령을 떠맡겼다. 그는 마치 그것을 내게 넘겨주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네는 역사에 남을 애국자가 될 거야. 그러니 앞으로 몸 조심해. 알았나?”
 그가 기분 나쁘게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몸조심 하라니?”
 “반골기질은 죽이고 사랑스러운 여자 대통령을 사랑해 보란 말이야.”
 나는 그가 왜 기분 나쁘게 웃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감응신령이 그런 지시를 내렸을 리가 없겠지.”
 “무슨 말이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어쩐지 진정성이 없는 말처럼 들리네.”
 “감은신령 앞에서 맹세하건데 진정성이 있는 말이야.”
 “일개 국민으로서 면식조차 없는 그 분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바치라고?”
 나는 투덜거리고 있었다.
 여자를 사랑하는 일 따위엔 신물이 났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이란 말인가!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권력자에게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을 나도 원치 않지만 말이야, 감응신령께서 내게 이 청동팔주령을 주면서 그분 앞에서 광대노릇이라도 하라니 낸들 어쩌겠어. 역사가 낸 인물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야.”
 이명지는 내가 쓰는 칼럼에 대하여 한 말씀 한 것이었다.
 “감응신령의 지시가 맞아?”
 “그렇다니까. 내가 헛소리나 할 위인은 아니지 않아.”
 “자네도 광대가 될 것인가?”
 “어쩔 수 없지 않아? 나는 지금 심각해.”
 “무엇이 심각해?”
 “단군왕검 바이러스가 내 몸을 파먹어대고 있어.”
 그가 울상을 지으며 말하였다.
 “홍익인간사상이야?”
 “아니.”
 “그럼 뭐야?”
 “신병.”
 “무당이 되는 병?”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단군왕검의 첩자로 등극한 그를 위하여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알았어. 속이 뒤틀리기는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주머니에는 언제나 청동팔주령이 들어 있었다.
 “분실하거나 도둑맞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 가끔 감응주술을 외우면 신장들이 나타나서 청동팔주령을 지켜 줄 거야.”
 헤어질 때 그가 그런 말을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청동팔주령은 내게 여덟 개의 절대파장絶對波長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절대파장은 내 육신에게 나의 영혼인 쿼크가 보내는 파장으로 느껴졌다.
 ...............
 “실은 제가 거리검 선생을 관찰해 왔는데 요즈음 선생이 수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 선생이 내게 말했다.
 “무엇을 눈치 채셨습니까?”
 “챘습니다. 제가 조각가라는 것을 선생도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요.”
 “저의 날카로운 손에 선생에게서 이상한 파장이 나와 잡힙니다. 간지러워 죽겠어요.”
 “간지럽다고요?”
 나는 펄쩍 뛸 만큼 놀랐다.
 나는 그가 청동팔주령의 존재를 파악했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간지러울까요?”
 “글쎄요... 제게 어떤 이미지가 잡히는데 여자의 이미지입니다. 여자와 관련이 있는 물건 같습니다. 혹시 여자의 화장품인가요?”
 하마터면 나는 땅바닥에 구를 뻔하였다.
 나는 유 선생을 속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실직고 하세요. 혼자만 아시지 말고 제게도 나누어 주세요. 우리 공범자가 됩시다.”
 “그렇게 하지요.”
 나는 청동팔주령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건 골동품이군요.”
 “만져보시겠어요? 느낌이 다를 겁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거예요.”
 유 선생이 조심스럽게 청동팔주령을 받았다. 
 “과연 놀랍습니다. 파장이...”
 유 선생이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유 선생처럼 특별한 분 이외에는...”
 “저도 한번 흔들어 볼까요?”
 “그렇게 하세요.”
 포럼이 끝나서 참석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1시간짜리 포럼이라 빨리 끝난 것이었다.
 유 선생이 청동팔령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흔들었다. 그는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흔들었다. 짧은 파장들이 연속적으로 울려 펴졌다. 
 “소리가 신묘합니다.”
 유 선생이 감탄하였다.
 “팔여의 음을 내는 방울입니다.”
 “이런 구할 수 없는 보물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신이 주었다고 해야 하겠지요.”
 “신이요?”
 “제게 신처럼 보이고 신처럼 행동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씌운 올가미입니다.”
 “하! 올가미라!”
 그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청동기시대에 샤먼이 신과 교통하기 위하여 만든 방울입니다.”
 “놀라운 일이군요. 미개한 그 시대에 이러한 걸작을 만들었다니!”
 “저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문명을 고도로 발달시킨 우주인이 와서 선물로 주고 갔을 수 있었다.
 유 선생은 내게 청동팔주령을 돌려주었다.
 나는 남쪽을 향하여 청동팔주령을 흔들었다. 짧은 파장들이 남쪽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곧 융풍融風이 일어날 것입니다. 융풍을 일으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융풍은 한인천제를 청배할 때 일으키는 바람이었다. 한인천제는 샤먼이 모셔 들이는 삼성대왕三聖大王 중에서 첫 번째 분이다.
 “한인천제를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한인천제를 모시려면 「삼성대왕 고풀이」라는 사설을 읊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십니다.”
 “무슨 말씀인지...”
 나는 삼성대왕을 모시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기로 하였다.

▲ 팔려八呂의 음音에서 발생하는 팔풍八風. 팔풍 중에서 서풍인 영등풍瀛登風(마고대신 바람), 동풍인 명서풍明庶風(한웅천왕 바람), 또 동풍인 청풍淸風(단군왕검 바람), 남풍인 융풍融風(한인천제 바람)이 팔풍에서 나오는 바람이다. 무당은 이 들 바람을 일으켜 신들을 불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