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후원하고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가  진행하는 6번째 현장체험이 24일 진행되었다. 이번 방문 현장은 지난달 진행한 한양 도성 인왕산 구간에 이어 낙산구간이다. 한성대역에서 출발한 70여 명 아이들과 부모님이 혜화문에서  일정을 공유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흥인지문과 숙정문 사이에 있는 4소문 중 하나인 혜화문은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차 길을 만들면서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제 우리 아이들은 혜화문 앞에 있는 지도를 보며 한양도성의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의 위치와 확인하고 오늘 거닐 구간을 확인했다.  근처에 있는 정자에서 땀을 식히며 한양도성의 대략적인 역사를 듣는다. 한양의 내사산이 백악, 인왕, 남산, 낙산임은 이제 척척 대답한다.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힘과 기개를 느낄 수 있는 화강암 산인 반면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은 아담하고 자연풍광이 뛰어나 한양의 5대 경승지중 하나로 꼽히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가까워 많은 조정의 관원들이 집을 짓고 살았으며 문인들이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낙타의 등을 닮아 낙타산이라고도 했고 궁궐에 우유를 보급하는 유우소가 있어 우유의 옛 이름인 '타락'을 넣어 타락산이라고도 하였다. 산세가 낮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두 가지 지혜를 내었다. 산세가 주욱 뻗으라고 동쪽대문의 이름에 갈지(之)자를 넣어 흥인지문이라 짓고 그 문에 옹성구조를 더하여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지도를 보며 답사할 구간을 확인한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한양 도성은 총 18.6km에 달하며 그 가운데 70%가 복원되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그랬던 조선시대의 낙산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빈민촌이 생겨났고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밀려드는 피난민에 의해 판잣집이 생겼다. 서울시에서는 최근 도시개발사업과 성곽보수사업을 하며 낙산 주변을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하였으나 주민투표에 의해 유지, 보수하기로 결정 내렸다. 그리하여 좁은 골목길이 깨끗해지고 벽화가 그려져 있는 현재의 아기자기하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서울의 관광명소로 탈바꿈하였다. 주말이면 특정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20여명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 조선 태조는 '도성축조도감'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내사산을 연결하여 어떻게 성곽을 쌓을지를 계획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농한기에 전국에서 한양 인구보다 많은 12만 명을 동원하였다 한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있는 혜화문을 통과하여 낙산 성곽 길에 올랐다. 일제 강점기에 성곽을 허물고 전차를 놓았고 지금은 도로가 된 관계로 건너편의 성곽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사거리의 건널목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낙산성곽 길은 태조 이후 크게 3번의 보수공사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세종, 숙종, 순조 때의 축조 특징을 알아본 후 시기를 맞추어 본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조선시대에는 어떤 놀이 문화가 있었을까? 한양도성외곽을 돌며 자연을 즐기고 소원을 비는 순성놀이가 있었다 한다. 우리도 오늘 예쁜 성곽을 오른쪽에 끼고 순성놀이 한번 해볼까나?
성곽을 오르며 태조 때 만들어진 후 3번의 보수를 거친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각 시기의 특징을 알아보며 추측해보기 게임을 하면서. 태조 때는 자연석의 거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비교적 작은 돌들이 쌓여있고 세종 때는 아래 부분은 직사각형의 큰 돌들이 있고 위로 갈수록 점점 크기가 작은 돌들이 쌓여있으며 옆에서 볼 때 약간 볼록하다. 숙종 때는 정방형(정사각형)의 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옆면도 더 평평해졌다. 순조 때에 이르면 칼로 자른 듯이 더 반듯한 장방형의 돌들이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아져 있다. 2-4미터 간격으로 달라지는 축조 시대를 맞추며 오르다보니 낙산공원으로 들어가는 암문에 다다랐다.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멀리 북한산과 아차산이 보인다. 600년 전엔 외곽이었을 그곳까지 넓어진 한양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땀도 식힐 겸 암문에 등을 대고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암문은 8개의 정식문외에 성곽에 만든 통로로서 평상시에는 돌로 막아놓았다가 비상시 사용했다 한다.

▲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잎을 보며 걸을 땐 몰랐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번에는 낙산공원의 정상에서 서해쪽을 바라본다. 오른쪽 아래 초록의 섬, 창덕궁과 창경궁이 보인다. 왼쪽에는 남산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한양을 내려다보며 맞는 낙조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요즘도 낙산에서 낙조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음이 감사하다.

▲ 낙산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이 곳은 단종이 폐위된 후 궁에서 쫓겨난 순정왕후가 천을 염색하여 생계를 이어갔다는 자지동천, 이수광이 검소한 외조부 집을 손질하여 그 정신을 기리며 '겨우 비만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지은 '비우당' 이야기가 전한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우리는 흥인지문을 향하여 왼쪽에 성곽을 끼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귀여운 벽화가 있는 집들도 보며 어느덧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다다랐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간단한 레크레이션과 문제풀기를 진행하였다.

▲ 맛있는 점심 후 재미있는 오락 시간과 오늘 배운 내용들을 퀴즈로 맞춰 보고 느낀 점을 발표하는 시간을 보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임시 개관한 한양도성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옛 도성 안 풍경 민화, 8개문들과 성문 앞 풍경의 옛 흑백사진, 한양도성의 사계가 들어 있는 멋진 영상물을 보았다. 지금은 그 터도 남아있지 않는 돈의문의 현판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도성 축조 시 97구간으로 나누어 공사하였다 한다. 태조와 세종 때는 돌에 그 담당 군현을 그 이후에는 돌에 책임자와 감독관, 날짜까지 새겨 넣었다는 각자성돌을 이곳에서 탁본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 헤어지는 아쉬움을 마지막 단체사진으로 담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 행사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문화재를 알아가고 알아 갈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오늘도 체험을 통해 친해진 친구들, 부모님, 강사들과 작별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