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초에 성인의 나라 군자의 나라 백민의 나라에 살았다. 착하고 착한 민족이었다. 백민이라 불렀던 것은 비단 흰옷을 좋아해서 백민이 아니었다. 마음이 고왔다고 해서 백의민족이었다. 최남선은 한민족의 특징을 백색을 숭상하는 백민白民이라 하였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남들이 그렇게 불러 준 것이다. 우리를 백민이라 한 사람들은 바로 중국인이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이라 하였다. 군자란 선비란 뜻이다. 그 성품이 어질고 평화를 사랑하고 자리를 양보하고 자리다툼을 하지 않는(互讓不爭) 순진한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동이족은 그 영토가 광대하여도 교만하지 않았고 병력이 막강하여도 이웃 나라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았다. 나라의 풍속이 순박하고 관대하고 후덕하여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서로 길을 양보하고 좋은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남녀가 각기 다른 곳에 거처하며 서로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으니 가히 동방은 예의가 바른 군자의 나라이다.

그래서 공자가 배를 타고 동방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영어로 웰빙(Well Being)이란 말은 잘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으로 잘 산다 건강하게 산다는 뜻이지 정신적으로 잘 산다는 뜻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잘 살아도 정신적으로 나쁘다면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웰빙이란 나쁘게 말해서 건강 의약을 사서 먹으란 광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물질적으로는 풍요해도 정신적으로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나쁜 이웃을 만나지 않고 편하게 산다는 뜻이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말하지 혼자서 잘 산다는 뜻이 아니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사(南史)에 보면 백만매택百萬買宅 천만매린千萬買隣이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하면서 여생을 편히 살 집을 보러 다녔다는데 처음 백만금을 주고 집을 샀다. 그러나 여승진(呂僧珍)이란 사람이 이웃이 되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천백만금을 주고 그 이웃에 이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집이 좋다 해도 이웃 좋은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웃에 초상이 나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늙은이들은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직접 이웃과 따스한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셨다. 학교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인성교육을 받은 행운을 얻은 것이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보면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서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는 백의민족의 후손인 것이다.

그런데 2014년 5월 16일 이후에는 아무도 한국인의 미덕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400명이나 되는 손님 그것도 어린 학생들을 태우고 선장 이하 선원들이 먼저 탈출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우리가 옛날 군자의 나라로 일본과 중국에 진眞․선善․미美․신信․의義 등 오덕을 가르쳤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너무 뻔뻔한 말이 아닌가.

우리는 더 이상 윤리와 도덕으로 선진국이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 선인에서 악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모르고 살아 온 것이다. 

매일 매일 신문 사회면에 악인들이 등장하는 것을 그냥 보면서도 여객선 세월호의 참사까지 일으키는 사람으로 변한 것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알고 보니 한국인의 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악인으로 변한 것일까. 아니 악인의 탈을 쓰고 이웃을 괴롭힌 것일까. 한국인은 반성하라고 처음 소리 지른 사람은 심리학자 윤태림尹泰林 교수였다. 그는 8.15 광복과 6․25동란을 겪는 동안 한국인이 악인으로 변한 사실을 발견하고『한국인의 성격』이란 책을 썼다.

거기서 그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불안>이 들어있다고 말하면서 그 불안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교가 가르친 가부장제도에서 오는 억압, 역대왕조를 통하여 내려오는 경제적인 착취와 수탈, 특권계급의 정치적인 압박 그리고 전쟁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이 겹치고 겹쳐 한국인의 <불안>이 양성되었다.

이렇게 지난날의 유교적인 사회 경제 정치적 모순에 더해서 이승만의 독재정치 민중의 경제적 빈곤 그리고 권위주의의 압박과 복종의 강요가 민중을 총체적으로 불안하게 하고 자발적인 의욕을 꺾고 말았다.

윤태림 교수는 인간을 환경의 노예로 생각하여 인간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렸다.

물론 한국인의 불안 심리를 발견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필자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8.15광복과 6․25동란으로 갑자기 악화된 심성을 피난 도시 부산의 공설운동장 뒷 편 판잣 집 대학에서 터득했던 것이다.

그 시절의 불안을 생각하면 윤 교수가 말씀하신 그  <불안>을 알고도 남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 않는가.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시대라 하지 않는가.

특히 경제적으로는 6.25 동란 그 시절에 비하면 천당에 산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사절유택四節遊宅의 번영을 생각하면서 반성하여야 한다. 그 때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별장을 가지고 호강하던 부자가 있었다. 모두가 기와집에서 숯을 때어 장작으로 밥을 짓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 잘 사는 집이 서울에서 몇 집이었나 하면 35집밖에 없었다. 소수의 마피아들만 잘 사는 나라가 신라였던 것이다. 그러니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한 것이다. “머리와 꼬리 즉 수미가 편편하여야 하느니라“고 가르친 단군의 말씀을 신라는 잊어버린 것이다.

신라를 지켜주던 화랑들이 직업을 잃고 노숙자가 되는 것을 모르고 사계절을 별장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의 옛 땅을 못 찾게 되었으니 신라는 허울 좋은 개살구 즉 반변적(半邊的) 통일에 만족해야 했고 모든 무기를 불에 넣어 농구로 바꾸라는 당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안보 불감증의 나라로 변하고 말았다.

자아! 이제 우리나라 걱정을 하기로 하자. 우리는 한동안 참으로 잠깐 동안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1997년 12월의 국가부도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 앞날이 캄캄한 시대에 살게 되었다.

거리에 노숙자와 실업자 정부와 기업의 요직에 마피아들만 득실거린다고 하니 이걸 번영이요 발전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 잘 사는 나라라 할 수 있는가. 국회에는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당리당략만 내세워 그것을 국익이라 주장하니 조선시대 영조임금이 군자의 나라였던 우리나라가 소인의 나라가 되었다고 개탄한 것을 잊었는가.

영조의 탕평비蕩平碑를 성균관대학 입구에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옮겨야 한다. 영조는 군자의 마음을 공심公心이라 하고 소인의 마음을 사의私意라 했다.

공심으로 나라를 다스려야지 사의를 가지고 정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조선이 오로지 사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으니 조선은 이미 200년 전에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우리가 모두 사의 즉 개인주의를 버리고 공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을 군자의 나라로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