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실은 매년 11월 23일, 천황이 직접 한신(韓神)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이 사실은 필자가 지난 2002년 7월 11일과 2013년 4월 21일에 직접 도쿄 천황궁 안의 제사 음악당인 <아악당>에 직접 들어가서 제사 음악 실연을 3시간 동안 관람함으로써 두 번에 걸쳐 확인했다.

한신(韓神) 축문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어신악](御神樂, 일본왕실 제사 음악, 왕실 제사 때의 ‘축문’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 축문은 말이 아닌 노래로써 부름, 저자주) 고문헌 구와지마가본(鍋島家本)에 쓰여 있는 것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韓神(本) 見志萬由不 加太仁止利加介 和禮可良加見波 加良乎支世武也 加良乎支 加良乎支世牟也 (末)也比良天乎 天耳止利毛知天 和禮加良加見毛 加良乎支世武哉 加良乎支 加良乎支世牟也 (本方) 於介 阿知女 於於於於 (末方) 於介.

이상을 참고삼아 필자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신(本, 본축문의 노래) 미시마무명(三島木綿) 어깨에다 걸치고 우리 한국의 신(韓神)을 뫼셔 오노라. 한(韓)을 뫼셔 한(韓)을 뫼셔 오노라. 말(末, 축문의 끝노래) 팔엽반(八葉盤)을랑 손에다 쥐어 잡고 우리 한국의 신(韓神)도 한(韓)을 뫼셔 오노라 한(韓)을 뫼셔 한을 뫼셔 오노라 본방(本方) : 오게 아지메(阿知女) 오오오오 말방(末方) : 오게(“오게 아지메(阿知女) 오오오오 오게”라는 축문은 ‘신라어’(경상도말, 신분이 높은 아주머님)가 아닌가 한다. 저자주)

여기서 ‘가라오기’(加良乎支)는 ‘한초’(韓招ぎ, 한〈韓〉을 모신다, 저자주)가 올바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 때마다 지적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미 한(韓)을 모신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되고 있다. ‘한초’(韓招ぎ)야말로 조선천신(朝鮮天神)인 한신(韓神)을 제사에 모시는 왕실 제사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최초의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설(모토오리 노리나가는 현대의 오리구치 시노부에 앞서서 이미 에도시대에 한국을 몹시 비하하는 주장을 했던 황국신도 국수주의자, 저자주)이었던 ‘가라오기’(枯荻)보다는 가모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스승)가 주장한 ‘가라오기’(韓優)라는 생각 쪽이 보다 타당했다.

어째서 [한신](韓神)을 ‘한초’(韓招ぎ, 한을 모신다, 필자주)하는 데 있어서, 미시마무명(見志萬由不, 三島木綿)을 제사의 주포(呪布)로서 “어깨에다 걸친다”는 것을 반드시 노래하는가.

그 점이 진작부터 마음에 걸렸다. 그것을 ‘하타’(바다, 필자주)라고 이해하게 된 것은 [이요국풍토기](伊豫國風土記, 서기 713년 겐메이여왕의 명으로 각 지역에서 편찬되기 시작한 고대 각 지방 역사 기록이며, 이요국은 지금의 에히메현, 저자 주)의 일문(逸文)을 무심하게 거듭하여 읽던 때의 일이다.

이 일문은 내가 학생 때부터 읽고 있었으나 문제의식 없이 읽는 경우에는 참뜻을 모르고 그냥 멍청하게 지나쳐 버리고 말기 마련이다.

그 일문에 보면, “고치군 미시마(乎知郡御嶋)에 계신 신(神)의 어명(御名)은 오야마쓰미노카미(大山積神)이며 일명(一名) 와타시대신(和多志大神, 화다지대신)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음 같은 기사였다.

[是神者所顯難波高津宮御宇天皇世, 此神自百濟國度來坐, 而津國御嶋坐](이 신께서는 난바의 다카쓰궁에 계신 천황의 시대에 나타나심. 이 신께서는 백제국으로부터 건너오셔서 이요국의 미시마에 계심). 

본 왕실 제사 문서 [연희식](927)에 보면 그 신은 본래부터 백제국으로부터 도래](百濟國度〈渡〉來)했던 신(神)임을 알 수 있다.

글 속에서 말하고 있는 [난바다카쓰궁어우천황](難波高津宮御宇天皇)이란 바로 닌토쿠천황(仁德天皇)이며 [어우](御宇)라는 글자는 다이호(大寶) 원년(서기 701년)의 법령인 다이호령(大寶令) 반포 이후에 등장했으며 [천황](天皇)이라는 용어도 7세기 중엽 이후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천황의 호칭은 661년부터 사용했다는 것이 통설이며, 그 이전에는 왕 또는 대왕의 칭호를 썼다고 한다, 저자 주)이므로 백제신이 도래했다고 하는 시기가 과연 닌토쿠천황시대의 [소현](所顯, 나타나심)인지 여부는 검토할 사항이다.

그러나 셋쓰(攝津, 고대 오사카)의 미시마(御嶋, 三島)의 신(神)이며 이요(伊豫)의 미시마(御嶋, 三島)의 신(神)은 백제로부터 건너온 도래신(渡來神)이었다는 사실만은 [이요국풍토기](伊豫國風土記) 일문에 의하여 찰지(察知)된다고 본다.

[백제국으로부터 건너오셔서](自百濟國度來)에 대하여 [대일본사](大日本史, 총 402권. 소위 미도학파인 황국신도가들이 1657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06년까지 250년간 써낸 국수적인 편년체 일본 역사책, 필자주)며 [특선신명장](特選神名帳)에서처럼, [상고시대에 야만적인 외국에 건너가](上古外蕃渡り, 일본 국수주의 황국신도가들은 신라며 백제, 고구려 등 고대의 선진국이었던 한반도 삼국 등을 도리어 야만국가〈蕃國〉라고 터무니없이 모멸했다, 필자주), [닌토쿠천황의 어세에(백제로부터) 돌아오다] 등으로 견강부회한 것은 일본 중심 사고의 병폐이며 또한 근세의 해석처럼 [소현](所顯)을 [한국을 치려고 출정(出征)했을 때, 이 신이 나타나서(일본의) 항해신(航海神)으로서 신덕(神德)을 발휘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또한 거기다 [백제국으로부터 건너오셔서](自百濟國度來)를 [한국으로부터 돌아오셔서]라고 풀이하여 [백제를 본국으로 하여 일본 조정으로 건너왔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고 단언한 것은 망론(妄論)이다.

이상과 같은 역사 기사는 일본 왕실에서 10세기 초에 편찬한 [연희식 권1, 신기, 서기 927년 일본 왕실 성립](延喜式 卷一 [神祇])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 등 한일 두 나라 학자들이 [단군개국 역사 일본개국신화의 모태(母胎)]라는 주제로 ‘제1회 한일천손문화 학술대회’가 거행된 당시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대표적인 언론 매체는 이날의 학술강연 내용을 각기 대대적으로 각기 신문의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그 표제는 “일본 학자가 단군 개국신화가 모체가 되어 일본 개국신화가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고 놀래며 보도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일본 네티즌들의 빗발치는 비난이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와 필자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일본 천황은 “단군(檀君)에 죽도록 미쳐 버려서 존경하여, 단군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히로히토(ヒロヒト, 일본 천황)는 조선에서 단군 서적을 훔쳐 왔다. 너희는 한반도의 노예이다”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대일본사]는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으로서 황위(皇位)는 신대(神代)의 신들(神)과 연결되며 천조대신의 신칙(神勅)에 의하여 정해졌고, 그 표시로써 신기(神器)를 주었다”는 것을 이 책은 중시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07년 10월 말 오야마쓰미노카미(大山積神), 일명 와다시노오카미(和多志大神, 이하 화다지대신)라고 불리는 일본 속 백제신을 신주를 모신 오사카의 ‘미시마카모’(三島鴨)신사를 찾았다. 선조 대대로 이곳에서 제사를 모셔왔다는 마쓰이 나리후사(松井位幾) 궁사는 저자에게 “미시마카모신사는 백제에서 닌토쿠(仁德)천황 어대 때, 일본 왕실로 건너오신 백제대신(大神) 오야마쓰미노카미 신주를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백제신이 일본 왕실로 건너온 시기는 약 1600년 전인 5세기 초였다.

마쓰이 나리후사(松井位幾) 궁사두 필자에게 말하기를 “한신(韓神)은 어김없는 한반도의 천신이다”고 했다.  ‘(韓)을 모셔온다’  뜻의 한(韓)은 여신인 아지메(阿知女)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 경우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신(熊女神)을 그 옛날 신라어(경상도 말)로 ‘아지메’로 호칭한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일본서기]의 스이닌(垂仁, 3세기경)천황 당시의 역사 기사에서 ‘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이 곰신단(熊の神籬, 구마노 히모로기)을 가지고 신라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왔다’  하는 기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데, 에도시대(1607∼1867년)의 저명한 고증학자 도 데이칸(藤 貞幹, 1732∼1797년)은 곰신단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곰신단(구마노 히모로기)의 히모로기(ひもろぎ)는 신라어다.” 즉 ‘히모로기’는 제사 모시는 신단이라는 신라어(경상도 말)라고 단정했다.

일본 천황가의 제사 담당관인 아베 스에마사(安倍季昌) 천황궁 제사 담당 악장(樂長)은 “아지메(阿知女)는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킨다고 본다”고 저자에게 직접 말했다. 또한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아지메(阿知女)의 세 글자는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게 드리는 제사에 의해서 하늘은 오래고 땅은 영원하며 그 속에서 사람을 편안하게 살게 되도록 큰절을 올리고 기도드리는 의식에서 축의(祝儀)를 제사 노래로서 부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아지메는 놀랍게도 곧 우리 민족의 [천부경]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 地一二, 人一三。一積十矩。無化三。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運三四, 成環五, 七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本心, 本太陽, 明人中。天地一一, 終無終一。」의 본뜻이 아니런가.

일지 이승헌 박사는 오랜 연구 과정에서 일찍이 “[천부경]은 곧 하늘 땅 사람(天·地·人)에 대한 한민족 고유의 철학의 뿌리를 담고 있다”고 해설한 바 있다.

한민족 고유 철학의 뿌리 [천부경] 정신 담긴 것이 일본 왕실 천신제사 축문(神樂歌, かぐらうた)의 ‘한신’(韓神)과 ‘한’(韓)에 대해서 제사 축문 연구의 권위인 우스다 진코로(臼田甚五郞)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韓)을 뫼셔온다는 제사 양식은 한국식(韓風)이다. 신 내리기의 신물(神物)잡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신성한 무녀(巫女, 일반적인 무당이 아니라 고대 왕실의 왕녀 등을 가리킴-저자주)가 신(神)을 향응하는 이미지다. 이 신악가(神樂歌)의 위치에서 고찰해 보자. 신의 잔치도 신주(神酒)를 권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터주신(地主神)인 한신(韓神)이 새로이 찾아오는 신인 천황(天皇) 및 천황가(天皇家)에 대해서 귀순(歸順) 접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상정된다.”

즉 우스다 진코로 교수는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천황)이 된 한국인들이 새로 건너온 한국인들을 맞이하는 일로 추정했다.

일본의 국가가 통일된 것은 16세기 종반의 일이므로 그동안 오래도록 한반도에서 건너간 둘 이상의 왕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즉 신라와 백제 두 국가로부터의 도래계 지배자들이다. 오늘날 아지메(阿知女)에 대하여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최고위 무녀(巫女)로 본다”고 저자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단군 모친 웅녀(熊女)를 제정일치(祭政一致) 상고 역사시대의 왕실에서 천신 제사를 모시는 주도자로서의 무녀였을 가능성도 짚어보게 된다.

비근한 예로 일본 왕실 이세신궁에서 대상제 날 대상제 제사 의식에서 등극하던 아키히토 천황의 친누이 이케다 아쓰코 씨가 왕실 제사복장을 하고 제사를 주도하는 무녀 역할인 재녀(齋女)로 등장했던 사실을 예로 삼고도 싶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국학과 석좌교수, 일본센슈대학 국문학과 문학박사, 한일천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