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와 건축가가 머리를 짜고 짜내어 지은 건물.  건물을 두고 시시비비가 없었던 적은 없다. 왕조 시대 화려한 궁궐 조영은 왕이 사치를 일삼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선 시대 광해군이 쫓겨난 이유 중에는 10년 넘게 토목 공사를 하여 두 궁궐을 창건한 것도 포함된다. 시대마다 건축을 보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어긋나면 비판의 대상이 되고 그 기준에 합당하면 찬사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 시대는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 우리가 좋은 건축이라고 판단을 내릴 때 그 기준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도시를 연구하는 건축가 이경훈 교수는 도시 건축을 바라보는 눈으로 '공화(共和)'를 제시한다. 2011년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이후 이번에 펴낸 두 번째 책 『못된 건축』(푸른숲 발간)에서 도시의 건축을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하고 그 독해법을 알려준다. '공화'라니, '민주공화국'할 때 그 공화? 그렇다.

▲ 이경훈 교수 저 '못된 건축'. <사진=푸른숲>

 "공화란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사회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이 조금씩 양보하면 '공공의 선'이 생겨나고, 그 혜택으로 개인은 훨씬 큰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즉 행복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간단한 수학 논리다."

도시는 공화의 개념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장소다. 사람이나 자전거나 건축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그 혜택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양보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서구 개념을 가져다고 건축을 들여다 보자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건축이 얼마나 주위와 조화를 이루는지로 좋은 건축 나쁜 건축을 설명해보자는 뜻일게다. 건축 자체는 다 좋다. 주위와 조화, 공화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 나쁜 건축이 된다.  

 저자는 그런 시각에 서서 보면 서울을 살리는 건물로 동대문대자인플라자(DDP)와 동십자각 앞의 트윈트리타워를 내세운다. 이런 주장은 건축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건물은 랜드마크와 흉물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경복궁을 갈 때마다 눈에 띄는 트윈트리타워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터라 저자의 설명이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인 이경훈 교수는 총사업비 4,840억 원이 들어간 DDP 프로젝트의 자문 역을 맡은 DDP 전문위원이다. 설계 공모 기획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DDP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함께하고 있는 숨은 주역이다. DDP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DDP가 왜 서울에 꼭 필요한 '착한 건축'인지 조목조목 밝힌다.

▲ 트윈트리타워. 트윈트리타워는 도시의 다양한 자산을 최대로 활용하기위해 어떻게 몸을 낮춰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건축'이다. <사진=푸른숲>

공화, 주변의 맥락과 땅의 쓰임과 형태에 대한 고려, 즉 도시의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보면 못된 건축과 착한 건축이 쉽게 판가름 난다. 저자는 DDP가 도시적으로 착한 건축이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도시적 건축의 제 1조건인 대지의 활용 측면에서 설명한다. 동대문 주변의 그 어떤 건물보다 건물이 놓일 땅, 즉 도심 대지를 잘 이해하고 가장 적극적인 도시적 건축의 태도로 지은 건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상식과 인식의 전복이 일어난다.  우리는 보통 건축을 평가할 때 건물 자체만을 놓고 평가한다.

'주변과의 조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축물'로 낙인찍힌 DDP는 사실 대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통해 그 장소에 최적화된 조형으로 탄생했다. 땅 모양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네모 형태의 깍두기 건물을 짓고 그 앞에 공원을 만드는 것과는 태도가 기존 서울의 건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도시의 자산인 성벽을 존중하고 이를 부각시키려는 노력, 가로와 성벽에 의해 만들어진 불규칙한 대지의 경계선을 역사의 산물로 보고 이를 형태의 중요한 모티프로 삼은 것, 그리고 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과감한 구조적 모험까지 시도한 것은 DDT가 도시와 주변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리고 디지털 건축 방식으로 이 모든 걸 형태화한 21세기 건축 테크놀로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역사를 보존하는 방법은 유물을 전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끊임없이 첨단의 것을 끌어들여 과거와 미래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DDP 또한 건물 외형에 대한 기호, 낯선 것에 대한 경계의 차원을 넘어 DDP를 도시의 역사를 이어가는 건축이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시각으로 트윈트리타워를 보면 그동안 오해가 민망해진다. 트윈트리타워는 서울 시민에게 손가락질 받는 대표적인 건물. 저자는 돋보기로 보듯 트윈트리타워를 세밀하게 살펴 '공화'를 구현하는지 설명하다. 트윈트리타워는 다른 빌딩들과 달리 가로에 바싹 붙어 서서 거리를 활기차게 만들고 대지의 형태에 맞게 그 몸을 구부리고 있다. 무엇보다 동십자각을 건물 뒤편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아예 몸을 갈랐다. 그리고 좀처럼 없는 방향ㅡ 북향으로 몸을 돌려 병풍이 되어 동십자각을 빛나게 한다. 

" 이 북향의 태도는 동십자각을 향한 병풍의 역할과 시각 통로가 우연이 아님을 되새기게 한다. 주변의 도시 공간을 위해 스스로를 철저히 낮추겠다는 의도를 강조한다. 또한 이것을 위해서는 북향조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도시의 건축이다!"

저자는 트윈트리타워는 무엇보도 도시의 다양한 자산을 최대로 활용하기위해 어떻게 몸을 낮춰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며 역사적인 대지에서 스스로를 흐트러뜨려 랜드마크를 돋보이게 해서 도시적인 경관을 만들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트윈트리타워는 역사와 도시의 역동적인 힘에 몸을 맡겨 스스로 제 형태를 깎아내고 개별적인 건축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하고 불리하더라도 도시라는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양보했다.역사와 현재, 도시와 시민을 잇는 인터페이스가 되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과 불리함을 감수하는 건축, 이것이 도시의 건축이다고 저자는 트윈트리타워를 통해 강조한다.  

 저자는 트윈트리타워를 맨 먼저 다루고 마지막으로 DDP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서울의 대표 건축을 다루었다. 건축 열전(列傳)에서 언급한 서울의 건축은 대부분 '공화'를 외면하였다. 도시를 무시하거나 오해한 것이다. 자신만 내세울 뿐 도시를 위해 양보하지 않았다. 독불장군 같은 건축은 입장료도 내지 않고 도시에 들어와 도시와 시민을 불편하게 한다.

 신비와 현대 그리고 로맨틱한 꿈의 장소였던 서울역은 사라졌다. 새 서울역사는 기차역의 전통적 관문 역할을 포기하고 토끼굴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처음부터 토끼굴을 작정한 게 아니라 다른 의도의 부산물이다. 쇼핑센터에 밀리고 주차장에 치여서 자투리 건물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서울역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쇼핑센터와 자동차에 밀려 왜소해진 토끼굴 기차역이 힘겹게 채우고 있다.

남대문 주변은 또 어떤가? 저자는 남대문 주변 건물들은 제각각 가까이 있는 국보 1호 남대문은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듯 반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비판한다. 남대문 주변에서 가장 패륜적이고 반공화적이며 따라서 가장 반도시적 건축물은 신한은행 본점이라고 지적한다. 이 건물은 남대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 있다. 아니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듯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주변의 건축이 문호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며 도시적으로 실천할 대 비로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가 된다. 이렇게 가꿔진 서울의 이미지는 도시 전체의 혜택으로 되돌아오며 주변의 건축물들은 그 혜택을 가장 크게 입는 주인공이 된다는 저자의 말을 남대문 주변 건물주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 남대문 주변 조감도. 남대문 주변의 건물들은 제각각이다. 가까이 있는 국보 1호 남대문은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듯 반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책 82쪽 내용. <자료=푸른숲>

서울의 대형 호텔은 도시에서 한 발 떨어져 있거나 도심에 있어도 도로에서 물러나 있다. 서울의 고급 호텔들은 '고립'을 시도한다. 귀인들을 초대하여 불러들이는 유럽 귀족의 저택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 고립에 대한 기호의 바탕에는 도시 환경이라는 것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서울의 고급 호텔들은 입지는 도심인데 건축의 성격을 리조트형이라는 불분명한 특성을 혼란스럽게 드러낸다.  그런 호텔은 도시에 정박하지 못하고 녹지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게 만든다. 저자의 지적이다.

국가대표급 아파트인 반포 래미안 아파트 단지는 서구에서는 이미 몇 십 년 전에 사장된 철학인 ‘전원도시’에 대한 환상을 21세기 서울에서 구현한 사례로 지목한다. 그 결과 거리가 텅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 거리를 흉내 낸 대형 쇼핑몰이 진짜 도시의 거리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저자는 거리를 집어삼키는 진공청소기라고 한다.  

 저자가 들이대는 돋보기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건축의 못된 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보여주는 서울 대표 건축물의 속살에 불편하고 때로는 개탄스럽기도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못된 건축'을 짓지 않으면 될 터이니.
 

못된 건축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 생각을 직시하고 '공화'라는 기준을 새겨볼 일이다. 건축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도시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 건축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이 문제다. 건축을 통해 우리의 생각에 '공화'라는 개념의 지평을 더욱 넓혀간다면 좋은 건축도 늘어날 것이다.  좋은 건축이 늘어간다면 도시에서 사는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독불장군 같은 건축은 시민의 행복을 가로막는다.

저자 소개

이경훈 교수. 건축가.

2003년부터 국민대에서 건축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건축설계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파주 헤이리의 랜드마크하우스를 설계했다.
또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전문위원과 자문을 맡으면서 도시와 도시 건축에도 큰 관심을 갖고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1년《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출간했으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자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부회장을 역임 중이다. 현재 서울 남산 기슭의 북향집에서 소란스러운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