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오전 9시께 휴대전화로 뉴스속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객선 침몰…승객 전원 무사 구조’.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사고가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승객 전원을 무사히 구조했다는 뉴스속보와는 달리, 476명의 승객 중 174명(5월 1일 현재)만이 구조되었다. 213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아직도 89명은 차가운 바닷속 어딘가에 있으리라 추정될 뿐이다.

 사고가 일어나고 13일이 지난 4월 28일 홍영미 씨를 만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그의 머리에는 하얀 리본이 꽂혀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서 그가 버텨온 지난 시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시간을 보냈을 그와 마주하고 앉으니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홍 씨였다.

 “나는, 그리고 우리 부모들은 그 누구도 우리 아이들이 ‘피해자’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적을 바랐지만, 결과는 절망 그 너머의 나락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슬퍼할 수만은 없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되기를, 피해자가 아니라 이 시대, 이 나라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린 숭고한 죽음이 되기를 바란다."

 결연하고도 비장한 이야기로 홍 씨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단원고 2학년 8반에 재학 중이던 홍 씨의 아들 故 이재욱 군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여객선에 올라탔다. 하지만 지난 23일 진도 부근 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가족들은 24일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발인을 했다.

 “'아이가 좋은 곳으로 잘 갔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위로하는데…사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나는 ‘내 아이 재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홍 씨는 사고 이후의 시간을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떻게든 자신의 품에 돌아오리라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차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돌아온 아이를 보면서 홍 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이의 죽음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나는 현장에 있었다. 현장에서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청해진해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보았다. 말로 못할 만큼…너무나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진도 팽목항) 현장에서 드러나더라.
 처음에는 나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도 방관자였다.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빠져서 방관하고 있었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도 사고를 낸 회사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난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이번 참사를 언론은 ‘대한민국의 문제가 총망라된 사고’라고 표현한다. 아이들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 사고에 대한 책임이 우리 부처에는 없다고 말하는 고위 관료들, 선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안 한 것은 물론 불량 구명용품을 교체하지 않는 해운회사까지. 사람의 생명보다도 그저 돈이 우선이 되어 버린 오늘날 이 나라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홍 씨는 여기에 하나를 더 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 바로 ‘불신’이다.

▲ 홍영미 씨와 그의 가족들이 故 이재욱 군의 영정 앞에 섰다.

 “유가족들이 모여서 정부에, 해운회사에  뭔가 통일된 의견을 전하려고 하면 훼방을 놓는 방해꾼들이 있었다. 회의를 하려고 해도 잘 진행되지 않았다. 와해시키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중에는 유가족들끼리도 ‘당신은 진짜 유가족이 맞느냐’며 서로를 확인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신이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는 것일까. 홍 씨가 현장에서 지내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 사고는 안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였는데 일어났다. 우리나라 역시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데 계속해서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좋은 나라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보고 듣고 또 느꼈다.
 누가 방해를 하고 있냐고? 바로 우리다. 우리가 스스로를 방해하고 있다. 책임지지 않고 그저 슬퍼하고만 있는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정부? 정부에서 뭘 해주길 기대하기는...이미 너무 와버렸다.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 하고 기다릴 게 아니다. 국민들이 그걸 알아야 한다.”

 4월 16일 사고 발생 이후 온 국민은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세월호 승객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정부 발표를 통해, 언론을 통해 생중계로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분노하고 있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그 귀한 목숨들을 어째서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만 했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미숙한 정부를, 자극적인 보도에 혈안 된 언론을, 자리보존에만 급급한 관료들을 탓하고 있다.

 하지만 홍 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강조했다. 이 수많은 아이들을 ‘피해자’, ‘희생자’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죽음을 마주하고 선택해야 했다.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억울하고 아깝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울고불고 할 수만도 없다. 나는 내 아이의 죽음이,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허망한 희생만이 아님을 증명하기로 선택했다.
 많은 유가족들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경고를 하고 있는지 세상이 알기를 바란다. 인간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큰 변화로 승화되길 바란다.”

 언론들은 지난 보름 여 동안 종일 통곡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슬픔을 강요했다. 아이들의 죽음은 언론을 통해 ‘허망한 죽음’으로 포장되었다. 게다가 언론은 초기 발견된 몇 명을 ‘의사자(義死者)’라 칭하며 그들에게만 '숭고한 죽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홍 씨는 이에 대해서도 “누가 그 죽음의 가치를 평가하느냐. 모든 아이들이 의사자”라며 분개했다.

 지난 29일 안산 화랑유원지에 공식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 시도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어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하지만 노란 리본을 다는 것으로, 아이들의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는 것만으로 세월호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슬퍼만 할 일도, 분노만 하고 있을 일도 아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문제라고 여기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의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노란 리본을 다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본을 다는 이 행위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온 국민이 인성을 회복해야 한다.”

 홍 씨는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런 일은 언젠가 또 일어나게 될 것임을 알기에, 지금 아들이 자신에게 준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정부와 슬슬 새로운 자극제를 찾으려는 언론을 보면서 홍영미 씨의 이 움직임이 이 시대, 이 나라에 큰 울림을 가져오기를 기원해본다.

 

※ 코리안스피릿은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빌며,
이번 참사가 새로운 인성회복의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