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 앞에서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학생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문화재청 후원 문화유산 현장학습의 열기가 날로 높아져 이번 주는 학생과 학부모 80명이 참석한 가운데 운현궁과 창덕궁 답사가 진행되었다. 학생들을 위한 현장학습으로 준비되었지만 함께하는 부모님들도 새롭게 역사에 눈을 뜨고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다.

▲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에 대해 해설을 듣고 있는 학생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흥선대원군의 잠저였던 운현궁은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이 태어나서 12살의 나이로 보위에 오를 때까지 살던 곳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해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이곳 운현궁에서 정사를 보았다.

왕족이었던 이하응(흥선대원군)은 당시 세력을 쥐고 있던 안동김씨의 견제를 벗어나기 위해 건달행세를 했다. 야심 없는 척하며 세도가들의 눈을 피해 후일을 도모하던 이하응은 철종이 승하하자 자신의 둘째아들을 왕위에 앉히게 된다. 대원군이 된 이하응은 12살 어린 고종을 대신해 이곳 운현궁에서 10년간 섭정을 한다. 당시의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위세를 보여주듯이 넓은 규모로 궁궐에 버금갔다고 한다. 고종이 머물렀던 창덕궁과 연결된 흥선대원군이 드나드는 전용문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운현궁도 일제강점기에 많이 헐려 지금은 사랑방이었던 노안당, 안채로 쓰인 노락당과 이로당, 1910년 세워진 양관이 남아있는 모습이다.

▲ 운현궁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설명을 듣는 학생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학생들은 운현궁에서 조선후기의 시대상황을 배우며 안타까워했다. 왕과 신하의 힘의 균형에 대해 배우면서 조선이 500년의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저력을 알게 되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의로운 인물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나라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침략과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과 백성들의 삶이 좌우되는 것을 보면서 리더의 중요성을 느끼며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될 것을 다짐했다.

▲ 운현궁의 유물박물관에서 설명을 듣는 학생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로당의 뒤뜰에 있는 경백비 앞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백비는 고종이 어린 시절 타고 오르며 놀았던 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벼슬을 내린 기념비이다. 혼란한 정국속에서 어린 시절이 그리웠을 고종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려왔다. 학생들에게 만약 임금이 된다면 벼슬을 내리고 싶은 고마운 존재가 있는지 질문해봤다. 장난감을 이야기할 줄 알았던 예상은 빗나가고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가족과 친구를 꼽았다. ‘엄마’라고 대답하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곁에서 지켜보던 부모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국은 가장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가슴이 훈훈해지는 답사였다.

▲ 인정전 앞 조정에서 강사님의 해설을 듣고 있는 학생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창덕궁. 조선의 많은 임금이 사랑한 창덕궁은 지난주 다녀온 경복궁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설계, 아름다운 정원 등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자연사랑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창덕궁에서도 일제강점기동안 훼손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전등이 달리고 중국풍, 일본풍이 섞여있는 인정전의 모습, 경복궁의 건물을 옮겨와 크기가 어울리지 않는 전각들, 소중한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잔디밭으로 남아있는 휑한 공간들을 보면서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기를 다짐하며 현장학습을 마무리했다.